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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십만 권까지 팔리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많이 팔리는 어린이책 가운데 하나로 <엄마의 런닝구>가 있습니다. 이미 열 해도 더 지난 아이들 글모음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움을 주는 아이들 글이기에 언제나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지요. <엄마의 런닝구>는 아이들 글모음 가운데는 보기 드물게 1995년 3월에 첫 판을 찍은 뒤 16쇄까지 찍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일 때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이 쓰는 글이란 바로 `아이들이 온 몸으로 하는 이야기'를 글자로 옮겨 적어 놓은 것뿐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쓰거나 강요나 압박에 못 이겨 숙제로 어거지로 쓴 글이라면 볼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온 몸으로 이야기하듯 쓴 글은 참 아름답지요.

늘 놀이와 일을 몸에 달며 이야기 한 자리를 해온 아이들이 커가면서도 놀이와 일을 몸에 달고 살 땐 커서도 마찬가지로 알뜰하게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머리로만 꾀 지어내듯 글쓰기를 배우고 동무를 `적'이나 `경쟁자'처럼 여기는 입시공부에만 매달리거나 시달리면 글도 엉망이요, 생각도 엉망이요, 하는 일도 엉망인 바보 어른으로 자라지요.


<땅바닥-경북 경산 부림초 6년 박치근 1987.11>

길을 걸으면서
땅바닥을 자세히 보면
한 쪽 날개 없는 파리가
이이잉 이이잉 발버둥치고
다리 세 쌍 달린 까만 벌레가
골목을 왔다갔다한다.
집 잃은 거미
먹이 물고 가는 개미
나무에서 떨어진 풍뎅이
땅강아지
지렁이도 나온다.
도로 위에는 이름 모르는 시체
머리밖에 없는 개구리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며
도로를 지나간다.
사람 보고 날아가는 참새
땅을 자세히 보지 않고 걸으면
힘 없는 벌레들이
죽는 줄 모른다.


이 아이는 어릴 적 "땅을 자세히 보지 않고 걸으면 / 힘 없는 벌레들이 / 죽는 줄 모름"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어른 눈길이라면 "세상과 이웃을 꼼꼼히 보지 않고 살면 힘 없는 이웃들이 굶거나 힘들어 함을 모름"과 이어집니다. 아이 때부터 어른 때까지 오롯한 마음을 잇는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웃 사이에도 도타운 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지요.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일을 해도 서로에게 도움과 힘이 되는 자리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죠?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비춰지고 있습니까. 과연 아이들이 `보고 배울 만한 어른'인가요?

학교에서 `사람 사는 사회'도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환경'도 가르치지 않기에 아이들이 학교를 마쳐도 서로 어깨 겯고 작은 생명체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지 못할 수도 있지요. 지금처럼 학교가 `모든 것'이 되는 사회에서는요.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도 부모된 이로서, 어른된 이로서 아이들에게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게 모든 어른된 도리이자 할 일이자 갈 길입니다.

<엄마의 런닝구-경북 경산 부림초 6년 배한권, 1987.5>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비지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 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우리 함께 <엄마의 런닝구>를 읽으며 아이들 눈길을 같이 느끼고 우리들 삶을 오롯이 다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책이름 : 엄마의 런닝구
 - 엮은이 : 한국글쓰기연구회
 - 펴낸곳 : 보리 (199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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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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