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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7년 IMF 경제위기가 닥치자 취업을 하지 못한 상당수의 대졸예정자들이 학교측의 배려(?)에 힘입어 대학원에 많이들 진학했다.

이른바 '버림받은 학번'들인 남자대학생 91, 92학번과 여자대학생 93, 94학번들. 이들은 신규채용이 거의 없던 시기에 해외연수나 대학원진학으로 모교의 취업률을 높이는데 공헌했다.

하지만 고학력 실업률이 사회문제시 되는 요즘, 또다시 이들은 취업을 걱정하는 세대가 되어야만 했다.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취업을 걱정하는 이들. 정부는 이들을 위한 대책을 거의 세우지 못하고 있고, '너도나도 박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이란 이들에게 결코 쉬운 단어가 아니다.

국내 최고의 명문 서울대에서도 인문대 박사학위취득자 10명중 7명은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박사실업의 현주소

지난 10월 26일 서울대가 국회 교육위 황우여(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박사학위 수여자 중 대학별 실업자수'에 따르면 박사학위 취득자는 96년 749명, 98년 822명, 올해 853명으로 계속해서 증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학위취득자가 늘어날수록 취업률이 계속해서 낮아진다는 것인데, 이들의 취업률은 96년 93%(695명)에서 98년 90%(736명), 올해 85%(724)로 크게 낮아졌다.

특히 인문·사회대의 경우는 그 하락세가 눈에 띄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대의 경우 지난 96년 71% (56/79, 취업자/학위취득자)였던 취업률이 98년 43%(29/68)로 낮아졌으며, 올해에 경우는 겨우 31%(19/61)에 그쳤다.

생활과학대(옛 가정대)는 지난 96년 87%(13/15)의 취업률을 보였으나, 98년 58%(7/12), 올해 는 25%(4/20)로 낮아졌다. 사회대도 역시 지난 96년 87%(27/31), 98년 72%(26/36), 올해는 69%(25/36)로 계속 떨어져 인문사회계열의 박사 실업사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의 '취업보증수표'라고 불리던 공대 박사학위 취득자도 지난 96년에 99%(227/230), 98년 100%(238/238)의 취업률을 보였으나, 올해의 경우 88%(214/244)로 낮아졌다.

이같이 박사학위 취득자의 실업률이 감소한 원인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이같은 수치는 박사학위 취득자 중 시간강사는 취업자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어서 실업률이 높게 나타났다"며 "하지만 매년 박사학위 취득자에 비해 수요는 증가하지 않고 있어, 고학력 실업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같은 현상은 학문적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박사학위 취업률이 이같은 수치로 나타났다면, 다른 대학의 사정은 대충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국내대학 취득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국내에 들어와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인원까지 합한다면 그 인원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의 모 교수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도, 박사들은 계속해서 양성되고 있다"며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인적자원 낭비다. 특히 아직 그 숫자조차 파악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해외 학위취득자들에 대한 관리는 더더욱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따르면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국내 박사 7만360명, 외국박사 2만623명 등 총 9만983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특히 외국박사들의 경우 지난해는 하루평균 4.9명이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온 것으로 분석됐다.

한해 평균 8,000명의 박사가 배출되지만,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연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학과 연구소뿐이다. 이같은 취업환경 때문에 최소 한해 3,000명의 박사실업자가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이학박사의 실업률은 99년 4.1%, 2000년 4.9%, 20001년 5.5% 등으로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창원대 우용태 교수가 운영하는 교수 연구원 채용사이트(http://dblab.changwon.ac.kr)에는 11월 22일 현재 3만1,507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다. 이중 박사가 1만1267명, 박사과정 7,065명, 박사후 연수과정자(Post-Doc)가 3,329명으로 순으로 많이 등록되어 있다.

이들은 36.13%가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학생이 23.53%, 시간강사가 18,68% 순으로 많았으며, 실업자인 사람도 4.21%인 1,326명이나 됐다.

박사실업의 원인

그렇다면 이같은 고학력 실업 특히 박사실업의 문제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먼저, 박사과정 입학인원이 수요에 비해 많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지난 97년 박사과정 입학자들은 9,952명, 98년 1만460명, 99년 1만1,966명, 2000년 1만2976명으로 해마다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취업이 가장 어려운 인문계열의 박사정원도 99년까지 6% 증가했고, 올해는 16.4%가 증가한 3,486명으로 인문계열의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를 반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각 대학들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증설하고 인원을 늘려서 모집을 계속하고 있다. 일부대학들은 학생들의 수업료만으로도 재벌에 가까운 경영을 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의 수입을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런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장석민 직업진로정보센터 소장은 "각 대학들이 대학원의 입학정원을 늘렸는데, 이는 학문적인 수요 충족보다는 사실상 대학경영을 합리화하려는 입학정책이다"고 꼬집었다.
현재 박사취득 미취업자는 지난 95년에 1만7,000명, 올해는 2만2,000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지난 80년대 초 해외유학자율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에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90년대 초 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왔지만, 국내에서 모두 교수나 시간강사가 되기는 힘들었다. 이때부터 박사 미취업자가 누적되어 온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 사무총장은 "박사실업은 지난 90년대 초부터 누적되어온 결과"라며 "현재는 IMF상황에 도피성 진학을 한 인력들이 배출되고 있어, 박사의 자질에 대한 불신이 야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사인력의 관리부실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현재 박사인력의 관리는 교육부, 과학기술부, 노동부가 각각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박사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관리가 될 수 없고, 각 부처마다 중복된 일을 하기도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신고를 해야하지만, 상당수가 신고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박사인력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 소재파악조차 되지 않아 표본을 산출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력관리체계의 허술함에 대해 전문가들은 박사인력 활용방안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한민구 사무총장은 "교육부가 인력자원부로 바뀌게 되면 국가차원의 인력관리 대책이 나올 것 같다"며 "국가뿐만 아니라 회사, 대학, 연구소 등에서도 체계적인 인력수급계획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각 개인들의 진로선택이다.
전문가들은 석·박사 과정을 선택할 때에는 자신에게 맞는 진로와 학위 취득 후 취업에 관해서도 고려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지금의 고학력 미취업자들은 이것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민구 사무총장은 "분명히 고학력 인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학생들은 이런 정보를 습득해 잘 판단해서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석민 소장은 "석·박사 진로 선택시 손익계산을 하고 투자해야한다. 하지만 지금 배출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다. 그저 쉽게 입학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며 "영어도 못하고 실력도 없으니 취업하기는 당연히 힘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사실업 이대로 두어선 않된다

교육부는 지난 96년부터 박사 후 연수과정자 연구지원사업을 벌여 한해 300여명에게 1인당 1,600∼2,400만원씩 모두 50억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 인문학 지원에 400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이런 재정적인 지원만으로는 박사실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각 지역별로 연구소를 설립해 '박사인력 인력 풀'을 가동해 공동으로 인적자원을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정부는 대학교수, 연구원, 대학 시간강사 등 박사급 고급인력을 통합 관리하는 종합정보망을 구축해 박사 실업자 구제와 체계적인 인력수급계획에 들어갔다.
내년 상반기에 구축되는 종합정보망에는 우선 박사인력관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부처별 고급 인력정보망을 통합하기로 했다.

고급인력 정보망이 통합되면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 10만명의 박사급 인력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또 고급인력이 자신의 정보를 한곳에만 등록시킨 뒤, 변경사항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서 어느곳에서나 동일한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검색할 수 있게 된다.

박사실업 대책에 대해 이현청 사무총장은 "겸임교수제, 협약·협력교수 등의 파트타임근무를 활용하고, 인력DB를 활용해 이들의 관리, 후생복지 등에 힘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진보적인 방안으로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후진국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취업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제3국에 비해 제조업 및 기술적인 면에 강점을 갖고 있고, 인문사회분야에서도 학문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어 그쪽의 연구소나 대학에 취업하는 것도 좋은 취업방법이라는 것이 이 총장의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시간강사의 처우도 개선해 그들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적으로 성공회대학교의 경우 시간강사를 외래교수라고 부르며, 사회적 지위에서 명칭상의 문제를 해결했다.
시간강사의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방법으로 학기중에 강사료를 지급하는 것 외에, 방중 대책으로 소정의 연구비를 지급했다.

또 대학원과 학부에 외래교수를 위한 메일박스와 명함을 제작해 사기를 높였다. 지난 99년 1학기부터 실시된 이런 노력이 투자에 비해 높은 교육효과와 시간강사들이 더욱 애정을 가지고 수업을 임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성공회대학교 유시경 과장은 "시간강사도 교육에 기여하는 공로는 정교수들과 똑같다"며 "아직 이러한 노력들이 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높은 교육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도 당사자들에게는 그리 현실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그들의 심정일 것이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중인 김모(28) 씨는 "박사학위를 취득해야 할지 취업을 해야할지 아직 결정을 못한 상태"라며 "더이상 학문에 대한 열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지금 심정이다. 그렇다고 당장 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막막하기만 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박사과정을 마친 선배들 중에서도 아직 취업을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시간강사로 일하는 분들은 그나마 사정이 덜한 분들이다. 주변의 어떤 분은 시간강사직도 구하지 못해 결혼을 하고도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 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석·박사 실업자들은 그들의 학문적인 포부를 펼치기도 전에 사회현실의 벽에 직면하게 되어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칫 현실 도피적이 되어버린다던가, 사회적 일탈현상의 주범으로까지 전락하는 경우를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성공회대학교 유시경 과장은 "고학력 미취업자가 많으면 사기·횡령 등 지능형 범죄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크게 자신에게 다가오게 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왜 대학진학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들은 "난 벤츠를 타고 싶어서 대학을 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박사나 교수직은 그저 명예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위치나 자신이 경제적인 앞날을 보장받기 위해 대학을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다. 과연 그들의 하는 얘기가 어떤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박사학위를 받고 취업이 어려운 국내를 떠나 외국에서 슈퍼마켙에서 일하며, "더 낳은 생활을 하고 있다"며 즐거워하는 한 박사의 생활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은 무엇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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