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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정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폐업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의료계가 이를 사실상의 사과로 수용함에 따라 의-정간의 공식대화가 곧 재개되게 되었다. 최 장관은 '장관 개인으로서의 생각'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정부를 대표하여 의료계에 유감을 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의 사과로 의-정간 대화가 가능해진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의료계 폐업사태를 놓고 정부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여론 또한 비등해졌던 것도 정부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에 정부로서는 체면과 자존심에 손상이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불을 끄고 보려는 고육책으로 사과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최 장관의 사과가 정부의 진의(眞意)를 담고 있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부 내에서는 물론이고 이를 수용한 의료계에서도 그것이 정부의 진의라고 생각할 리는 없을 것이다. 사과하지 않으면 진료거부 철회는 말할 것도 없고 협상조차 할 수 없다는 의료계를 일단 달래놓고 보자는 의도에서 이번 사과는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치 한편의 슬픈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협상을 하기 위해 진의와는 거리가 먼 사과를 한 정부의 모습도 그러하고, 진의가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사과를 받았다고 득의양양하는 의료계의 모습이 또한 그러하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정말 이런 유치하고 구차스러운 방식으로 협상을 해야 하는가.

몇몇 시민단체들에서는 중심을 잃은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의약분업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그럴 법한 목소리이다.

정부의 준비소홀과 안이했던 상황판단 등은 분명 정부의 커다란 잘못이었지만, 의약분업의 정당성 자체까지 의미가 훼손되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한 의료계에 대해 정부가 사과를 한다는 것이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에게서 정부의 사과에 대해 커다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국민들의 눈에도 그림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사과가 드러누운 채 일어날줄 모르는 막무가내식의 의료계를 달래 일단 일으켜놓기 위한 고육책이었음을 국민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시점에서 정부가 의료계를 향해 사과한 것을 비판할 생각이 없다. 의료계의 진료거부에 한이 맺힌 국민정서에는 어긋날 지 모르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그 대신 나는 의료계를 향해 묻고 싶다. 정부가 의료계에 사과하기에 앞서, 의료계가 먼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했던 것 아닌가. 의료계 폐업사태로 정말 불편과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 누구인데, 정부의 사과를 받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만 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의료계는 국민들을 향해, 그리고 참기 어려운 고통을 받아온 환자들에게 정말로 머리숙여 사과해야 한다. 의료계가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에 나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고, 협상에 나가면 최 장관의 사과가 정부의 공식 사과인지부터 확인하겠다는 의료계의 말을 들으며, 우리 사회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라던 의료계의 생각이 어쩌면 이렇게 짧을까 하는 탄식이 나오게 된다.

의사들이 한데 모이면 어디 한번 '진실게임'을 해보기 바란다. 의료계를 비판하던 정부와, 의료계에 사과하는 정부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일까를 맞추는 것이다. 아마 정부의 사과를 수용한 의사들은 진실게임에서는 탈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 이 게임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진실게임의 출연진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게 될 것이다. 애당초 사과를 받을 사람은 국민이요, 사과를 할 사람은 의사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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