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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비도 고어에게 날아갔고 보조개도 고어를 보고 웃었건만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나 봐. 무슨 말이냐 하면 7명의 플로리다 주 대법원 판사(이 중 여섯 명이 민주당원)가 나비 모양의 투표 용지(butterfly ballots)와 보조개 모양으로 투표용지에 자국이 난 투표용지(dimpled chad)를 다시 세는 것으로 고어의 손을 들어주었는데도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와 인기 폭발중인 캐서린 해리스 주 국무장관을 비롯한 공화당의 저지 세력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아무튼 감사절 연휴를 관통하고도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양당의 공방전을 통해 그 동안 '국민의 소리'를 열심히 팔았던 소위 리더라는 정치인과 변호사들의 모습은 다시 한번 미 국민들의 가슴 속에 더러운 탐욕쟁이들과 거짓말쟁이로 기억되며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번 선거로 미국 선거제도의 허점도 수없이 드러나고 있지만 정작 미국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은 구멍난 제도가 아니다.

비록, 살육전을 펼치는 전쟁통은 아니지만 O.J 심슨 재판, 애니타 힐-클레런스 토마스 재판, 오클라호마 시티 폭파 사건,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얼룩졌던 미국의 20세기말.

거기에 더해 다시 한번 미국의 자존심을 뒤흔들며 탄탄대로였던 미국 경제의 어두웠던 뒤안길을 더 어둡게 정리하고 있는 대통령 선거 후의 공방전을 지켜보는 미 국민들은 바로 이들의 탐욕 앞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건 고어고 부시고, 입으로는 국민을 위한 민주와 정의와 공정선거법을 외치며 기어코 연방 대법원까지 가고 있지만 그 속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겠지. 내심은 추악한 정권욕이라는 것을. 다수 미 국민들을 씁쓸하게 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건 고어와 부시의 맘뿐은 아닐 것이다. 부시와 고어 지지자들이 생업을 팽개치고 플로리다로 내려와 눈에 불을 밝히는 것도,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이곳으로 쏠리는 것도 실상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나와 당과 회사와 국가의 이득, 그리고 그 변수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겠지.

그래서 오늘 미국의 불완전한 민주주의에 분노하며 아파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어쩌면 불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분노하고 아파하는지도 모른다.

"부시가 되야 돼. 그래야 내 주식이 오르거든."
이렇게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들치고 볼 내심이 없어서 차라리 시원하게 들린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개인이건 단체건 내심 모두들 제각기 손익을 계산하며 어둡게 어둡게 가라앉는 20세기의 마지막 감사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하고 맥을 놓는데 클린턴 대통령의 감사절 메시지 중 한 구절이 들려왔다.

'제리'라는 커다란 칠면조를 쓰다듬기 전에 했던 말.

" ... 조지 워싱턴이 처음 제정한 감사절을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절, 남북전쟁 중에 링컨 대통령이 영구적으로 매년 지키는 국경일로 공포했다 ... "

링컨 대통령은 무슨 맘으로 가장 어두웠던 그 시절에 감사할 수 있었을까? 가장 어두운 이 시절에 할 수 있는 감사, 그건 어떤 것일까.
탐욕의 시절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 내게 그건 아이들이었다.

대통령 선거는 아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고 교육인 것이어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선거일 바로 전날, 그러니까 11월 6일에 모의 선거를 했다.

킨더가든부터 전교 학생이 모두 선거에 참여했지. 결과는 부시가 6백여 표, 고어가 4백여 표를 얻어 부시가 압도적인 승리를 했다.

그리고는 우리 딸이 공부하고 있는 3학년 반 복도에서
"If I was elected President, I would...(내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말이야, 나는 말이야...)"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이 컴퓨터로 그린 그림과 내용을 볼 수 있었다.

I would not let people get guns.
(사람들이 총을 갖지 못하게 할 거야.)

I would try to help the poor people.
(가난한 사람을 돕도록 노력할 거야.)

I would make new laws to protect everyone.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는 새 법을 만들 거야.)

I would stop pollution.
(환경오염을 막을 거야.)

I would read the papers well to know If I signed if I will do harm to the US, or not.
(미국에 해가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서명을 해야 되는지를 알기 위해 신문을 읽을 거야.)

I would let children ride go-carts in their school.
(아이들이 학교까지 모터가 달린 장난감 차를 타고 가게 할 거야.)

I would give poor people money so they could live in houses and their children can go to school and learn.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집에서 살 수 있고, 그들의 자녀들이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도록 돈을 줄 거야.)

I would ... be responsible for the United States and what happens in the State.
(미국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미국을 위해 책임감을 가질 거야.)

I would try to start world peace.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할 거야.)

I would give money to the poor, make new laws to protect the U.S.A. and think others and make our country an better place.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미국을 보호하는 새 법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알고, 우리나라가 더 좋은 곳이 되도록 만들 거야.)

I would make a law saying not to have wars.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을 제정할 거야.)

...

내용을 모두 읽어보니 대통령이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새로운 법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들이 아주 많다.

아이들 눈에도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많고 법은 신통치 않는가 보다.
아이들이 써놓은 글에서도 미국의 이면을 들춰보며 한편 씁쓸했지만 이 아이들의 글이 내겐 감사절을 감사절로 보내게 한 이유였다.

이 글을 써놓은 아이들의 맘속에는 따로 들춰보아야 할 것이 없었으니까.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을 감추고 있진 않았으니까.

가난한 이들을 돕고 공정한 법을 만들고 공해 없는 환경, 총기 없는 사회, 전쟁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순수한 마음들만 읽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기특하게도 미국을 위해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책임질 줄 아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으니까.

"엄마, 그래서 부시야 고어야? 누가 대통령이야?"
앞으로도 아침 등교 길에 라디오를 켤 때마다 묻는 딸아이의 질문에 언제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다. WABE 90.1 브라이언 스미스가 진행하는 헤드라인 아침뉴스, 크라우드 캐슬이 전해오는 NPR 워싱턴 리포트가 부시인지 고어인지를 분명히 판가름 내주는 날까지는.

그래도 나는 이 아이가 있어 감사했다.
"고어는 이름이 너무 이상해. 발음하기도 어렵잖아. 부시. 부시가 좋아."
자기는 부시를 찍었다며, 부시 지지자가 아닌 엄마를 이상하게만 보는 아이의 철없음이. 이름 하나에 표를 줘 버리는 아이의 천진함이 감사했다.

덧붙이는 글 | *오늘은 보너스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사는이야기>를 기다려주신 분들을 위해. 미국 선거에 짜증나고 지치신 분들, 여기 한번 가보세요.

www.modernhumorist.com
www.onion.com (theonion.com/onion3641/serbia-deploys-forces.html 로 가보세요)
www.foxnews.com/election-night/112000/gags-fox.sml
www.iundress.com/ballot

무거운 기분을 가볍게 풀어주는 괜찮은 선거 관련 유머들이 있답니다.
특히, www.colonize.com/warp/에 가셔서 부시든지 고어든지 43번째 미국 대통령을 한번 마음껏 찌그러뜨려 보세요. 적극 추천합니다. ^^

그리고 여긴 지금 닥터 수스의 그린치 영화가 단연 인기라는 것 아시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작자 불명의 닥터 수스 문체 패러디 작품 하나 전해드립니다. 웃으시라구요.

The Ballot Counting,
According to Dr. Seuss:

Can we count them with our nose?
Can we count them with our toes?
Should we count them with a band?
Should we count them all by hand?
If I do not like the count,
I will simply throw them out!
I will not let this vote count stand,
I do not like them, and AlGore I am!

Can we change these numbers here?
Can we changes them, calm my fears?
What do you mean Dubya has won?
That is not fair! It ruins my fun!
Let's count them upside down this time
Let's count until the state is mine!
I will not let THIS vote count stand!
I do not like it, and AlGore I am!

I'm really ticed, I'm in a snit!
You have not heard the last of it!
I'll count the ballots one by one
And hold each up before the sun!
I'll count, recount and count some more!
You'll grow to like this little chore!
I will not let this vote count stand!
I do not like it, and AlGore I am!

I won't leave office, stayin' here
I've glued my desk chair to my rear!
Tipper, Hillary and Bubba, too,
Are telling me that I should SUE!
"We find the Electoral College vile!
Recount the votes until WE smile!
We do not want this vote to stand!
We do not LIKE it, AlGore-I-am!"

How shall we count THIS ballot box?
Let's count it standing in our socks!
Shall we count this one in a tree?
And who shall count it, you or me?
We cannot, cannot count enough!
We must not stop, we must be tough!
I do not want this vote to stand!
I do not like it, and AlGore I am!

I've counted till my fingers bleed 
and still can't fulfill my counting need.
I'll count the tiles on the floor
and even count the ones next door!
And I will not say I am dome
until the counting says I've WON!
I will not let this vote count stand!
I do not like it, and AlGore I am!

What's that? What? What's that you say?
You think the current count should...STAY?????
You do not like my counting scheme?
It makes you tense? Gives you bad dreams?
Foolish folds, you're wrong, you'll see!
Your only care should be for ME!
I will not let this vote count stand!
I do not like it, and AlGore I am! 


지난 일요일 미 플로리다 주 캐서린 해리스 국무장관이 부시의 승리 공포 후 ABC뉴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공동 조사한 결과, 미국인 10명 중 6명이 고어에게 패배를 인정하라고 했답니다. 아마도 이 글은 고어 반대자가 쓴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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