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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생때는 선생님이 소복히 크리스마스 씰을 교실에 가지고 오셨을 때 '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도 거의 강매식이었는데 그땐 1장씩 돌아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겠지만 그 1장마저도 제게 돌아오지 않았을 땐 약간 섭섭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기야 그땐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켜도 저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그야말로 기쁜 마음으로 심부름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담임선생님이 모과가 교실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저보고 모과를 좀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물론 기뻤지요. 어린 생각에 저를 특별히 생각해 주셔서 그런 심부름을 시키시는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모과나무가 있긴 있었는데 모과가 둥글고 크지 않고 삐쭉삐쭉한 것이 선생님에게 가져다 드리기엔 너무 못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도랑 옆에 소담스럽게 잘 생긴 친구네 모과를 몰래 따서 학교에 가져갔습니다. 그런 제 행동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예전엔 그랬으니 너희들도 그래라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올해 우리 반엔 120장의 씰이 왔습니다. 우리 반이 30명이니 1명당 4장을 사면 되겠지요. 1장에 200원, 그러니까 학생마다 800원이 할당된 셈입니다.

교사로서 이런 문제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떡할까?' 고민을 잠깐 했습니다.

저 혼자 가지기에도 너무 많은 것 같고... 강매를 하려니 그것도 맘에 걸리고. 별 뾰족한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크리스마스 씰을 왜 사야 하는가에 대해서 강의를 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저희 학교 애들은 시골이라 일반적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2000원이 일주일 용돈인 애도 있고 그것마저도 없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사실 800원이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역시 크리스마스 씰을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습니다. 더구나 한두 장도 아니고 4장이나 사야 된다는 나의 말에 저으기 놀라더군요.

그런데 어느 학생이 "선생님 이런 거 강매하면 안 되는데요?"라고 되묻더군요. 할말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씰을 사고 싶은 사람만 사고 나머지는 모두 내가 사겠다고 했지요.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리 교사지만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금전적인 부담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 책상엔 16장이라는 적지 않은 씰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16장이라고 해 봐야 얼마 되지 않지만 전국의 교사들에게 이런 부담을 지우는 것도 문제고 또 원치 않는 학생에게 강매를 하는 것은 더 더욱 문제입니다.

나머지 104장은 우리 반 녀석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온 셈입니다. 녀석들이 과연 결핵환자를 위해서 씰을 샀는지 아니면 나머지는 담임이 다 산다는 말을 엄포성 발언으로 생각해서 샀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학생들도 500원짜리 과자를 쉽게 다 삽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이니 만큼 그 좋은 의도가 왜곡되게 비치지 않도록 결핵환자의 실상이나 어려움을 잘 설명해 주는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성의를 표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권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매끈하지 못한 방식 때문에 어려운 이를 돕는 일이 의무가 되고 강제성을 띠니 본래 가지고 있던 좋은 심성마저 부담감으로 변질될까 두렵습니다.

헌혈이나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이 학생이나 군인이 주 대상이란 것에 유감입니다. 사실 학생보다 훨씬 경제적 여유가 많은 지도층은 외면하고 수월하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입니다.

말로 아이들을 다스리니 아이들이 반항하고 행동으로 아이들을 가르키니 아이들이 따른다는 어느 분의 말이 새삼 생각납니다.

어른들에게도 크리스마스 씰을 좀더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지금의 크리스마스 씰 판매 방식은 사실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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