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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명이 넘는 후보가 출마했던 4.13 국회의원 선거, 그 가운데 겨우 263명만이 '영광의 금뱃지'를 달게 되었다.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게임 치고 비정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마는 선거는 그 비정함에 있어서 스포츠를 능가한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변함없이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지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다 있지.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4년 후를 기약하며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할 낙선자가 선거의 뒤끝에서 그 어떤 승자보다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말이다. 부산 북/강서을 선거구의 노무현이 바로 그 이상한 낙선자다.

이곳 '전투'의 승자는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한나라당 허태열 당선자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거머쥔 허씨의 이름은 패자의 인기에 가려 도통 세인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가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 온 인물인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의 이름 석자는 다만 노무현의 낙선을 의미하는 정치적 기호에 불과하다. 아니, 이런 억울한 일이 다 있나!

노무현 후보의 낙선이 불러온 파장은 하나의 '현상'이라 할 만하다. 유력 일간지들이 선거 바로 직후부터 대문짝 만한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시사주간지들도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취재필름을 내보냈다. 일개 국회의원 선거 낙선자를 이렇게 집중 조명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노무현 씨의 인터넷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는 방문자들이 쇄도해 며칠만에 1천여 개가 넘는 위로와 격려의 글을 게시판에 남겼다. 펜클럽 홈페이지가 개설되는가 하면 지지자들이 지역별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만들어 오프라인 모임을 열기 시작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의 낙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표현한 대로 "'바보 노무현'에게 소낙비 같은 울분과 격려가 쏟아진" 것이다.

'노무현 현상'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위험수위에 오른 우리의 정치현실에 비추어보면 그 신선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7일 저녁 지역감정 해소책을 주제로 강연을 하러 광주 YMCA회관을 찾았던 노무현 의원은 시민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느라 강연이 끝난 뒤 20여 분 동안이나 강연장을 떠나지 못했다.

영화배우, 탤런트, 스포츠 스타,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팬들의 사인요청 공세를 받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정치인도 경우에 따라서 그런 열성팬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은 정치도 하기에 따라서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의 전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앞으로 4년 동안 원외에 머무른다면 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지기 쉽다.

선거법 위반으로 여러 곳에서 당선무효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서 어디에선가 재선거를 치르는 곳에서 출마할 수는 있겠지만 알맞은 선거구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또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에 나설 경우에도 대중적 인기만으로 대의원들의 표를 모을 수는 없는 일이다.

최후의 발언권은 언제나 유권자의 몫이다. 한나라당을 밀어서 김대중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노무현 후보를 낙선시킨 부산 북/강서 을구 유권자들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지역 유권자들이 그의 재기를 도와줌으로써 그 선택의 효력을 정지시킬 권한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선거는 유권자 사이의 경쟁이며, 이 경쟁이 끝나지 않는 한 '노무현의 선거' 역시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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