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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캘리포니아주 중부지방에 있는 세코이야 킹스캐년이라는 국립공원을 다녀 왔습니다. 제가 사는 서부 로스엔젤레스 시에서 북쪽 샌프란시스코 시 중간쯤에 위치한 이곳은 세코이야(sequoia)라고 불리는 거대한 침엽수들이 산중 깊숙한 곳에서 자라나는 울창한 삼림지대입니다.

한때 벌목 대상지였던 이 곳은 자연보호주의자들의 노력끝에 지난 1890년 미국의 두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미 공원관리당국과 환경운동가들, 자원봉사자 등의 보호를 받고 있는 광활한 산림지대입니다. 자연보호운동가들은 공해와 인간의 공격 등으로 인해 이 세코이야 숲의 환경보존이 날로 위험에 처해가고 있다고 걱정들이 대단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적어도 아직은 거의 원시상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미국 자연환경의 보존상태니, 미국인들의 환경보호 의식이니 하는 그런 교육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제가 말하기에는 너무 일상화된 사실로 제도적인 현실로 미국 사회에서는 굳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굳이 우리 국내의 산야가 황폐화되고 나날이 멍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견주어 보면 그저 한숨밖엔 나오지 않는 것이 이곳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세코이야 나무 한 그루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잘 상상하기가 힘드실 것입니다. 우선 공원 안에 쓰러져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따라 걸어가 보면 그 크기에 그만 압도되고 맙니다. 길게 쓰러진 나무는 마치 큰 선박을 연상시킵니다. 공원개발 초기에 일부 나무의 몸통에 구멍을 뚫어 인부들이 거처로 사용했을 정도이니까요.

무게는 큰 나무가 무려 1300여톤(t)에 달한다고 합니다. 고래가 기껏해야 (20t~30t)에 달하고 크다는 대형트럭이 실을 수 있는 양이 10t~20t에 달하는 정도이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가실 줄로 압니다. 한마디로 지구상에서 살아 있는 생물들(living things) 가운데 가장 크다는 것들이지요.

이런 외형적인 규모도 규모지만 특히 저의 관심을 끈 것은 이 분들의 연륜입니다. 제가 "이 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이런 세코이야 나무들은 약 2000년까지는 산다고 합니다. 또 좀 오래 사는 나무는 3000년까지도 살며 제일 오래 산 나무는 무려 3225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3000년생이라면 지금이 서기로 2001년이니까 이미 기원전 1000년 이전부터 살아오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 공원에서 대표적인 나무들 가운데는 셔먼 장군 목(General Sherman Tree)이라고 있습니다. 이 분은 올해 나이가 2300년에서 2700년 사이로 추정되는데(죽은 나무는 잘라서 정확한 연도측정이 가능하지만 산 나무는 측정치로 계산할 수밖에 없음) 나무 아래 최대치 둘레가 102.6피트(31.1미터)이고 최대 직경은 11.1미터에다 그 높이는 83.8미터에 달합니다. 이 분 역시 기원전부터 살아온 분입니다.

이 셔먼장군으로부터 산 길 10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그랜트 장군목(General Grant Tree)은 나이가 1800살에서 2000살 정도로 추정되는 나무입니다. 둘레가 32.8미터에다 최대 지름이 12.3미터에다 위쪽이 부러져 나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키가 81.5미터에 달합니다.

이 분들은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최소한 수백년, 잘하면 다시 천년도 살 수 있을 것처럼 건강해 보였습니다. 이밖에도 이 공원 안에는 풍모상으로나 연륜으로 볼 때 이 두 분에게 뒤지지 않을 만한 나무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분들이 그렇게 오래동안 살아 남을 수 있는 비결에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 나무들이 결코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고작해야 지표상에서 3피트(약1미터) 이상 뿌리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변에 자신이 자리잡을 땅을 넓직히 뿌리로 뒤덮어 버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도에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의 주변에는 여간해선 잡목들이 얼씬하질 못하고 웬만한 씨는 가까이에서는 싹을 틔우질 못합니다.

또 한 가지 비결은 산불이 이 나무들이 크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세코이야 나무들은 평생 동안 최소한 70~80회에서 수백 회에 걸쳐 자연발화나 인간의 부주의 등으로 인해 화재를 당한다고 합니다. 웬만한 나무는 불타고 죽어 없어지지만 많은 세코이야 나무들에게 있어 화재라는 재앙은 자신들을 더욱 건강하고 기름지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불이 일어남으로써 주위의 온갖 잡나무들과 풀들이 재가되어 이들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영양소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잘라놓은 나무들의 속을 들여다 보면 화재를 당했던 시커먼 흔적들이 나무 몸 속 이곳 저곳에 옹이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이 나무는 그 불탄 흔적을 자기 몸 속에다 간직한 채로 자신들의 살로 만들어, 영양소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들의 우직함 앞에서 저는 부러움과 함께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껴야 했습니다. 조그만 아픔도 참지 못하며, 죽는 시늉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소위 '현대인'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우리 인간들이 아닐는지요. 조그만 시련이 다가와도 '위기'라느니 '난국'이니 하며 안절부절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은 이 나무들로 봐서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이 나무들의 지혜를 배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들이 주는 교훈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의 살아가는 삶 자체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쉬지 않고 환경에 유익한 역할을 해 나갑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들이 살아갈수 있는 좋은 조건도 만들어 냅니다. 이들은 혼자 살기 위해 상대를 해치거나 욕하면서 사회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결국은 자신들이 그 혜택을 받게 된 것이지요.

저는 산 속을 돌아보면서 지난 한해동안 별로 강우량이 많지 않고 적설량도 부족해 '이것이 이상기후 탓이 아닌가'라며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공해와 오존층 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에 따른 것이라며 세코이야들의 운명을 자못 심각하게 걱정하는 공원관리당국과 환경운동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산 속 곳곳에 조용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의 우려가 기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을 태우는 고통에다 수 천년간 온갖 풍상을 겪어온 그들입니다. 그들이 과연 인간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공해라는 공격에 과연 쉽게 쓰러지고 말까요? 제가 보기엔 그들이 내뱉는 그 깊은 냄새는 결코 인간이 쉽게 파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밤새도록 통나무집 주변을 오가며 가슴 설레임으로 맡아보던 그 숲 속에 그윽했던 솔 내음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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