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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버지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솔직히 얼굴도 알지 못하는 고조부나 증조부의 제사보다는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의 제사는 남다른 감회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저희 집엔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사실 시골 저희집엔 이런 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맷돌, 돌담, 그리고 몇년 전의 헐린 저희 옛날 집은 언제 지었는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은 집입니다) 나무로 짜서 만든 초등학교1학년 키 높이의 책꽂이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엔 족보를 비롯해서 고서가 1백여권 정도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물론 전부 한자로 되어 있어 전 읽어보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무식의 한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들뿐입니다.

한자를 공부해서 그런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시작이 쉽지 않습니다.

족보도 비교적 최근에 발간되어서 멋지게 인쇄되고 표지도 빳빳한 것으로 되어 있어 말쑥한 것도 있지만 저희 집 조상님 중 어느 분이 손수 쓰셨을 수기로 되고 엮어진 족보도 있고 심지어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고 부채처럼 펼칠 수가 있는 휴대용(?) 족보도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장손이라 아버님이 병석에 드셔서 지방을 쓰시기 힘들 때부터 제 손으로 지방을 적고 있습니다. 적는다기보다는 그린다는 것이 더 어울릴 제 지방을 보면서 제사를 모실 때마다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지방을 쓸 때 저는 선조가 직접 수기로 적으신 족보를 보고 지방을 씁니다. 아버님의 제사를 모시기 전에 예전에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그 색바래고 너덜너덜해진 족보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 족보는 예전에 만든 것이라 태어난 지 30년이 넘은 제 이름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옛어른의 정성과 숨결이 담겨 있는 그 족보가 좋습니다.

그런데 몇 장 넘기다 정말 제게는 가슴이 아프고 제가 존경하는 한 사람의 처절한 노력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는, 펜으로 적어 넣은 필체를 다시 보았습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이 세상에 저 아니면 그 누구도 이것이 글씨라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는 글씨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대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말씀이 어둔해지고 거동도 힘든 상태에서 군대갈 나이가 되도록 지방을 쓰지 못하는 자식에게 지방쓰는 법을 교육시키느라 쓰신 글입니다.

전국에서 온 손님들로 시끌벅쩍한 종가 집의 장손은 명절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제가 지방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여지없이 호통을 치셨고 전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으니까요.

철이 없어도 한참 없던 저는 아버지의 호통과 꾸지람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는 식구 아니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어둔한 말씀과 당신 혼자 몸도 부축을 받아야 하는 상태로 저에게 호된 지방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겁니다.

무슨 글씨인 줄도 모르는 아버님의 글씨를 그땐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자식교육을 향한 그 처절함이 가득 담겨 있는 아마도 아버님의 생애 마지막이 될 필체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왜 진작에 스스로 알아서 그런 것들을 배우지 않았을까요? 왜 그래서 병석의 아버님 마지막 가는 길을 그렇게 고달프게 만들었을까요?

부모는 자식에게 당신들의 모든 것을 주지만 자식은 그런 부모의 마음조차 편하게 못해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따지고 보면 군사부일체라는데 교사인 저는 학생들에게 숨이 멈추기 직전까지 혼신의 힘으로 자식을 가르치던 그 아버지의 정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고 게으름을 피던 저 자신이 무척 원망스럽습니다.

저는 그 아버지의 글씨를 언제까지나 보관할 것입니다. 제 자식이 태어나 자라나면 이 글씨를 보며 자식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학생들을 내 자식 같은 정성으로 가르치리라 생각해 봅니다.

게으른 마음을 다잡아 주는 이러한 정성어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지만 그때의 불효가 새삼 가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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