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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월요일, <조선일보>는 역시 날아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노출된 적의 약점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의 중추신경을 자르고 있다.

적의 약점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장원 씨의 성추문 사건>이고, 이것을 매개로 감히 조선일보에게 악을 써대는 시민단체를 향해 "추잡한 놈들아! 너희들도 별 수 없구나!"라며 마음껏 조소를 보내고 있다.

1면에는 <총선연대 대변인 장원 씨 여대생 성추행혐의 영장>, 2면의 만평에는 <선거사범 이갈았다. "혼자 깨끗한 척 하더니 들어오기만 해봐라">, 30면에는 <팔베개만 신체접촉 안해> <포옹도 몸 곳곳 더듬어>, 31면에는 <"이젠 누굴 믿냐" 배신감...허탈...>등의 기사로 아주 많은 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제 10년동안 쌓아온 장원은 완벽히 죽었고, 또한 선명성과 도덕성이 무기인 시민단체들은 카운터 펀치를 맞고 말았다.

나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91년 명지대에서 데모 도중 사망한 고 강경대 열사의 생각이 난다. 당시 언론과 권력은"고작 1학년생이었던 그가 사회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열사의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 그의 죽음은 정치권력과 별개로 단지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논지를 펴며, 사건을 축소하기에 바빴다. 당시 기억으로는 연세대의 김동길 박사님도 TV에 출연해 "하나의 우발적 사건에 역사와 민주를 갖다 부치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한 적도 있다.

당시 대학생들과 민주세력에서는 "강경대의 죽음은 오랜 군부통치 세력하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어던 역사적 필연이다. 정치 사회구조상 강경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민주화를 위해 노태우 정부는 다양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라는 논지로 전국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즉 강경대의 죽음은 데모 현장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건 당시의 정치와 사회구조 시스템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민주개혁을 이룩해야 한다라는 논리 전개였다. 당시 나는 이 입장을 선호했고, 그 덕분에 길거리로 몇번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장원 씨 사건은 사뭇 91년 때와는 다른 정반대의 접근법으로 조선일보를 위시한 언론권력들은 다가가고 있다.

분명 이번 문제는 하나의 우발적 사건이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것을 시민단체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고 있다. 언론들은 "시민단체의 시스템상에서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라는 논지를 교묘히 펼치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시민단체 무용론>까지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느낌이다.

장원 씨는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필자가 그 날 장원 씨와 같이 술자리에 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언론에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분명 잘못했지만, 이것을 시민단체 전체를 매도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언론과 보수세력의 술수 또한 역겹기 짝이 없다.

그리고 시민들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개인적인 사건이다. 그것으로 인해 총선연대나 시민단체의 이제까지의 활동까지 소급적용해 무조건 욕을 해대는 1차원적인 행동은 삼가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부속품 하나가 결함되었더라도 그 자동차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처럼 한 개인의 우발적 실수로 인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시민단체 전체를 내동댕이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당부한다.

덧붙여 우리가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에 마구 쏟아내고 있는 글들이 당사자에게는 아주 소중한 인권과 직결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신중한 글쓰기를 당부드린다. 제발 선정적인 언론의 춤사위에 놀아나는 주관없는 인간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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