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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 40년만의 '위령제'

폐광산 입구에 있는 작은 칠기상 위에 소박하게 몇 무더기 과일이 놓이고 순례단 일행이 참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1960년도 4월 혁명직후 첫 양민학살과 관련해 조사가 시작되고 위령제가 있은 이후 40 여 년 동안 제대로 된 추모행사는 열리지 못했다. 대부분 순례단이 방문했을 때 조촐하게 치르는 참배식이 있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오는 23일이면 전국에서 참가하는 순례객이 이곳을 찾을 예정이다. 다행히 이때 『위령제』다운 위령제를 지낸다는 것이 『유족회』의 계획이다. (관련기사 "이름없는 원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마")

시건장치를 열고 순례객들은 하나 둘 광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내를 맡은 관계자는 갱도엔 지하수가 조금씩 새어나와 바닥이 흥건하고 진흙이 많다고 일러주었다. 순례객들은 바지를 걷어올리고, 어떤 이는 준비해온 장화를 신기도 했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으로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갱도 안은 조명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자연상태 그대로였다. 갱도 안으로 들어설수록 광산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도 닿지 않아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준비해온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낮게 내려앉은 갱도 천장을 더듬어 가며 한 발자국씩 내딛었다. 10여 미터 들어가자 발바닥엔 차가운 물기가 느껴지고 물에 흠뻑 젖은 진흙이 느껴졌다. 소름끼칠 정도로 냉한 물기에 소스라쳐 놀랐다. 진흙에 미끄러질 새라 사람들의 걸음은 더욱 늦어졌다. 매캐한 갱도 안의 냄새가 시원한 바람에 실려 후각을 자극해왔다.

'유골더미'

몸을 떨게 하는 차가운 바람과 발바닥에 느껴지는 냉한 물기, 매캐한 갱도 안의 냄새까지...

갱도 저 깊숙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피학살 양민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것인가. 조심스럽게 약 10분 정도 걸었을까. 앞서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인가?'
작은 빛 하나 없는 곳에 손전등의 불빛이 학살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 이리저리 날아들었다. 불빛이 모여지는 한 곳에 하나 둘 유골이 보이기 시작했다.

50여 년 세월동안 깊숙이 숨겨진 망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곳엔 성인의 키보다 조금 더 높게 쌓인 흙더미 위에 놓여 있는 사람의 두개골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 놓여 있었다. 두개골 주위엔 어느 의학 서적에서 본 듯한 사람의 뼈가 포개어 쌓여 있었다.

"이곳이 학살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보이는 유골더미 안쪽은 수직갱도와 여러분이 걸어왔던 수평갱도가 만나는 곳입니다. 수직갱도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유골이 넘쳐나면서 이곳 수평갱도로 흘러나온 거죠" 경산민주청년회 사무국장 최한철 씨가 학살현장에 대해 설명했다.

죽은 망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유골 가까이로 쉽게 사람들이 다가서지 못했다. 그나마 이곳저곳 살펴보다 유독 다른 두개골과는 크기에서 차이를 보이는 작은 유골을 볼 수 있었다.

"『보도연맹』에 연루됐던 사람들 중엔 성인 남성뿐만 아니라 아낙네, 어린 학생들까지 두루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이 어린 유골이 증명하는 거 아닙니까"

학살지 인근 마을주민들의 증언 중엔 학살된 양민들에 대한 신상도 일부분 있었다. 특히 그 중엔 "경산시내 돼지골목 부근에 살던 신명여고 1학년생도 있었다"는 증언이 있어 학살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학살된 유골의 '산'을 살펴보면서 가슴속에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억울하게 총칼에 쓰러져 암흑천지 깊디깊은 수직갱도로 나뒹굴러 떨어질 때 그들의 공포는 어떠했을까?'
'지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이 유골더미 그 안쪽엔 얼마나 더 많은 망자들이 세상의 빛을 기다리고 있을까?'
슬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망자(亡者)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의 억울한 죽음에 자네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학살 양민들과 만남은 만남을 기다렸던 그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망자들을 남겨둔 채 우린 들어왔던 그 갱도를 따라 되돌아 나와야 했다.

멀리서 보여지는 세상의 빛이 눈에 들어온다. 광산 입구와 망자가 있는 이곳과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 그들과 만나기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 '암흑'에 던져졌던 억울한 '원혼'을 다시 세상과 만나게 해주기 위한 그 길은 이젠 우리가 놓아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경산코발트폐광산 순례 문의
경산시민모임 053-816-3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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