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녁 늦게 퇴근하면 일을 떠나 가족과의 순수한 휴식의 시간에 젖어들어야 하건만 또다른 일로부터 헤어나지 못해 늘 아내의 불만이 끊일 날이 없다. 일이라야 밖에서 하는 일의 연장은 아닐지라도 이메일이 온 것이 없나를 검색하고 취미로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뭐 그런 것들이다.

아들 놈과 컴퓨터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애 운동 좀 시키라며 밖으로 내몬다. 밤에 쫓겨나면 뛰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 불빛 아래서 축구나 야구를 하고 싶지만 계속 뛰는 것이 아니면 모기에 물리기 일쑤여서 밤에는 줄넘기와 뛰기를 한다.

그러나 토요일이나 일요일 낮에 밖으로 내몰리면 아들과 우리들만의 야구를 한다. 종종 아들 놈의 친구가 끼기도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도 자기들의 스케줄이 제각기 달라 학교에서가 아니면 친구를 만나기가 힘들다.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 둘만의 야구를 즐길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 다른 아이가 간혹 끼어도 우리 수준에 미치지 못해 리듬이 흐뜨러진다. 시간 나는대로 둘이 치고 던지다 보니 둘의 실력이 안 해본 녀석들과는 꽤 수준 차이가 나버리게 된 것이다. 간혹 다른 아이들이 배팅를 하는 것을 보면 안 해본 놈들의 배팅에 비해 녀석의 배팅이 보통 날카로운 것이 아니다.

녀석은 아기 때 오래도록 기었다. 일부러 빨리 걷게 하려고 신경쓰지 않고 니가 기고 싶을 때까지 기어라는 심보로 그냥 놔두었더니만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 다 걸을 때도 녀석은 기었다. 그런데 온 몸에 힘이 붙은 놈이 기니 그 기는 속도가 무지하게 빨랐다.

그 별난 재주를 보는 것을 즐기던 어느 날 녀석이 엉덩이를 엉거주춤 일으키더니 일어서는 폼을 잡는 것이다. 그러고는 밑을 내려다 보며 팔을 옆으로 조금 벌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러더니 확 주저 앉으며 환하게 웃는 것이다. 걷는 것이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고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 걸어보는 게 신기하면서도 뭔가 조금 겁이 났는지 일단 주저 앉은 것으로 보였다. 다시 일어나더니 걷기를 즐겼고 녀석은 그렇게 고생없이 그냥 걷게 되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로 던져주고 녀석은 치기만 하는 쪽이었다. "니가 던져 봐라" 하고 공을 건네 주고 나는 치는 폼을 잡았다. 녀석이 공을 던진다. 물론 콘트롤이 잘 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1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과연 공을 던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고 자신이 없던 녀석의 공이 그런대로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 녀석 스스로가 먼저 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의 야구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서로 치고 던지는 야구로 변천을 했다. 아파트 주변에서 야구를 하니 그리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고 녀석이 휘두르는 방망이에 제대로 맞은 테니스 공은 20여 미터를 넘게 날아 아파트 뒤쪽의 칡넝쿨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 게임(?) 할 때마다 낡은 테니스 공 2~3개를 칡넝쿨 숲으로 날려 보내 공을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공이 많아질수록 우리들의 즐거움과 쾌감은 더 커진다.

우리 부자는 그렇게 둘만의 야구를 하며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착각과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리들만의 야구를 하면서 우리는 박찬호가 되고 맥과이어가 되는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에서 현대자동차 연구소 엔지니어로, 캐나다에서 GM 그랜드 마스터 테크니션으로 지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