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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확인>,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국가미사일 방어망 NMD 반대의사 표명은 기본적으로 "반(反)패권주의 연합전선"의 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태의 변화는 동북아시아 정세변화의 본질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극체제(一極體制)에서 다극체제(多極體制)로 이동하는 것에 있음을 반영한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일극적 지배체제가 동요하고 있는 징후는 여러 대목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선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주일미군을 겨냥한 일본 오끼나와의 기지반환투쟁등 미국의 군사적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사실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형성된 배경에는 미국이 일본과의 <신 가이드 라인>을 통해 결성한 대(對)중, 대(對)러 포위전선이 존재한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자초한 역풍이다. 다극체제가 지향하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일극적 독점체제를 허물고 이 지역에 대한 지배체제를 공유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세변화는 이제 미국이 그간의 패권주의적 생존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현실이 조만간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지구촌은 지역적 통합과 결속을 축으로 하여 각 지역 자체가 자신의 중심이 되는 다극체제를 벌써부터 지향해왔었다.

이와같은 현실의 변화를 무시하고 미국이 계속해서 일방적인 일극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NMD 추진 등 무리를 감행할 경우 그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게 이번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성명이 내놓고 있는 기본 메세지라고 할 수 있다.

하여, 우리로서는 이제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가 남은 숙제이다. 다극체제로의 변화는 시간문제만 있을 뿐 필연적이며, 따라서 한국이 미국의 일방적이고도 종속적인 지배체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중대한 계기이자, 어느 진영에도 기울거나 가담하지 않는 자주적인 중립을 지켜낼 수 있는 기회를 뜻한다. 바로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활용하여 우리민족의 통일과정에 강대국들이 담합을 하거나 또는 특정 강대국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개입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민족 생존의 대전략을 짜야 한다.

그런데 이번 조-러 공동선언에서 한가지 우리가 중요하게 주목할 바가 있다. 그것은, "조선의 통일문제에 자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외세의 간섭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이 또한 동북아 정세재편의 다극화를 위한 반패권주의적 질서를 규정하는 원칙과 관련되어 있다.

어느 국가가 되었든 우리 역시 패권주의를 반대해야 하는 약소국이다. 외세의 간섭 배제가 곧 외세의 협력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의 경우에도 이와 다를 바 없이 대미관계에 있어서 민족문제에 대한 자주적 해결을 둘러싼 해석의 조정과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외교노선의 정리가 매우 필요하다. 러시아와는 달리, 미국은 우리의 자주원칙에 대하여 경계심을 가지고 반응하고 있지 않은가?

남북 정상회담의 공동선언 제1항이 밝힌 <민족문제 해결의 자주 원칙>은 어디까지나 일차적으로 부당한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배제한 국제사회의 협력이어야 하고, 그 협력은 또한 자주의 원칙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을 주는 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이 당사자 원칙을 존중하고 한반도의 문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상,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우리 통일문제에 대한 국제적 간섭을 저지하는 동북아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요구되는 절차이다.

그러자면, 먼저 우리 내부에서 반패권주의적 자주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보다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민족의 자주는 그 민족의 자유를 확보하는 일에 근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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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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