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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너희가 카스트로 밑에서 살아봤느냐!"

여기 아틀란타에서 9시간 정도 남쪽으로 드라이브해서 내려가면 만나는 도시. 마이애미.
거기서 큐반 아메리칸(Cuban -American)들이 엘리언을 심리학적으로 학대하고 있다는 빗발치는 비난 속에서도 죽기 살기로 외치는 함성이 지금도 여기까지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다.

그런 날 코리안 아메리칸(Korean-American)인 나는 센서스의 날(4월 1일)을 훨씬 넘긴 오늘까지도 센서스 설문지를 앞에 놓고 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임을 놓지 못하고 있어.

이유야 어찌됐건 근 6개월간이나 미국을 흔들고 있는 저 '큐반 아메리칸' 못지 않은 정치적인 힘을 '코리안 아메리칸'들도 발휘하려면 분명 센서스에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나를 정의하는 용어중의 하나인 그 '코리안 아메리칸'은 또 나로 하여금 선뜻 펜을 들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
그것도 남한 출신이냐 북한 출신이냐를 따져 물어야 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앞에 아무 것도 붙지 않는 그냥 아메리칸(백인)들은 센서스 설문지에 기록한 자신의 개인정보가 컴퓨터에서 도둑질 당할까봐 그것만 불안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나는 아메리칸 앞에 따라 붙는 '코리안'이라는 단어처럼 거기에 더해지는 또 한가지 불안감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세계 2차 대전 때 여기 미국에서 불이익을 당했던 '저팬 아메리칸(Japan-American)'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철조망 너머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그 일본 청년들의 눈빛이.

2차 대전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느냐?

미국 센서스국의 통계자료가 저팬 아메리칸들의 신원을 밝히는데 사용되었고 그들을 수용소에 따로 가두는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는 얘기지. 미국 센서스국은 이 사실을 20년 이상 부인해왔고 중요하고 중요하다는 2000년 미국 센서스를 준비할 때까지도 그네들은 일부 거짓말을 했다고 해.

결국 여론에 못 이겨 지난 3월, 센서스국 담당자는 "미국 정부가 신실한 저팬 아메리칸들을 수용소에 수감한 사실은 미 정부와 미국 역사에 슬픈 일로 기록된 순간이었으며 센서스 국이 그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하필이면 여섯 가정 중에 한 가정 꼴로 배달되는 긴 설문지(long form)를 받아든 나는 그 기록의 자세함 때문에 지레 질리고 있어.
정부가 불순한 용도로 사용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호주가 기록해야하는 53개 문항과 무려 27페이지에 거쳐 우리 네 식구에 관한 개인 정보를 샅샅이 기록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떨쳐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구나. 앞으로 72년간 그 정보를 비밀로 지켜준다고 하는데도.
그 중에는 이런 문항도 있다.

- 영어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 5년 전에 어디에서 살았습니까?
도시나 타운의 구역 내에서 살았습니까?

- 지난 주에 임금을 받거나 수입이 되는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인 경우 25번에서 26번 질문에 답하십시오.

- 본인이 하는 일에서 가장 주요 활동이나 업무는 무엇입니까?

- 살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화재보험, 위험부담보험, 홍수보험은 얼마나 됩니까?

글쎄, 저팬 아메리칸의 경우를 보아서 그런지 이름과 나이 생년월일, 인종을 따져 묻는 것부터 시작한 53개 문항(서브 문항까지 합하면 90여개)을 살펴보면서 앞으로도 미국 정부가 센서스 데이타 유출을 적절하게 막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저절로 묻게 되네.
내가 이런데 불법체류자중 이걸 쓸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 내일 이걸 보내지 않으면 곧 가정 방문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센서스를 한다는데.
이걸 안 하면 연방법으로 100 달러의 벌금을 물도록 정해져 있다는데.
거짓말로 쓴 것이 들통나면 500 달러로 늘어나고.

나는 내일 이걸 쓸 수 있을까.

'큐반 아메리칸'과 '저팬 아메리칸' 사이에서 한 '코리안 아메리칸'이 고민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미국 센서스(인구조사)는 10년마다 하는데 바로 올해가 센서스를 하는 해다.
미국 정부는 2000년대를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 하고 있다.

센서스국에서 내세우고 있는 센서스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각 주의 의회 하원의원의 수는 주(state)에서 거주하고 있는 주민 수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
둘째, 내가 기재하는 대답에 따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받는 정부 보조기금이 정해지고 그 기금으로 학교, 고용 서비스, 주택 보조, 도로,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서비스, 기타 필요한 곳에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센서스국에서는 인구조사를 통해 얻어진 각종 정보는 법에 의해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며 타 정부기관(이민국, 사회보장국, 경찰, 법원 등)에 정보가 누출되는 일은 결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들과 관련 특이한 점은 미국 센서스 역사상 최초로 인종 부분에 한국인이 아시아인으로 묶이지 않고 '한국인'으로 따로 분류되었다는 점.

지난해 3월부터 센서스 홍보가 시작된 이래 여기 한인사회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을 신장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각 한인단체와 언론이 이를 선전하는 것은 이번 기회를 통해 센서스 국에서 얻어낼 수 있는 광고와 고용창출도 한 몫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국제 결혼한 경우 자녀를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답하라고 적극 권유하는 모습도 보이고. 특히 한국의 IMF이후 엄청 늘어났다는 불법체류자들의 센서스 참여 권장도 빼지 않고 있고. 
법적, 경제적 신분에 상관없이 현재 미국에 살면 누구나 해야되는 센서스.
따라서 불법체류자들을 비롯 신분상 불안한 사람들이라도 센서스로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아니니 꼭 참여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참고로 말하면 현재까지(4월 1일) 설문지를 기재해 센서스국으로 반송한 가정(미국의 모든 가정)은 44%.
한인 미주 총연에서 집계한 미주 한인은 3백만 명.
아틀란타 총영사관에서 최근 출입국 관리소 자료를 근거로 산출한 아틀란타의 한인은 대략 10만을 헤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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