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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한다"

어제(19일)부터 국내 일간지에는 콜린 파월 차기 미 국무장관이 이런 내용을 천명했다는 기사가 지면을 장식했다. 중앙 일간지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거의 1면이나 국제면 톱기사로 처리된 탓에 다분히 눈길을 끌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놓고 '미,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 등의 제목과 함께 마치 미국이 현재의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방향선회 하겠다는 듯이 가닥을 잡고서는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했던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상당한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조급하게 진단했다. 한반도 정세에 본질적인 변화가 올 것 같은 환상마저 들게하는 상당히 파격적인 논조로 흘렀다.


'대북 포용정책에 상당한 변화'라는 언론 진단, 사실일까?

그러나 이것은 '애석하게도' 명백한 오보였다. 우선 글을 읽어내려 가노라면 이상하게도 제목을 뒷받침해 줄만한 실체적 내용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에는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파월 국무장관(상임위원회에서는 이미 인준함)이 한 말의 내용은 기존 남측의 대북 햇볕 정책을 전폭 지지한다는 것이고, 조건부이지만 북한에 대한 기존의 포용정책을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제목과는 전혀 동떨어진 내용이다.

그렇다면 과연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18일 상원 인사 청문회 모두 증언에서 어떤 말을 했을까? 그는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파월 장관 지명자는 다른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자신의 외교정책의 구상을 설명하면서 한반도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요지는 아래)

그 내용은 "우리는 남한과의 쌍무 관계에서 남측이 추구하는 역사적인 대북 화해 정책을 지지하며 촉진되도록 도울 것이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대화는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인 조치임이 확실하다...북한이 정치 경제 안보상의 우려들을 시정하는 한 포용정책을 계속 수용할 방침이다"라는 것이었다.


파월, 오히려 "역사적인 대북 화해 정책 지지" 공식 표명

이 내용 가운데 "...북측에 보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말을 빼고는 기존의 대북정책기조와 거의 다를 것이 없다. 파월이 한 말은 오히려 최초로 공화당 신임행정부 국무장관이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의미를 가진다.

그가 한 말은 기존의 클린턴 행정부가 밝혀온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대북 개입정책과 노선과 본질적으로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굳이 들자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독재자"라며, 미국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과격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대북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방침"이라는 말이 사실과 달리 왜곡되면서 이 부분만 확대됐다는 점이다. 이날 파월 장관이 한 말은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를 "면밀하게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문제의 부분에서 그가 한 말이다.

"We will review thoroughly our relationship with the North Koreans, measuring our response by the only criterion that is meaningful-continued peace and prosperity in the South and in the region." (우리는 남한과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의미있는 단 하나의 기준에 따라 대응수위를 결정하면서, 우리는 북한과 우리와의 관계를 면밀하게 검토해 보겠다.)

결국 일부 국내언론들은 "review thoroughly our relationship with N. Korea"를 "북한과의 관계를 면밀하게 점검해 보겠다"가 아닌 "대북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thoroughly'란 단어는 '면밀히' '사려깊게' '충분히' '신중하게' '철저하게' 라는 의미를 가진 말인데 '전면적인'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면밀한 점검"과 "전면적인 재검토"라는 말에는 의미상 상당한 차이가 있다. 후자는 마치 기존의 대북정책을 백지화하고 새로 출발한다는 의미에 더 비중을 둔 말이다.


왜 '면밀한 점검'이 '전면적인 재검토'로 바뀌었을까

한가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기자들의 해석상 실수를 가정할 수 있다. 'thoroughly'란 말과 비슷한 말로 'throughout'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철두철미하게' '전적으로' 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 말과 착각을 했다면 전면적인 재검토라는 식으로 '진화'될 수 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내용전체를 보면 전혀 제목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 상식적으로 자신의 인준을 좌우하는 의결권을 가진 의원들 앞에서 국무장관 인준자가 기존의 자국 정책을 "통째로 바꾸어 버리겠다"라고 말하는 모험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도 남는다.

이런 보도가 처음부터 의도적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마치 물만난 고기 마냥 이런 해석 아래 나름대로 '새판짜기'에 골몰했다.

한 일간신문의 경우 사설을 통해 "그런데도 정부는 파월의 한반도 관련 성명을 두고 '종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라느니,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해온 대북 화해협력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느니 하면서 아전인수격의 안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멀쩡한 정부를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질타했다. 대체 누가 아전인수라는 말인가.


대체 누가 아전인수인가

언론이 질타한 그 '아둔한' 정부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언론이 자신들의 판단이 이런 오보에 기초한 것이었음을 안다면 아전인수 운운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정부가 언론개혁을 말하자 '철퇴'를 휘두르며 맹렬한 기세로 기꺽기에 나서는 일부 언론들이, 만약 '힘없는' 정부에서 자신들에게 이런 오보를 공격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하다. 언론권력의 횡포가 지나치다.

나는 이것을 우리 언론이 정부와 미국과의 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한(좋은 의미가 아니라) 의도에서 그랬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전형적인 냄비근성 언론의 부풀려 만들기식 관행이 빚어낸 코메디라는 비판을 면키 힘들다.

그러나 만의 하나, 국내언론이 의도적으로 이런 식으로 자의적으로 상황을 몰아간다면 그것은 국민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제발 오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지명자의 한반도정책 구상 요지

우리는 남한과의 양자관계에서 남측이 추구하는 역사적인 대북 화해 정책을 지지하며 촉진되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나 북에 있는 독재자(김정일 국방위원장)가 통상적인 자위 개념을 넘어선 것보다 훨씬 많은 재래식 군사력을 계속 배치해놓고 미사일과 대량파괴 무기들을 개발하려하는 한, 우리와 우방들은 경계 상태를 지속할 것이다.

우리는 럼스팰드 (국방장관)지명자와 협력해 대북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방침이며 남쪽과 이 지역의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이라는 중요한 단 하나의 기준에 따라 우리의 대응을 조정할 것이다.

우리는 남북한간의 긴장완화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확대하는 관건의 하나로 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대화는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인 조치임이 확실하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대북협상의 현황을 알려 주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있었던 업적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으며 전반적인 한반도정책을 검토할 때 이를 활용할 계획이다. 한편 북한이 준수하는 한 우리도 북미기본합의를 준수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정치, 경제 및 안보상의 우려들을 시정하고 상호적이며 우방과의 관계를 희생하지 않는 한 포용절차를 계속 수용할 방침이다...(연합통신18일자 워싱턴발 보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mbc 아침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 에서 20일 방송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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