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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대하여 최근 일부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몰지각하고 오싹한 발언들을 듣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경상도 유권자들을 의식하는 이들의 행보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씁쓸하다.

이번에는 이인제, 이회창, 김영삼 씨 이 세 사람이 문제의 발언의 주역이다. 마치 다음 대통령 선거가 자신들 세 사람의 의지나 선택에 달려 있는 듯이 이야기한다. 웃기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들의 '웃기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들이 대선을 준비하면서 머리 속에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관심사는 경상도 유권자들의 수(數)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면에서가 가장 큰 이유이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대선 승리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그리고 여전히 지역주의라는 확고한 끈이 존재하며, 자신들은 이들의 표를 움직일만한 비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치 활동에서 보여주고 있는 움직임과 발언을 훑어보면 지난 대선은 영남 유권자들이 표를 한 곳으로 몰아주지 못한 것 때문에 대선에서 영남이 승리하지 못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민감한 사람은 이인제 씨이다. 자신이 영남 표 결집을 막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대선에서 영남의 벽을 넘을 만한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난 '97번 대선에서 영남 유권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유권자들 모두가 한 표를 행사하지만 경상도 유권자들의 응집력은 그 이상이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을 다시 돌려 놓지 않으면 다음 대선은 어림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회창 씨가 영남 유권자들에 대해서 갖는 애착은 결정적이다. 소위 영남의 지역주의 없는 이회창이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4.13 총선에서 민국당이 노골적으로 영남의 지역주의를 깃발로 들고 나오자 곤혹스러워 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영남 지역주의의 대표성을 더욱 더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의 지난 4.13 총선 승리는 '97년 대선 패배에서 영남 유권자들이 느꼈던 감정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회창 씨와 한나라당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라도 소위 영남 지역주의의 '맹주'라고 자처하는 김영삼 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김영삼 씨의 이회창 씨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김영삼 씨의 차기 대선 관련 발언은 경상도 지역주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노골적으로 자신이 다음 대선에서는 경상도에서 (자신이) 내세우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게 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의 발언, 이들 두 정치인의 정치적 행보는 오로지 경상도 패권주의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실체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경상도 패권주의의 주체는 이들 일그러진 일군의 정치인들이다.

그리고 영남 유권자들은 사실 이런 정치지도자들과 그 주위의 정치 엘리뜨들의 선전과 선동으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희소가치'를 획득하는 데 있어서 자신들의 지역 출신 인사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지극히 소박한 현실 인식에서 정치 지도자들과 그 주위의 엘리뜨들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경상도 패권주의 주창자들의 정치적 기반은 지역감정과, 파당정치이다. 이들은 박정희 씨 이래로 형성된, 그리고 줄곧 사회 제 분야에서 발군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상도 출신 엘리뜨 계층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대통령 되는 데 있어서 경상도 유권자들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인식, 바로 이것이 경상도 패권주의의 증거이다. 다음 대선에서도 경상도 지역주의가 결정적으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 이것 역시 경상도 지역주의를 전제로 한 경상도 패권주의에서 비롯된 위험한 발상이다. 김영삼 씨는 이런 경상도 패권주의를 가장 노골적으로 발설하며, 자신이 그 중심에 있음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경상도 지역주의 외에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는 호남 지역주의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경상도 유권자들에게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경상도 패권주의 주창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4.13 총선 승리는 영남 유권자들이 경상도 패권주의 깃발 아래 모인 결과였다.

이회창 씨와 이런 정치적 현실을 은밀하게 즐긴다. 그들은 경상도 패권주의 깃발을 놓고 지난 총선에서 민국당과 겨루어 이겼다. 김영삼 시가 우려하던 결과를 한나라당이 거머쥐게 된 것이다. 지금 이회창 씨와 김영삼 씨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원인은 바로 경상도 패권주의의 주도권 싸움이다. 이회창 씨와 한나라당은 그 주도권을 김영삼 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의 패권주의적 성향은 강해질 것이다.

경상도 패권주의 주도권을 둘러싼 이회창 씨와 김영삼 씨의 싸움을 보면서, 우리 정치 문화의 개선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통일을 기대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정권은 순간이지만 패권주의는 영원하다는 것이 힘 가진 이들의 발상인가. 지난 '97대선 결과는 경상도 지역주의 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경상도 패권주의라는 힘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바라는 다수의 유권자들이 선택한 결과였다.

우리 국민은 호남 패권주의도 영남 패권주의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지역과 계층을 떠나 자질과 경륜을 갖춘 이, 개방적인 자세와 어려운 정치 현실에서도 결코 회절하지 않는 양심적인 인사를 대통령 감으로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인사의 선별은 앞으로도 치열하게 전개될 정치 과정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지역의 패권주의를 조장하고,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특정인을 지지하는 언론들의 소위 2002년 대선 프로그램은 벌써 그들의 정치 기사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경상도 유권자들이 많은 현실, 거의 40년 동안 계속되어 온 경상도 출신 인사들의 장기 집권에서 덕을 보아온 경상도 엘리뜨들이 한나라당의 보수화, 과거로의 회귀(回歸), 남한에 북한이 편입되는 형태의 통일 정책을 부추기는 정치적 현실은 극복해야 할 과거의 정치적 유산이다.

어리석은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특정 지역 패권주의를 정확히 들여다 보지 못하면서 다음 대선을 이야기하고, 통일을 말하고, 보안법 개폐를 들먹이는 것은 또 하나의 우스운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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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사물을 올바로 담아낼 때까지, 사물들을 올바로 이끌어 낼 때까지 말과 처절하게 대면하려 한다. 말과 싸워서, 세상과 싸워서, 자신과 싸워서 지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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