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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12일 산소에 갔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11시쯤 늦게 나왔다. 안산에서 양지에 있는 선산에 가기 위해서 수원까지 나와 수원에서 영동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있지만 그래도 찔끔찔끔 움직이는 것을 보고 차를 올린 것인데 많이 막혔다.

그래도 어찌어찌 영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만나는 곳까지는 왔는데 거기서부터는 차가 꼼짝도 하지 않아 차를 경부고속도로로 올린 다음 신갈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따라 용인을 거쳐 양지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국도에도 차가 꽉 차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가다서기를 반복하면서 용인까지 간 다음에는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데 20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귀성이 끝난 추석에 서울 근교가 이렇게 심하게 막힐 줄은 몰랐다.

이건 문제가 있어도 무슨 문제가 틀림없이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의 장례 문화가 세인의 도마에 올라 문제가 제기되고 있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소에 도착하니 산소 주변의 풀들이 아직 초록이지만 가을 기운이 완연히 온 산하를 덮고 있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산소 아래 쪽의 밭에는 잘 익었을 열매를 인간들에게 선사한 옥수수 쭉정이들이 벌써 누루죽죽한 색으로 썩은 빛깔을 내고 있었고, 호박 잎새 가장자리부터 누런 빛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남겨진 호박은 본격적으로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간 여러 날을 굶은 듯한 모기들은 우리를 반기며 정신없이 피를 빨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버님 산소와 할아버지(할아버님이나 조부님 보다 정겨운 소리다) 산소를 둘러 보며 비석에 새겨진 글을 보고 있노라니 비석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사마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의 옷 색깔은 누렇게 변한 옥수수 쭉정이의 색깔과 흡사했다. 여름의 도도한 초록색 옷을 벗어버리고 누런 가을 옷을 입고 있었다.

가을이 왔음을 이미 알았건만 사마귀의 옷 색깔을 보면서 왜 이리 가슴이 무거워짐을 느끼는가? 노승이 걸친 누더기 옷같은 가을 사마귀의 옷을 보며 다시 한 번 정말 가을이 왔음을 확인하면서 조금 전 옥수수 쭉정이를 볼 때와는 달리 살아 움직이는 녀석이 보여주는 가을 색을 보면서는 내게 오는 세월도 더욱 절절이 느껴졌으리라.

산이 아니면 이런 사마귀를 마주칠 일도 없고 산에 와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옛날 아버님과 할아버님의 체취를 다시 한번 기억해보려 애쓸 수 있는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런 고리타분한 향수를 느끼기 위해 이런 고전적인 "산소 문화"에 대한 필요성을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좁은 땅에 너무나 많은 그래서 산의 모습을 헤치고 땅을 모자라게 만드는 이런 산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개혁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보다 합리적인 것인지, 양쪽의 주장을 어느 한 방향으로 정리하여 몰고 가는 것이 현명한 지를 판단하는 일은 우리의 교통 문화를 바로 잡는 것보다, 한반도를 민주적인 방향으로 통일시키는 것보다, 국회의원들이 정신 차리고 입법 활동을 하게 하는 것보다, 의약 분업을 완전히 해결 하는 것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상념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고 다시는 추석날 산소를 찾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죽은 사람 누운 곳 뭐 그리 죽자사자 찾을 필요가 있는가? 다 덧없는 거지. 살아 생전 참 잘 해드리고 재미있게 살지 못한 것이 회한이 될 망정 이제는 다 지난 뒤 뭐 그리 난리인가? 그게 효도인가? 자기 기만이고 자기 만족일 뿐이고 살아있는 자의 사치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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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현대자동차 연구소 엔지니어로, 캐나다에서 GM 그랜드 마스터 테크니션으로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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