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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분말농약을 밀가루로 잘못 알고 부침개를 해 먹다 중독된 농촌의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가 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었다.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한해에 4백명이 넘는 농민이 농약중독으로 순천향의대 천안병원에 실려온다고 한다. 이러한 농약중독환자를 15년이 넘게 전문적으로 치료해 오면서 농약으로 인한 피해가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오늘도 점심을 후닥닥 먹고 그는 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늘 만난 분은 순천향의대 천안병원 내과교수로 농약중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홍세용 교수님이다. 부드럽고 따스한 미소로 음료수를 권하는 교수님의 눈은 아름다웠다.

죽어가는 농약환자들 안타까워 농약연구 뛰어들어

홍 교수님은 자신을 '가난한 농촌에서 잔뼈가 굵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농촌지역에 자리한 천안 순천향병원에서 15년째 내과의사로 근무해오면서 주로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을 진료해오고 있는 의사이다'고 소개했다.

"저는 원래 신장내과 전문의입니다. 의사로 일하면서 농약을 먹거나 중독된 농민들이 병원에 실려오는 것을 무수히 봐 왔습니다. 제초제를 마신 환자가 링겔을 꽂고 죽을 때만 고통스럽게 기다리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의사로 죽어 가는 환자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보다 더 고통스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농약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농약연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겁니다."

두 눈을 뜨고 죽어 가는 농민들을 보기가 괴로워 농약연구의 길로 들어선 지 15년. 홍 교수님은 우리나라 농민의 인구가 5백여만명이지만, 우리나라엔 농약전문 병원도, 농약전문의사도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누군가 농약중독으로 쓰러져가는 농민을 구하고, 더 근본적으로 농약이 끼치는 위험과 피해를 연구해야 하는데…. 자신이 이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홍 교수님이 80년대 중반 농약연구를 시작하려고 하니 당시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주로 외국문헌과 국내 농약제조회사의 자료, 그리고 농약중독환자를 치료한 결과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농약이 어렴풋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홍 교수님에게 먼저 이 만남의 큰 주제인 '농약'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농약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곤충, 쥐, 선충(nematode), 식물에 침범하는 세균(곰팡이, 박테리아) 등을 포함하는 살균 살충제(pesticide)와 잡초를 예방하거나 박멸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초제(herbicide)뿐만 아니라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과 농산물의 보관, 건조에 사용되는 약물들도 포함합니다."

교수님은 이들 가운데에서 인체에 큰 해를 미치는 농약은 주로 살균 살충제와 제초제라고 말했다. 그외에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과 농산물의 보관, 건조에 사용되는 약물들은 급성 중독증을 유발하는 약물이 거의 없다고 했다.

교수님이 저술한 '농약중독치료지침서'에 97년 3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약 2백여종의 살균 살충제와 75 종류의 제초제 성분이 제품화되어 있으며 이들을 용도별로 보면 58 종류의 살충제와 13 종류의 제초제로 분류할 수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교수님은 이러한 살충제·제초제의 남용 혹은 오용으로 인해 매년 수천명 이상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중 천여명 이상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순천향의대 천안병원에만 1년에 4백여명에 이르는 농약중독환자가 찾아온다고 한다. 이중 90%는 농약을 마신 자살기도자들이고, 10%가 만성중독이나 사고에 의한 중독환자라고 한다. 농약은 농산물의 생산을 늘려 경제적으로 이로울 뿐 아니라 전염병의 매개역할을 하는 약간의 충을 박멸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사용은 환경 보건학적 측면에서 다소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고려할 때 농약의 사용이 인류에게 궁극적으로 이롭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홍 교수님은 말한다.

자비로 '농약중독연구소' 차려 정부지원 꼭 필요

농약에 대한 연구의 틀이 서서히 잡히자, 홍 교수님은 지난 90년 3월에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농약중독연구소를 혼자의 힘으로 설립했다. 그후 10년 동안 기업이나 농민관련기관의 지원 없이 홍 교수님의 자비로 연구소를 꾸려왔다.

현재 자신을 포함 전문의 2명, 수련의 4명이 함께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교수님께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려면 대기업이나 농협, 농림부 등 관련기관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다. "필요합니다. 그 사이에 국가기관, 교육부 등에 연구 프로젝트를 냈으나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금년에도 보건복지부에 연구비를 좀 신청했는데 어쩔려는지…." 정부나 농민관련기관의 무관심을 교수님은 조금 섭섭해 했다. 홍 교수님은 이 연구소에서 먼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농약의 성분을 분석하고 치료법을 연구했다.

특히 최근에는 사용 중단된 지 20년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인체와 토양에 중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DDT피해와 인체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중이다.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둘째 국제적으로도 농약치료법이 체계화되지 않았기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농약질환에 대한 자료를 꾸준히 정리해 이를 국제화하기로 했다. 이 자료들은 금년 중으로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교수님은 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일은 무엇보다 농약환자들을 치료하고 상담을 해 온 일. 급속중독환자와 만성중독환자들을 치료하고, 치료결과를 계속 자료로 만들고 있다. 특히 지난 98년 '농약중독치료지침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98년 3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농약을 대상으로 성분과 독성, 치료법을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은 농약을 크게 살균 살충제와 제초제로 구별하였고 환자대부분이 농촌지역에서 발생하고 약의 오×남용에 의해 중독되는 점을 고려해 농민들에게 익숙한 상품명으로부터 성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서술된 책이다.

홍 교수님은 또한 자신의 연구정보와 농약의 피해에 대해 널리 알리기 위해서 인터넷을 활용하기로 했다. 작년 9월경부터 인터넷 농약중독연구소(http://www.schch.co.kr/schlab.htm)를 통한 정보제공과 상담을 계속 해 오고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교수님이 저술한 '농약중독치료지침서' 전문을 볼 수 있다. 또한 농약에 관한 강좌제공과 함께 실시간으로 농약중독에 대한 인터넷 상담도 할 수 있다. 개설된 후 초등학생, 대학생, 한의사, 농민, 중독환자 등 수많은 이들이 이 상담실을 이용하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와 청정한 농촌환경 만들어야"

경기 분당이 댁이라는 홍 교수님은 부인 김난숙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계신다고 한다. 자신도 부인께서 시장에서 사 오시는 유기농먹거리를 먹고 있지만 솔직히 '이게 100% 무농약이며 전혀 오염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아무리 유기농산물이라고 하지만 그 농산물이 재배되는 토양이 오염되어 있으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그런 교수님에게 앞으로의 포부가 어떠하냐고 물었다.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기농이라고 해도 오염된 토양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잔류농약 등 농약에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농산물에 들어있는 농약을 정확히 밝혀내고 이러한 농약이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분석해 농약의 위해성으로부터 농민과 국민을 지켜내는 일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홍 교수님은 다시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농약중독에 관련된 연구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짧은 점심 시간에, 방문한 일행에게 점심을 대접하지 못하신 일을 못내 미안해하시는 홍 교수님의 선한 얼굴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섰다. 만개한 벚꽃이 분분히 시원한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홍세용 교수님은 '행동하는 지식인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전세계적으로 환경오염에 지구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기에 '실천과 행동이 소중할 때이다' 는 것.

이론만 강조하고, 패러다임만 강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지구와 환경을 살리는 일이 더없이 필요한 때이다.
교수님은 최근 미생물을 이용해 친환경농업의 확산을 실천해 가는 한 농업벤처기업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제 농약중독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 땅과 농민들, 소비자들에게 농약의 위해성을 알려내고 농약 없는 세상을 위해 치료하고, 연구하며 실천하는 홍 교수님과 같은 이가 더없이 소중한 때이다.

◇ 홍세용 교수(1948년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
·순천향병원 신장내과교수
·저서 「농약중독치료지침서」
·현 순천향천안병원 농약중독연구소장

◇ 농약중독연구소

천안시 봉명동 23-20 순천향천안병원 외래관 2층
전화 (0417)570-2121 / 팩스 (0417)574-5762
e-mail - syhong@sparc.schch.co.kr

- 취재에 도움주신 분 : 안병권 이팜 부사장, 이기상 이팜부설 생물적방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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