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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은 시다. 류시화의 시다.

너의 속눈썹이 되고 싶어.
그 눈으로 너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네가 눈물 흘릴 때 가장 먼저 젖고
그리움으로 한숨 지을 때 그 그리움으로 떨고 싶어.

언제나 너와 함께 밤과 낮 나누고 싶어.
삶에 지쳤을 때에는 너의 눈 덮어주고 싶어.

그리고 너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언제나 너에게는 영원한 안식이고 싶어.


속눈썹은 아름답다.
눈썹을 길고 예쁘게 해주는 마스카라, 눈썹을 올려주는 속칭 비올라..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숱한 가짜 속눈썹들.

속눈썹은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그것의 무게가 있다고 해도, 그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짜 속눈썹은 다르다. 그것의 무게가 초경량이다 하더라도, 본드가 주는 딱딱함, 내 것이 아닌 어색함,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위(胃)에 걸려 얹힌 떡처럼 눈두덩 위를 억누르며 앉아 있다.

속눈썹은 가수 손병휘의 첫 앨범이름이다.
도종환, 안도현, 류시화, 이정하, 정지원, 백창우, 박완호, 김현성 등 시인들의 시에 음을 붙여 노래하는 손병휘는 음유시인이다. 음유시인?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유행하던 노래, "I'm your man"의 레너드 코헨은 당대의 음유시인이었다.

LP를 긁는 바늘소리와 함께 울려나오던 레너드 코헨의 목소리는 겨우 14살 소녀인 나에게 그저 징그러운 아저씨의 능글능글한 목소리였다. 손병휘의 목소리가 시인의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시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으니, 그는 내게 있어 레너드 코헨보다 더 멋진 음유시인이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언더락 밴드 프리다칼로의 김현과 함께 편곡과 연주를 공동작업했다. 손병휘는 시를 노래로, 락을 포크음악으로 잔잔히 표현할 줄 아는 음악가이다.

그의 첫번째 곡,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네'의 초반 기타를 듣고서 혹시 식스펜스 넌 더 리쳐의 'Kiss Me'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네'는 마음을 울게 할 만큼 서정적이지만, 그의 기타리듬은 밝고 경쾌하다.

두번째 곡, 류시화 씨의 시 '속눈썹'은 꼭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듣기를 권한다. 물감이 번지듯 기타소리가 글라데이션되는 순간을 몇 번 씩 들어보면, 눈을 감지 않아도 속눈썹의 존재를 새삼 느껴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세번째 곡, '그대를 만나기 전에'까지 잔잔한 느낌으로 그의 노래를 느꼈다면, 네번째 곡, '아름다운 얼굴'은 전형적인 포크락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가 포크음악처럼 촌스럽지도, 락처럼 무겁지도 않은 이유는 아마 포크음악을 하는 손병휘와 락커 김현의 음악적인 결합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리다칼로의 김현은 25개 밴드의 연합체인 <아름다운 밴드연합>을 이끌고 있으며, 프리다칼로는 블루스에 기반하여 프로글시브한 정통락을 추구, 락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밴드이다.

여섯번째 곡, '새'.. 경쾌한 드럼 위에서 손병휘의 노래가 새처럼 날고 있다. 자유를 난다.

일곱번째 곡,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의 피아노 솔로가 슬프다. 안도현의 시이기에 더 슬픈 것일까?

길이 없다면
너에게로 가는 길이 없다면
내 몸을 비틀어 너에게로 가리..


백창우 씨의 시와 곡인 아홉 번째, '푸른 하늘을 본 지도 참 오래되었지'의 하모니카와 기타소리가 전원에 닿을 듯 하다. 열 번 째, '오늘하루'는 도종환 씨의 시. 솔직하고 제대로 살자는 이 노래 역시 포크락의 독특한 리듬이 흥겹다.

노래와 시, 포크와 락이 만났다지만, 마지막 곡, '난 언제나'는 도입부와 브릿지 부분의 첼로선율로 클래식하다.

전체적으로 손병휘의 이번 앨범에서는 포크락의 분위기를 떼어낼 수는 없을 듯하다. 그가 포크그룹인 <노래마을>에서 활동을 했다는 전적이 있기 때문일까? 부드럽게, 혹은 거칠게, 또는 클래식하게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데, 그는 이번 앨범에서 코러스까지 직접 넣는 절약정신(?)과 음악감각을 자랑하고 있다.

'시인은 위대하지만, 시는 어렵고, 시노래는 재미가 없다'는 명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음유시인은 위대하지 않지만, 그가 노래하는 시노래는 감미롭다'는 새로운 명제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손병휘의 앨범은 매우 친숙하게 다가갈 것이다.

그의 앨범 "속눈썹"은 그의 첫 음반이면서, 시가집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의 속눈썹은 어색하고 부담스런 가짜 속눈썹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그렇게 아름답게 감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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