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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학교육 연합회는 '의과대학이 지향하는 향후 의사상은 교육과정이나 시험제도 모두가 지식의 암기보다는 의사로서의 전문적 능력을 제고하고 사회적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마련하여야한다'고 강력하게 명시했다.

또 미국 의학교육협회의 '21세기 의사상'이라는 보고서는 지식량에 버금가는 의료기술과 가치관, 태도의 습득을 강조하고 사실적 지식의 암기량을 줄이는 대신에 사회과학 및 인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약 10년을 신경성 위장염을 앓고 있다는 환자가 보건소에 와 일반의로서 일차 진료를 맡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내과에서 위내시경검사를 받고 받았고 신경성 위장염이라는 진단 하에 계속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지만 낫지 않는다고 했다.

30대의 젊은 환자여서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좀 더 시간을 내 자세히 그 병의 극복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그의 눈을 바라보며 신경성 위장염은 약만으로는 나을 수 없고 노이로제를 깨달아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정신건강이란 어린 아이들이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처럼 휴식을 포함하여 계속 활동하는 것인데 노이로제가 되면 공상을 하고 활동을 해도 쓸데 없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노이로제는 한가한 시간에 '남이 나에게 무엇을 안해 주는가?' 아니면 '남이 나에게 무엇을 안 해주어 밉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만 정신이 건강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건강이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무위다. 그리고 신체건강에 100% 완전 건강이 없듯이 정신건강에도 완전건강은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노이로제는 있으며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이면 정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환자는 내 말에 반가운 눈빛을 보내며 자신이 노이로제적인 쓸데없는 활동을 잘했고 그날 제대로 진료를 받았다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더 자세히 깨닫고 그 병을 극복하라고 그에게 책을 소개해주고 또 증상이 있는 동안 복용하라며 약 처방을 해주고 나는 의사로서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보람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현재 의사가 처한 현실이다. 나는 1차 의료대란 2주일 전에 11년간 개업했던 의원을 폐업했는데 이유는 의사공급 과잉과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으로 개인의원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전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의협신문에 난 의사 구인 광고를 보게 되고 보건소 의사가 되었다. 내가 하루에 진료해야하는 환자 수가 세계보건기구 WHO의 권장 기준인 40명 이하, 우리나라 의료법에 따른 60명을 훨씬 초과하는 100명 이상이어서 고달프지만 그래도 개업의였을 때보다 더 보람된 이유는 경영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의사노릇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방에서 1989년도에 개업하여 처음 5년간은 하루에 6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해 수입이 상당했다. 그러나 의사의 장래를 생각하면 암담하여 수년간 수입의 절반 정도를 여성 운동가를 비롯한 사회 운동가들에게 보내 우리 사회 전체를 개혁하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보탬으로서 나의 미래 사회 활동의 장을 마련하려했다. 그러면서 의사보수교육을 부지런히 받고 또 스스로 의학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러니컬하게 좋은 제도라는 의약분업을 맞이하여 의원을 폐업할 수 밖에 없었고 의사로서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렇게 쓰러질 뻔 했던 내가 보건소라는 공공 의료기관을 만나 어린이 집 건강 검진, 소외된 사람들의 진료를 주로 하다가 의료대란의 와중엔 많은 수의 다양한 환자들을 현기증까지 느끼며 진료하게 되었다.

더구나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서울시에서 구입해주던 약의 범위를 벗어나 내가 사용해서 잘 알게 된 좋은 약을 환자들에게 처방해주고 감기로 열이 나서 마이신을 먹었다는 둥 약국에서 함부로 약을 사 엉터리 자가 치료를 해온 환자들에게 의약분업이 바로 그런 해로운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말을 해주며 의약분업의 장점까지 누리고 있다.

청년의사신문에 난 '한국의료개혁, 무엇을 어떻게'를 보면

* 현단계 의료개혁의 전제 - 수가현실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정당한 비용지불)

* 의료개혁의 의제
1) 의학교육과 전문의제도의 개혁-의료인력에 대한 새로운 질관리
a. 의료경제학에는 "Physician induced demand"라는 용어가 있다. 의료인력의 공급이 의료수요보다 많아지면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고 결국 의료인력의 과잉은 전체 의료비의 상승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의사들 상호간의 과잉 경쟁은 결코 의료서비스의 개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과잉진료를 낳을 수밖에 없고 오히려 진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현재의 의과대학 정원의 동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경쟁력 없는 의과대학을 통폐합하여 의료인력에 대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b. 의사집단내에서 적극적 부패집단을 스스로 척결하고 의사집단을 매우 강력하게 표준화시켜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c. 현재 전문의 수와 비율을 대폭 낮추고 일차진료의사를 양산해야 한다. 마취과나 일반외과 전문의를 따고도 개원하여 소아과나 내과 환자를 보아야 하는 현재의 제도는 국가적 인력과 재정의 낭비일 뿐이다. 이는 제대로 된 일반의 수련과정이 보장되지 않아서이고 나아가 일차진료의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의료전달체계의 정립-병원자본의 구조조정 : 몰락하는 개원가, 경쟁력 없는 2차 중소병원, 중복-과잉투자로 얼룩진 3차 대형병원, 특히 각급 의료기관 간의 분획 없이 무차별적 환자 유치 경쟁을 벌여야하고 Doctor-Shopping이 만연된 현재의 의료시스템 하에서 의료의 효율성을 논할 여지는 아예 없다.

3) 의료환경의 개선-의료분쟁의 투명한 해결

* 의료개혁의 방법-의협의 개혁이 있다.
위 의료전달체계의 정립 부문 중에

* 대학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은 진료보다도 교육, 연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 공공의료기관의 비중과 역할을 높여야 하며, 민간병원을 포섭하여 공공보건의료의 기능이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바로 내가 보건소라는 공공의료기관으로 인하여 의약분업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의료인으로 살아났듯이 우리나라 의료가 살아나고 개혁되기 위한 중요한 한가지 방법이 종합병원이 대부분 공공병원인 유럽이나 미국처럼 공공의료기관을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나는 위에서 언급한 많은 비효율적이고 지나치게 경쟁적인 의료체계가 개선되어야 하며 의사들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 정부와 함께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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