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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너무나 푸르고 따뜻한 빛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보이지 않는 빛을 올려다보며 슈퍼마켓의 400원 짜리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기고 있을 때, 자동차의 클랙슨이 짧게 두 번 울렸다.

밴드 '원(WON)'의 드럼 윤태인 씨와 보컬 손창현 씨가 빗방울로 더럽혀진 차에서 내렸다. "아무래도 세차를 하고 가려구요.." 손창현 씨의 긴 생머리가 가을빛에 반짝였다.

땅.땅.땅. 자동세차기는 차를 거세게 때렸다. 악의 혀를 가진 커다란 괴물이 우리 일행을 잡아먹으려는 듯, 무섭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세차는 끝났고 주유소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수건으로 차의 물기를 닦아준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 한마디..
"남자친구 머릿결 X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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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과 함께 한 '원' - 왼쪽부터 손창현, 윤태인 씨
ⓒ 배을선

우리는 'Beyond the Circle(원을 넘어서)'이라는 주제로 원에 관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석의 <모란미술관>으로 향했다. 공통의 요소, 또는 형태인 원을 역동적이고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네 조각가, 최인수, 나이젤 홀, 크리스챤 헤르덱, 폴 이젠라트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교외의 미술관에서 기자는 밴드 원(WON)과 함께 가을을 열고 싶었다.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도로는 군데군데 막혀있었다. 2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모란미술관>. 연두빛의 잔디는 가을 햇살아래 보슬보슬 타 올랐고, 미술관 주변,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 폭, 한 폭, 낭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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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미술관 전경
ⓒ 배을선

밴드 원(WON)이 전시회의 원(circle)과 같은 의미일까?
그들은 '원'이라는 이름 이전에 '판'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명명하려 했다. '한 판 벌려보자'의 순수한 '판'. 우리나라 고유의 한 판 무대, 가수의 일방적인 공연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그러나 반응은? 사람들은 '판'의 의미가 가볍다고 했다. 둥근 원... 무한하고 함축적인 '원'으로 결정했다. 누구는 영어 'win'의 과거형이 아니냐? 누구는 돈 많이 벌어보자는 의미냐고 물어왔다. 반박을 하기 위해 정신교육도 많이 했단다.

원(WON)... 둥근 원이라는 뜻과 함께 'Win of New'.. 새로운 것의 승리라는 약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락을 즐겨듣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사라져만 간다. 아마도 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음악이 또 다시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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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과 최인수 작품(왼쪽)/ 크리스찬 헤르덱 작품을 둘러보는 사람들
ⓒ 배을선

원 (circle)..
역사를 깨워보면, 기하학적 형태들은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자산으로 중시되어 왔다. 이 점은 특히 원의 경우에 진리처럼 비추어진다. 눈동자, 가슴, 엉덩이, 결혼반지, 바퀴, 올림픽의 오색 오륜, 외교협상시의 둥근 테이블에서부터 우리가 발명한 해시계, 우리가 살고 있는 둥근 지구, 우리가 신봉하는 철학적, 종교적인 패러다임과 우리가 가꾸어온 미적 개념들에 이르기까지 원과 원을 넘어서는 우리의 전망이 편재해 있기 때문이다. 원은 통일, 협동, 연속, 평등, 완성, 결합과 같은 여러 가지 전형(ideal)을 상징하는데 적용되어 왔다. 이렇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포함'의 의미 외에 원이 '배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애써 반박하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윤태인 씨는 말한다. "원이라는 밴드명을 정할 때, 모든 것을 포함하기 위해 원이라고 지은 것인데, 배제의 뜻이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아 한참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만들어놓은 원 '안'이 아닌, '밖'에 존재하는 것들을 배제한다는 의미, 이제는 알 것 같네요.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에요. 내가 나의 음악만을 원 안에 존재시키고, 스스로 원 밖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았었나, 갑자기 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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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내 공연의 관객이고 싶다, 포함과 배제의 의미를 확장시켜서..
ⓒ 배을선

무언가를 포함시키기 위해 원을 그려놓았다면, 포함되지 않은 것들은 원 밖에 존재한다. 당연한 원리였지만, 쉽게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원을 만들어 놓았다면, 그 원 밖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고립되어 있고, 외로운 존재인가? 사람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희생시킨다. 그 한 획의 선에 의해 나는 남이 되기도 하고, 남이 내가 되기도 한다.

"저는 너무 어려워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네요. 하지만 미술세계에서의 원이란 참 창조적인 것 같아요. 나이젤 홀의 그림을 보면서, 너무나 다양한 모습의 원을 보고 놀랐습니다. 원이라는 것이 꼭 정형적인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고요." 손창현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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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원의 모습처럼 다양한 관객들과 함께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 배을선

이번 전시는 예술에 있어 원의 중요성을 과장하거나 고립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닌, 오늘날 창의적인 표현에서 원의 이용과 그 표현됨의 보편성에 주목하는 것과 각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원의 사용과 조망을 자유롭게 대비하고 비교하는 데 있다. 선입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원(WON)이 락이라는 음악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 사람들은 역시 락의 무거움을 과장하거나 고립시키려고 한다. "어디서 음악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난감하다는 손창현 씨는 "음악은 연습실에서도 하고, 무대에서도 하는데, 혹시 사람들이 밤무대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디서.. 라는 질문이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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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날아든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보며 동심의 세계로..
ⓒ 배을선

락커는 머리가 길다. 왜 길어야 하냐는 질문에, "삼손이 머리가 길어야 힘을 쓰는 것처럼, 락커들은 머리가 길어야 음악이 잘 되요. 음악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이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보이지 않는, 딱히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 긴 머릿속에서 느껴져요. 기하학적 형태의 원이 주는 느낌처럼, 원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분명 무언가 있거든요. 긴 머리도 분명 무언가 음악적 영감을 가져다 주죠"라고 손창현 씨가 대답한다.

평범한 그의 운전솜씨에 "운전은 락커처럼 안 하시네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훗, 락커들은 운전할 때도 헤드뱅잉을 하면서 해야하는 것일까? 보통사람들은 '락커들'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편견이라는 원(circle) 안에 가지고 있거나, 혹은 자신들과 다른 모습의 락커들을 동일이라는 원(circle) 밖으로 배제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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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 속 사람들의 가을 나들이
ⓒ 배을선

우리 일행은 원(circle)전시관을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찰칵!, 사진 찍는 소리, 사람들의 호흡소리, 새소리, 바람이 나부끼는 소리, 사아악~~ 산너머 단풍드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도시락을 열고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가을 그늘 속에 앉아있다.
접근성이 뛰어나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실내전시관 외에도, 야외 전시공간, 조각공원, 음악당이 있는 모란미술관은 자연과 어울러진 매력적인 공간이다. 날씨가 더 쌀쌀해지기 전에 가을의 마지막 햇살을 즐길 수 있어 풍요로운 이 곳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더 풍요롭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생활을 오래하려면 무엇보다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
"음악인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하죠. 인간성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남에 의해서가 아닌, 자기자신을 이기지 못해 음악생활을 오래하지 못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자신과의 싸움인 셈이죠"라며 윤태인 씨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타다닥, 담배 타 들어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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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미술관 야외공원
ⓒ 배을선

'Beyond the Circle', '원을 넘어서'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숨은 것은 결국 '평범한 진리'가 아닐까? 결국 여러 가지 형태의 원이 보여주는 다양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면 평범한 진리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부담스러운 락커들의 긴 머리도, 그저 긴 머리일 뿐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일뿐, 아마도 포함과 배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원(circle)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집단성과 개인성을 모두 확장시킨 인간에 대한 무한한 탐구, 사랑, 의미 그대로의 'Beyond the circle', 원을 넘어서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모란미술관의 가을을 등지면서 우리 일행이 동시에 던진 말이 있다.
"나오길 정말 잘했네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덧붙이는 글 | <모란미술관 안내>
* 청량리 롯데백화점 앞에서 청평행 좌석버스 1330번을 타고 미술관 앞에서 하차
(약 1시간 소요)
*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 버스 운행 
- 인사동 수운회관 앞(오전 10시 출발)
- 잠실역(오전 11시 출발)
* 입장료 있습니다.
- 어른 2000원 / 어린이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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