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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의 한 일식집 방안. 저녁식사를 먹으면서 시작한 인터뷰는 식사를 마친 후에도 한참 계속됐다. 차위원장은 초가을 치고는 조금 두꺼운 노란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는 물론 인터뷰 내내 잠바를 벗지 않았다. 그녀는 명동성당에서 4개월간 농성을 하면서 몸이 너무 안좋아 졌다고 말했다.

- 수배생활이 언제부터 했습니까.

"6월 2일부터입니다. 계속 명동성당에 있었습니다."

- 자진출두하기로 하셨다는데 배경이 뭐죠?

"두 가지인데, 내년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한가지고 두 번째는 아이들 때문입니다. 원래 7월에 미국에서 공부하던 남편과 두 아이가 귀국하기로 했었는데 내가 수배생활을 하는 바람에 12월로 연기됐습니다. 귀국일도 다가오고 마냥 이대로 있다가는 애들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 들어가기로 했어요."

"투쟁과 애들 때문에 자진 출두한다"

투쟁과 자녀. 이것이 그녀가 밝힌 자진출두의 이유였다. 그녀는 "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애들 문제"라고 말했다.

"애들이 4학년, 2학년입니다. 작은애가 딸인데 지난 7월에 잠시 귀국했을 때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엄마를 찾아왔어요. 그때 롯데호텔노조와 사회보험노조의 폭력진압 포스터들이 많이 걸려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애가 충격을 받은 거예요. 평소에는 엄마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는데 그 포스터를 보고 엄마도 명동성당에 있으니까 그런줄 알고…. 그후 미국에 가서도 적응을 못하고 매일 전화를 합니다. 엄마 그일 안하면 안되냐고 합니다. 명동성당 가서 보니까 무섭더라고 다른 엄마는 다 집에 있는데 하면서…. 오늘도 전화를 했는데 애가 그러더라구요. 엄마는 내가 애기 때 왜 남한테 맡겼냐고 그래요. 그래서 엄마는 직장에 가야되니까 그랬다고 하니까, 엄마는 내가 더 중요하지 않냐고. 내가 애기잖아. 애긴데 왜 남한테 맡겼냐고…. 참 착찹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차위원장은 9월 26일 자진출두를 한다. 그날 이후 당분간 엄마의 핸드폰은 고장 나 있기로 남편과 입을 맞춰놨다고 그녀는 말했다.

양반의 파업과 상놈의 파업

병원은 필수공익사업장이다. 즉 파업이 일어났을 때 일방직권중재조항이 적용돼 파업 돌입 즉시 불법이 된다. 법적으로 병원 노동자들은 파업권이 보장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조항이 우습게도 이번 의사파업으로 유명무실해졌다. 전무후무한 의사파업으로 '파업권' 보장이 안되는 필수공익사업장-대형 병원이 일제히 계절을 넘기며 장기 '개점 휴업상태'다. 수차례에 걸친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모두 부분파업이었고 이번 의사파업보다도 강도가 훨씬 약했다. 차위원장도 이부분을 의식하고 있었다.

- '의사들에게는 솜방망이이지만 노동자에게는 쇠방망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번에 자진출두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고, 명성에 찾아오신 어떤 분이 이런 말은 했습니다. '양반의 파업과 상놈의 파업의 차이가 아니겠느냐'고요. 이번에 출두하면 나는 네번째라서 여러 가지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 세번째까지는 어땠어요.

"다 집행유예였습니다."

- 이번 의사파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전무후무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입니다. 나름대의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시사하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의 문제점이 이번 의사파업을 계기로 전면적으로 부각됐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의협이나 우리 보건의료노조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목소리가 묻혀 있었는데 의사파업을 계기로 전체적으로 부각됐습니다. 두번째로 의료 개혁의 필요성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입니다. 즉 국민들이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거죠. 세번째로 의료제도 문제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내보였습니다. 핵심은 의료의 공공성입니다. 정부가 나서고 재원을 조달하고 지원을 해야합니다. 국민의 건강에 관한 문제는 정부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합니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가 되려면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고 죽어서는 안됩니다. 돈이 없어도 교육과 치료는 받아야 합니다. 돈벌이 중심의 병원을 환자중심의 병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두시간 남짓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차위원장과 함께 전철역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인터뷰 때 보여주었던 프린터물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지난 9월 19일 보건의료노조의 발표가 나가자 민주노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의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올린 글들이었다. 차위원장은 흔쾌히 건네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안. 그 글들을 찬찬히 읽었다. 보건의료노조에 대한 무수한 비판과 비난, 조소석인 목소리들. '의인'이라고 밝힌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보건의료노조여, 우리는 당신들이 파업한다거나 어쩐다거나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더 부작용만 만들뿐입니다. 그러지말고 이 사태를 빨리 끝내서 당신들 생계에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를 지지하시오. 어차피 의사가 없으면 병원이 안 돌아가고 병원이 망하면 당신들도 망하는 것입니다."

'전공의'라고 쓴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전공의 투쟁과 노조파업은 확연히 다른 측면이 있다. 첫째, 투쟁목적이 다르다. 노조파업의 목적이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이라면 전공의 투쟁목적은 의료제도 개혁과 국민건강권 확보로 의료계 전체(병원노조를 포함)와 일반국민들의 이익과 일치한다. 즉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대의를 위한 명분이 더 크다. 둘째, 투쟁대상이 다르다. 노조파업이 사업체(병원) 경영진과의 싸움이라면 전공의 투쟁은 대정부 투쟁이라는 것이다. 셋째,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쓰고 하는 투쟁이라는 점이다. 어느 노조가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투쟁을 하는가? 넷째는 노조는 법적인 보호를 받으며 투쟁하지만 전공의협의회는 불법단체는 아니지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투철한 신념과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할 수 없는 투쟁에 임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념에 목숨을 거는 애국지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기주의자들은 아니다."

과연 그런가. 감정에 격해 있는 '민초 전공의'들이 내뱉는 말처럼 과연 그런가. 민주노총 게시판에 올라온 의사들의 글을 읽고 또 읽을수록 인터뷰 중간에 차위원장이 한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내가 수술실에 있었는데 하나의 수술이 끝나면 거기에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찹니다. 피와 고름 등 엉망진창이지요. 그 더러워진 수술실을 깨끗이 청소하시는 아줌마들. 그들이 없으면 수술을 못합니다. 나는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의사만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지원부서들이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자기만이 최고인줄 알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깨져야합니다. 청소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역할도 다 소중하다고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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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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