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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아내와 함께 청암사를 다녀왔습니다. 김천에는 두 개의 유명한 사찰이 있습니다. 직지사와 청암사가 바로 그것들인데 직지사는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청암사보다는 더 많이 알려진 사찰입니다.
사실 많이 알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때가 많이 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직지사는 비유하자면, 도시의 아파트 같은 느낌을 받고 청암사는 한적한 시골의 농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청암사는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로 원래는 해인사의 말사들을 관찰하는 지사였다고 하며, 경내에는 다층석탑과 42수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산내 암자로는 백련암, 운수암이 있습니다.
또한, 승가대학을 설립하여 백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청정도량이기도 합니다.

청암사의 첫 인상은 다른 유명한 사찰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선 입구부터 청암사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 사찰임을 알게 해주는 조그마한 표지가 눈에 띕니다. 직지사나 대구의 동화사가 일년에 입장료 수입만 수십억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참 신선해서 좋습니다.

▲ 청암사 경내로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 ⓒ 박균호

그리고 대개 사찰이 그러하듯이 청암사 가는 길엔 금방이라도 물고기가 튀어오를 것같은 맑은 물이 있는 계곡이 아름답습니다. 청암사 경내를 돌아보면 참 아기자기 하다는 느낌을 주는 많은 것들이 있어 또한 좋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청암사에서 참 희한하다고 느끼고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청암사의 화장실이었습니다. 청암사의 화장실은 물론 수세식이 아닙니다. 남녀 화장실 입구에 문이 달려 있지만 일단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면 각 화장실에 문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 희한한 구조였습니다. 옆으로 칸막이만 있을 뿐 각 화장실 입구엔 문이 달려 있지 않아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화장실 내부에 낙엽이 한아름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낙엽을 수시로 변기(엄밀히 말하면 변기가 아니라 네모난 구멍이지만)에 넣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인분과 함께 낙엽을 섞어서 퇴비로 이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화장실 뒤편으로 가면 인분이 모이는 곳에 문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인분을 수거할 때 이용하는 문입니다.

그러니까 청암사의 화장실은 환경적인 측면으로 보아서는 자연의 순환고리를 잘 이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것입니다. 아마도 제 3차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동기는 물싸움이 될 것이라 합니다. 이미 벌써 우리 나라에서도 시도간에 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분쟁이 이는 것을 종종 보고 있습니다.

저희 아파트에 있는 수세식화장실은 인분의 몇십 배나 되는 물을 쏟아 냅니다. 냄새도 나지 않고 편리해서 좋긴 하지만 그 물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인분은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 낙엽을 모으는 비구니승들ⓒ 박균호

어느 수필가는 그 수많은 인분들이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청암사 경내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청암사 비구니승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낙엽을 모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땔감이나 화장실에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요즘 웬만한 시골에서도 낙엽을 모으지 않습니다. 기름보일러 때문입니다. 거창하게 환경운동 운운하면서 대문짝만한 컬러사진을 1면에 싣는 신문사나(컬러사진도 수질오염의 중요한 원인입니다) 겉으로는 환경 걱정하면서 수세식화장실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우리보다 묵묵히 환경사랑을 실천하는 청암사 비구니승들이 존경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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