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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아이와 시내 나들이를 가기 위해서 오랫만에 버스를 탔다. 언제부터인가 자가용이 있어서 버스를 타본 지 한참 오래된 일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차 안의 승객들 대부분이 중고등학생과 4-50대 주부와 몇 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타고 계셨다.

처음 직장을 다니던 1980년에는 러쉬아워 시간에는 남자 직장인들이 많이 타고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자가용 출퇴근을 하는지 직장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차 안에 전에 보지 못했던 노약자석이 있었다.

전에는 경노석이라고 좌석위에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노란색으로 표가 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대부분 학생들이나 20대의 젊은 아가씨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눈을 감고 있든지 아니면 어두운 바깥 창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운전석 옆에서 힘들게 올라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외면한 채로.

전에는 지금보다도 버스 타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콩나물 시루'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그래도 노인분들이 올라 오시면 자리를 양보하고 임산부나 아이들이 타면 누가 먼저랄 것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앞에 가방을 들고 있는 학생을 보면 가방을 들어주는 자그만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하루종일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서 피곤하게 일을 하고
집으로 가는 시간에 좀 편안하게 앉아서 가려는 마음을 모르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버스 안에 서서 가시는 분이 우리의 부모님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좌석을 양보해 드리지 않겠는가.

비록 좌석을 양보하는 작은 일이지만 그 일이 젊음이와 연세드신 분과의 다리를 놓아주고 이해하는 큰 사랑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양보, 그것은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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