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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오..."
예진, 천천히 돌아본다. 눈물로 얼룩진 예진의 얼굴을 마주하는 정명. 고통스러운데.
"그만두시오. 의녀를 그만두시오. 나는 낭자가 이런 치욕을 당하는 걸. 볼 수 없소. 삼년전 부인을 잃고 난 다시는 누구도 내 가슴에 담지 못할 줄 알았소. 누군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애태울거라 생각치 못했소. 내가 낭자를 지켜주리다. 그럴 수 있도록 낭잘 지킬 수 있도록 날 받아줄순 없겠소?"

"나으리"
"낭자가...허준이란 의원을 마음에 두고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 ... "
"지금 당장...날 받아달라는게 아니요... 그저...내 마음이 닿을 수 있도록 조금만 내게...곁을...내어주시오."
정명, 간절한 눈빛으로 예진을 바라보고, 예진, 떨리고 당혹스런 심정으로 그런 정명의 시선을 피한다.

이런 페미니스트가 실제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을까?

올해 어떤 드라마보다도, 큰 인기를 몰고온 MBC 창사특집 "페미니즘 멜로 휴먼 메디칼 대하 드라마" 허준. '허준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키며, 장안에 화제를 일으킨 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언듯보아, 허준은 다른 사극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영웅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영웅의 좌절과 성공 굴곡을 시청자들과 함께 나누려는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사극의 전형인 듯 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허준은 분명 다른 사극들과, 뭔가 특별한 차별성을 지닌다.

위와 같이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페미니스트 포도청 종사관이 등장하는가 하면, 드라마 역사상 초유의 조연 삼각관계, 자신의 사랑을 맘껏 표출하려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구애!가 드라마 곳곳을 수놓는다.

요즘에야 남녀관계에 있어서, 여자가 더 적극적인 것이 별다른 일도 되지 못하지만, 수년전만 해도, 남자보다 더 적극성을 보이는 여자들의 출현은 당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변화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여성들의 적극적인 구애라니!
"드라마 허준"에 나오는 여성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언년이나, 하동댁의 님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는 자칫 "근엄" 일변도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 구조에서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준다.

또, "드라마 허준"에서 눈에 띄는 점은 가부장적 가내지배구조 해소를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안에서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에게 맘에 드는 장면은 아니었겠지만, 오 씨가 내의원에 입적한 도지를 따라 집안 살림을 모두 처분하여, 유의태를 떠나는 장면은 가부장적 사고에 얽매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설정할 수 없는 장면이다.

극 중 전쟁의 우여곡절 끝에 평양성에서 아버지를 만난 겸이.
겸이의 일성은 아버지에 대한 노골적인 원망이다. 아버지 또한 이러한 원망에 일언반구 입을 떼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어머니의 "민주적인 타이름"에 겸이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접게 된다.

이런 장면은 청소년성장드라마에서 반항하는 청소년을 타이를 때, 나타나는 모범답안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장면이 가부장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과 복종이 당연하던 조선시대에도 가능한 일이었을까? 재미있는 시도다.

허준이 조선시대 이데올로기를 실제적으로 고증하지 못한 점을 기자는 나무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다큐멘타리와는 달리 드라마가 사실만을 다루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어차피, 100% 재연이 어려운 바에는 현대인의 시각에 알맞게 각색하는 것도 시청자들에게는 적잖은 즐거움이다.

오히려, 사극 허준보다도 더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현대극들이 필자에게는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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