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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것은 침낭 위에 덮은 비닐에 밤새 달라붙은 성에와 얼음을 털고 말리는 것입니다. 또 비닐로 덮었다지만 침낭까지 얼어붙어 침낭을 말리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자리를 펴고 누운 지 얼마 안 될 때는 지지방문한 사람들이 떠나간 후에도 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의 온기가 남아있어 견딜만하지만 새벽이 되면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위의 글은 노숙자들의 애환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인권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은 나라에서 인권활동가들이 한겨울에 노상 단식농성에 나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8일 단식 농성에 들어간 인권활동가 연합(관련기사-<명동성당은 열려야 한다>)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부패방지법 제정 등 개혁3법을 위해 이 추운 날씨 속에서도 투쟁의 불씨를 태우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에 올라온 소식에 의하면 '민주당사를 방문한 집권여당의 남궁 석 정책위의장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 상정할 수 없고 내년 2월 회기 내에도 처리하기 힘들 것이고, 국가인권위원회법과 부패방지법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또한 남궁 석 의장은 '부패방지법은 거의 완성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거의 만들었지만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아직이다.'라고 언급했다. 2000년은 이미 다 지나갔고, 밝아올 새해에도 개혁입법이 지지부진할 것 같아 염려스럽다.

인권활동가 연합 단식농성단은 시민사회단체와 일반 시민들의 농성장 방문을 적극 환영한다고 한다. 서로 머리띠를 묶어주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연대의 손길이 필요로 하고 있다. 매일 저녁 8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특히 2000년 12월 31일 밤 9시에는 명동성당에서 촛불집회를 한 후, 제야의 종이 울리는 보신각으로 촛불행진을 진행했다.

12월 31일에는 3대개혁입법 쟁취를 위한 송구영신 문화제가 기획되었다. '3대개혁입법 연내제정을 위해 헌신해온 시민사회단체는 현재 정부여당과 야당이 연내제정불가입장을 선언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배신감마저 든다. 한국의 인권현실을 한 단계 진전시키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인권단체 연합단식 농성단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인권법, 부패방지법 제정을 올해 안에 꼭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국가보안법 연내 개폐가 물 건너간 것이 현실이라고 판단하고 이후 투쟁을 준비하고 끝까지 국가보안법폐지투쟁을 할 것을 결의하는 계기로서 문화제를 개최하는 것이다'라고 이번 문화제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이날 오후 9시 명동성당에서는 '투쟁사례 발표'와 '서총련 율동''송구영신 각계대표 덕담', '서총련노래단 공연' '노래공연(우리나라, 최도은, 새하늘새땅)', '인권활동가 단식농성단 신년투쟁결의'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보신각까지 촛불행진을 했다.

29일 저녁 촛불집회에 참가한 어떤 사람은 '단식농성단 중 최고령자인 서준식 대표와 국가보안법의 나이가 같습니다. 서대표 뿐만 아니라 단식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은 국가보안법의 치하에서 살았습니다. 29일 아빠가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명동성당을 찾은 박래군 상황실장의 두 딸과 그 또래에게 국가보안법을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해서 이번 3대개혁입법 제정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12월 31일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시간에 보신각으로 촛불을 들고 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빌 것이다. 물론 새해에 바라는 개인적인 소망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바라는 염원은 한결같다. 바로 3대개혁입법(국가보안법 폐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부패방지법 제정)을 쟁취하는 것이다. 20세기에 마무리 지었어야 할 과제를 우리는 21세기로까지 떠 안고 간다. 우리들의 아이들에게까지 국가보안법을 물려줄 수는 없다. 새해를 맞이하는 촛불행진의 작은 불씨들이 하나둘 모여 바람, 불꽃, 햇살인 민주의 큰불을 지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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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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