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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계를 이용한 '성추행'인가, 단순한 '애정관계'인가.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홈페이지(www.ktu.or.kr)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폭로성 글로 인해 지난 93년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이후 교수-제자 간 성희롱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각 대학별로 '성희롱 예방' 학칙 제정의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라 주목된다.

지난 7월 28일 전교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대학원생'이라는 익명의 제보자가 'K대 L교수(50)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추악한 교수, 이럴순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L교수가) 자신의 제자를 연구실로 불러 문을 잠그고 몸을 더듬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고 적혀 있다.

이 제보자에 따르면, 지난 7월 7일 A씨는 L교수와 학교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L교수의 집요한 요구로 그의 연구실에서 따라 갔는데, 그 안에서 "(L교수가) 강제로 (A씨를) 긴 의자에 눕히려 하고, A씨의 손을 잡아 자신의 국부에 갖다대게 하고, (A씨가) 이를 거부하자 '조용하라'며 협박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 표현이 아닌 강제 추행임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며 L교수가 여학생에게 보냈다는 성적 내용이 담긴 3통의 전자우편도 공개했다.

또한, L교수가 두 종류의 전자우편을 사용하면서 "하나는 '문제 없는 내용'을 보낼 때 사용하고, 나머지 하나는 '문제가 될만한 내용'을 보낼 때 사용하는 등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L교수는 지난 7월 2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식사를 하면서 함께 마신 술때문에 우발적으로 스킨십 정도의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교수 직위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추행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또한 L교수는 "성추행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며 "A씨(23, 피해 여학생)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L교수가) 성추행을 하려고 할 때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며 "정확한 진상 규명과 처벌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이라는 익명으로 이 사실을 처음 공개한 J씨(29, K대 대학원생)는 "교수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제자를 성추행한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J씨는 "L교수가 직접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재판정에서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 대응할 생각임을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L교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 성추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학생 A씨 인터뷰


지난 7월 29일 오후 7시 30분 한 카페에서 이번 '성추행 의혹 사건'을 인터넷 상에 올린 J씨(29)와 피해 여학생 A씨(23)를 만났다. A씨는 이번 일이 크게 확대되면 부모님이 힘들어 할 거라며 걱정했다. 하지만 A씨는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대학 4학년인 A씨는 지난 3월 L교수의 원격강의 수업을 신청했다. 원격강의는 인터넷상에서만 이뤄지는 수업으로 다른 수업에 비해 큰 부담이 없어 신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A씨는 L교수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L교수가 직접 찾아오면 알려주겠다고 해서 A씨는 L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L교수는 A씨에게 자신의 전자우편 주소를 알려주고, 나머지는 학내 전산실에 가서 물어보라고 소개해줬다. 당시 L교수는 A씨의 생일을 묻고, 관상을 봐주는 등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지난 7월 7일 '성추행'이 있었다면, 며칠 후인 12일에는 왜 L교수를 또 찾아갔는가.

"7월 7일 이후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그 때 한동안 휴대폰을 받지 않았는데 결국 (L교수가) 집에까지 전화를 했다. 그 때 '나(교수)는 너를 최우선에 두고 생각하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되지'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빌려준 책을 7월 16일까지 반납해야 한다며 갖고 오라고 해서 다시 찾아간 것이다. 연구실에 갔을 때도 이상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문 가까운 곳에 앉았다."

- L교수는 '스킨십' 정도의 행위는 있었지만, 서로가 용인하는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L교수가) 성추행을 하려고 할 때,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 L교수는 A씨가 적극적으로 성적인 암시를 했다고 주장한다. A씨가 어느 정도 유혹을 한 것 같다고 하는데.

"(허탈하게 웃으며) 말도 안 된다. 물론 처음엔 신경을 많이 써줘 고마웠다. 졸업하는 게 중요하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난 L교수를 절대로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L교수는 매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인 듯 하다. 전자우편 계정도 두 가지를 사용하면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내용을 따로 구분해서 보냈다. 당시에는 그런 구분조차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이메일을 보고 나면 반드시 지우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그렇다."

- 결국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 현재 심경은.

"솔직히 얼마 전까지 걱정이 됐다. 일이 이렇게 커지리라 생각도 못했다. 여러군데 이야기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앞장서서 문제를 밝히지 못한 게 아쉽다. 진실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제 제2, 제3의 피해자가 없었으면 한다."

- L교수가 만약 사과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이 커지기 전에 분명히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L교수가) 모든 사실을 부인하고, 협박성의 이야기까지 했다. 지금은 (L교수가) 사과를 한다고 해도, 대학쪽에서 진실을 규명하고 L교수를 처벌하는 등 명확한 조처가 없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간단한 스킨십은 있었지만, 강제적인 성추행은 없었다."
-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L교수 인터뷰


기자는 지난 7월 29일과 30일 두 차례 L교수를 만났다. 그는 '제자를 성추행한 교수'로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 오르내리고 여론화되는 것에 대해 당황해하며 "결코 성추행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L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요약한 것이다.

- 지금 심경은?

"(진위 여부를 떠나 개인적으로) 불명예스런 일이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싶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서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학생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7일과 12일 두 번의 '성추행'이 있었다고 한다.

"성추행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것을 말하지 않는가? 단호히 이야기하는데 그 당시 성추행은 없었다."

- 같이 술을 먹었던 적은 많았나?

"밖에서 식사한 적은 두 번 정도인데, 이 때는 술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연구실에 식사를 배달시켰을 때는 반주 수준의 술을 먹었다. 많이 먹을 생각은 없었다. (중략) 난 술을 천천히 마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알딸딸하다'는 둥. 술을 마실 때 여자들이 그렇게 풀어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 그렇다면 그 날 A씨가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스킨십'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게 한 가지 요인은 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대충 그런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 L교수가 직접 술을 사들고 (A씨와 같이) 연구실에 간 적은 없었나.

"한 번 밖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사서 들어온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날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 지방에 있는 A씨의 집에까지 전화를 했는데.

"나에겐 책이 제일 중요했다. 책을 몇 권 빌려줬는데 그게 내 책도 아니기 때문에 돌려 받기 위해 전화를 했다."

- A씨는 "L교수가 전화 통화중 '뭐 입고 있냐'는 등의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적 없다."

- 왜 공적인 내용과 사적인 내용을 분리하는 등 두 개의 전자우편을 사용했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공적인 학교 메일 계정을 이용해 장난스러운 내용을 보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느냐?"

- 남들이 봤을 때 부끄러운 내용의 메일을 보낼 만큼 둘 사이가 친근하다고 생각했나.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메일을 어떻게 보낼 수 있겠나. 하지만 이후 문제가 될 것 같아 지우라고 했는데도 (A씨가) 지우지 않고 공개했다."

- A씨가 주장하는 성추행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A씨가) 갑자기 나가려고 할 때 놀라서 잡아당긴 것은 맞다. 왜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가는가 말이지."

- 술을 먹고 스킨십 행위를 한 사실은 있나.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강제적인 추행은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지만, A씨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기자의 가슴을 손으로 천천히 털어 내면서) 이렇게 하는데 어떤 느낌이 들겠나. 그리고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하면서 커피숍에서 일하겠다고 하더라. 왜 하필이면 커피숍 아르바이트인가?"

- 커피숍 아르바이트가 일반적으로 봤을 때 문제될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난 다방에서 일한다는 뜻인줄 알았다. 그렇다면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 아닌가. 당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 스킨십이 있었던 당시 A양에게 어떤 감정이었나?

"나름대로 매력을 느꼈다."

- 이성적인 매력을 느꼈다는 말인가.

"난 남자고 상대는 여자니까, 매력 안에는 이성적인 것도 포함되지 않겠나."

- 그렇다면 왜 A씨가 '성추행'이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미스테리다.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게시판에 글을 띄운 사람은 여학생의 애인인데 교수와의 관계를 추궁 당하자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추행당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 아닌가 추측된다.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 자신이 순결한 여자가 되니까."

- 게시판에 공개한 사람이 여러 번 사과를 요구한 것으로 아는데.

"성추행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사과를 할 수 없다. 내가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은 (성직자는 아니지만) 교육자로서 도덕적인 책임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그 여학생과 공개한 남학생의 관계가 원만해지길 바란다."

- 지금 A씨에게 어떤 감정이 드는가.

"배은망덕하다. 내가 과외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정성을 다했는데... 내 명예뿐만 아니라 학교, 나아가서는 A씨도 피해를 볼 게 뻔하다."

- 그렇다면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은 있는가.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 원만히 해결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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