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슬프다 사람의 착하지 못함이여!
소가 젊을 때는 그 힘을 빌리고 늙으면 잡아먹는구나' (주자서)


돈방골 집터에 다녀오는 길, 근처 돼지막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럽습니다.
돼지들과 한 우리에서 사육되고 있는 개들.
돼지막 앞에 이르자 개들이 더욱 사납게 짖어댑니다.

나는 잠시 돼지우리 앞에 멈춰 섭니다.
돼지우리에 돼지보다 개가 더 많습니다.
돼지 값보다 개 값이 시세가 좋은 때문이겠지요.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서면서도 개들은 짖기를 그만두지 못합니다.
나를 개장수쯤으로 생각한 것일까.
개들 옆 칸의 돼지는 오히려 태연합니다.

내가 다가가자 개들은 뒤로 물러서 제 똥 무더기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돼지들은 꼬리치며 다가옵니다.
짖는 개들 앞에서 나는 잠시 인상을 찌푸립니다.
왜 짖니.
개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개들은 주춤하는 듯 싶더니 다시 맹렬히 짖어댑니다.

하지만 나는 돼지우리에서 사육되는 개들에게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공포에 질린 얼굴, 두려움과 울분과 체념으로 가득한 눈망울을 똑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반갑게 꼬리치는 돼지들을 기쁘게 어루만질 수도 없습니다.
저 슬픈 돼지들.
어제 저녁에도 나는 삼겹살과 돼지 김치찌개를 달게 먹었지요.

단지 먹기 위해 동물을 사육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죄악입니까.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다 존엄하지요.
먹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점에서는 사람이나 뭇 생물이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비로소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운명 지워져 있는 까닭이지요.

하지만 여러 생명체 중에서 가장 죄가 큰 존재는 사람입니다.
다른 생물들은 목숨을 이어가기에 필요한 만큼만 먹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혀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기르고 취미로 생명을 살해하고 배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먹어댑니다.

사람은 또한 넘치게 가졌어도 나눌 줄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굶주려 죽어가도 가진 자들은 늘 지나치게 많이 먹고 비만에 시달리고 살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쏟습니다.

염소들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은 먹지 않습니다.
하이에나도 사냥한 것을 나눌 줄 압니다.

염소만큼의 자제력도 없고 하이에나만큼도 나눌 줄 모르면서 사람은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헛소리를 합니다.
인간이 짐승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더 교활하고 더 난폭하다는 것 외에.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의 비극.
오늘 나는 돼지막을 지나며 비로소 알겠습니다.
어째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진실로 부처의 경지인가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