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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

<공격하기전>
1.되도록 작은 무리를 지어 인근의 산등성이에 모습을 드러내라.
2. 이동할 때는 아주 뚜렷한 흔적을 남겨야 한다.

<역마차를 공격할 때>
1. 역마차를 공격할 때는 적이 쏘는 총의 사정 거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언제나 가까이에서 마차를 따라가야 한다.
2. 떼를 지어서 역마차의 진로를 막아서는 안된다. 그랬다가는 마차가 정말로 즉시 멈추어 버릴 염려가 있다.

<외딴 농가나 짐수레들을 공격할 때>
1. 야간에는 절대로 공격하지 말라. 백인 농부들은 야간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않는다. 인디언은 오직 낮에만 공격한다는 전통을 고수하라.
2. 그대의 위치를 적이 알 수 있도록 줄기차게 코요테 울음 소리를 내라.
3. 모든 인원이 한꺼번에 공격에 가담하지 말고 일부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동료들이 생기면 그들을 대신해서 들어가라.

<요새를 공격할 때>
1. 먼 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일 때는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총에 맞으면 굴러 떨어지면서 아래의 바위에 부딪쳐야 한다.
2. 적을 사로 잡았을 경우 그를 바로 죽이면 안 된다. 말뚝에 묶어 두거나 텐트 안에 결박해 두어라. 밤이 오고 달이 뜨면 다른 백인들이 포로를 구하려 올 것이다.

이상은 움베르트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 '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어렸을때 보고 즐겼던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바로 움베르트 에코는 그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미국인들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이책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는 바로 오랫동안 야만인이라는 오해와 박해를 받아오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모두 뺏긴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이 어떻게 백인들에게 멸망당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아니 멸망보다는 살육과 '인종청소'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슬픈 홍인종의 역사입니다.

운디드 니(Wounded Knee 상처 입은 무릅)는 수많은 인디언들이 살해된 미군의 기지 이름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디 브라운이며 주로 미국 서부의 역사를 다룬 넌픽션을 많이 저술한 사람입니다.

저자는 수년간 조사를 통해 인디언들의 말을 인용,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디언의 운명에 관한한 이 책이 바이블이 아닐까 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로 워싱턴 포스트로부터 "충격적이고 소름끼치면서도 마음을 붙드는 책", 더 타임즈로부터 "머리가 띵하고 가슴 아프고 피가 끓어오르게 하는 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맨하탄 섬을 단돈 60길드에 해당하는 유리구슬과 낚시 바늘로 사들였지만 그후 200년간 지속된 "개척정신"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쓴 백인들에 희생된 인디언들을 감안하면 그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지경입니다.

당시 한 미국인이 금광이 발견된 지역에 사는 인디언들을 몰아내기 위해 증원군을 요청하면서 쓴 편지를 읽어봅시다.

"인디언들을 쓸어버리고 광산으로 오는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금은 여기 우리 발치에 널려 있어서 그저 주워담기만 하면 됩니다."

반면 금광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수천 리를 쫓겨다니다 굶어죽고 얼어죽어야 했던 인디언의 말을 읽어봅니다.

"미군은 나무를 자르고 들소를 죽이고 있다. 그런 것을 목격할 때마다 내 가슴은 터질 것같다. 백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아서 먹지도 않으면서 들짐승을 부질없이 죽이고 있다. 우리 인디언이 들짐승을 죽일 때는 굶어죽지 않으려고 부득이 죽이는 것이다."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라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 땅을 먹었다. 땅위에 희망은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은 듯이 보였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하나님이 오셨다면 그 분이 전에 하신 것처럼 훌륭한 일을 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지 못해서 의심스러웠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몰랐다. 그들은 희망을 낚아채고자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며 하나님에게 자비를 구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했다고 들은 약속에 매달렸다."

수없는 살육중 운디드 니에서 있었던 살육의 현장하나만 소개합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운디드 니에 끌려온 인디언 수는 남자가 120명, 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합쳐서 230명이었습니다.

무장해제후 사격이 시작되자 총소리가 귀를 멀게 할 정도였고 하늘은 화약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여기서 한 인디언 처녀의 증언을 들어봅니다.

"나는 거기서 빠져나와 도망치는 인디언 뒤를 쫓아갔다. 골짜기를 지날 때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남동생이 죽었다. 난 오른쪽 엉덩이를 맞아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엎어져 있는데 조그만 계집애가 내 모포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이때 미군들이 달려와 나를
집어 올렸다."

최종집계결과 인디언 350명중에서 3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가 1890년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답니다. 교회근처로 끌려와 아직 의식을 잃지 않은 인디언들은 서까래에 늘어 뜨려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설교단 위에는 엉성한 글씨로 쓴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자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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