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수(62년생, 서울대 법대 81학번, 82년 4월 실종) 씨 실종 의혹의 한가운데에 한 독서실 총무가 있다. 기자는 지금 그 총무를 찾아 약 2주간 헤매고 있다.
18년 전, 정치적 실종 의혹을 제기한 '자하 독서실' 총무
노진수 씨가 실종된 82년 4월 어느날, 가족들은 노씨가 머물렀다는 독서실 총무로부터 노씨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 듣게 된다. 새벽에 기관원으로 보이는 체격 건장한 세 사람이 찾아왔었다는 것, 그 중 한 명은 밖에 있었고 두 명이 러닝 바람인 노씨를 데리고 나갔다는 것이다.
놀란 가족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난 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금방 돌아올 것 같지 않으니 실종신고를 내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노진수는 당시 학년대표가 아니었던가. 이때부터 가족들은 노씨의 실종이 '정치적'인 이유일 것이라 생각했다. 노씨의 어머니와 누나는 당시 독서실의 이름을 '자하 독서실' 또는 '자하연 독서실'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7년 뒤, '자하' 인가 '정우'인가
그로부터 17년 뒤인 99년 7월. 당시 노씨 실종을 취재했던 MBC 박장호 기자는 한가지 딜레마에 부딪혔다. 82년 당시 독서실은 등록제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록을 찾아봐도 82년에 '자하' 또는 '자하연'이라는 독서실은 없었다. 박기자는 가족과 함께 그 독서실을 찾아 나섰다. 2주 취재 일정에 1주 이상을 독서실 찾는데 할애했다. 17년이라는 세월동안 많이 변한 신림동 거리. 그 거리를 취재진과 노진수 씨 가족은 돌아다녔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 독서실이 있던 건물을 '콕' 찍지 못했고, 어쩌다 "이 건물인 것 같다"고 지목해도 그 건물은 82년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거의 포기 직전이던 MBC 취재팀에게 노씨 어머니와 누나는 어느 2층 건물을 "확실하다"며 지목했다.
신림동 일대에서 몇 안되는 82년부터 있던 건물. 조사 결과 그 건물에는 당시 독서실이 있었다. 하지만 독서실 이름이 '자하'나 '자하연'이 아닌 '정우'였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는 가족들이 '정우'와 '자하, 자하연' 독서실 이름을 혼동했을 가능성과 다른 하나는 취재팀과 가족들이 '자하, 자하연' 독서실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독서실 등록 명부에 '자하, 자하연' 독서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던 박기자는 전자로 판단했다.
그리고 '정우' 독서실 주인과 총무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당시 박기자는 정우 독서실 총무를 만날 수 없었다. 정우 독서실은 주인의 아들 이○○씨가 총무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IMF로 인해 사업부도를 내고 도피중이었다. 혹자는 외국으로 나갔더라는 말도 했다. 박기자는 이씨의 처를 만났지만 노진수씨 실종에 관련한 아무런 얘기도 들을 수 없었다. 박기자는 여기서 취재를 접었다.
다시 일년 뒤, 인터뷰를 거절한 정우 독서실 총무
경기도 부평의 이씨의 주소지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집의 주인에게 연락했다. 집주인 김씨는 이씨를 알고 있었다. 사업동료였고, 이씨가 부도 때문에 도피 중이라 주소지를 이곳으로 바꿔 옮겼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씨의 연락처를 모른다고 했다. 다만 이씨에게 연락이 오면 중간에서 연결시켜준다고 했다.
5월 22일 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가 인터뷰를 거절하더라, 거취가 불편해서 만날 형편이 아니다." 노진수 씨 가족들에게 노씨의 마지막을 증언해줬다는 '자하, 자하연' 독서실 총무. 거취상 취재에 응하지 않는 '정우' 독서실 총무. 이 둘은 동일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기자의 취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한다. 1년 전으로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1년은 18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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