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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님은 탐험뿐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보시는 눈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이다. 특히 '조선일보'를 강하게 성토하신다.

"2차 발해뗏목탐사대를 준비하면서 기획서때문에 수십차례 분당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그 분당가는 버스가 '일등신문 조선일보'라는 광고판을 부착하고 있더라구. 걸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버스는 안탔어. 거 지랄같데"

방대장님은 중학교 학력이 전부이다. 서슬퍼런 박정희 유신시절, '단순히 손 몇번 흔들었다고' 3개월동안 감옥에 복역해야 했다가 박정희씨의 죽음과 함께 풀려나야 했다.

그후로 무언가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세상이 들자 무작정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세상을 향한 꿈을 꾸셨다고 한다.

"첨엔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구. 뭐 뜻을 알아야 보지. 스물몇살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부르조아니 프롤레타리아니..뭐..이딴 용어만 나오니까 미치겠더라구."

이제 마흔셋이라는 나이. 대장님은 아직 미혼이시다.
"대장님 왜 결혼않으셨어요?"(기자)
"허허..뗏목타기 위해서.."
"에게.."(기자)
"그건 거짓말이구. 독신으로 살아야겠다는 특별한 마음은 없는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반려자를 아직 못만난것같애. 그리고 원래 탐험이라는 일이 그래. 주말이면 같이 여행다닐시간에 이리저리 탐험간다고 떠나고,또 수십일씩 집을 비우게 되는데, 원래 탐험이라는게 그렇잖아. 그치만,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반려자를 만나면 결혼해야겠지. 그리고 뗏목타기 전엔 절대 결혼 안할꺼야."

오늘도 기자는 독도수호일로, 대장님은 발해뗏목일로 한사무실에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밤을 새우고 있다.

2000년 발해뗏목탐사대는 원래 2월 5일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이 설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연기해야 했다. 3월 1일로 연기했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12월 31일로 연기했다. 1차 발해탐사대가 출발한 날짜와 동일한 날짜이다.

그런데 출발예정날짜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겨울이다.
"대장님, 왜 추운 겨울철에 굳이 뗏목을 띄우려 하십니까?"
"기록을 보면 발해는 일본과 36차에 걸친 교역을 했는데, 34차례가 사신 왕래였고, 1차례가 무려 1000명규모의 민간교역, 1차례는 발해망한후에 발해사신의 교역이었어. 1차부터 18차까지는 지금의 두만강부근인 동경용원부(훈춘.끄라스키노)에서 출발했는데 대부분이 10월,11월이었어. 근데 이때 사고가 많았어. 발해에서는 일본으로 가기 위해 겨울에 북서풍을 이용하면 되니까 겨울철에 출항한거지...."

이야기가 밤을 새울것 같다. 대장님은 3개월동안 발해관련 책이라는 책은 다 독파했다고 한다. 아마 발해사라면 국내에서 몇손가락안에 드는 지식을 가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단지 지식을 쌓기위해 배웠다면, 난 살기위해 책을 읽었어.어느 누구라도 나처럼 '죽음'이라는 단어앞에서는 다 그럴꺼야. 망망대해 동해에서 뗏목하나에 의지해 우리 대원들을 책임져야 하거든. 그리고 난 발해 뗏목탐사가 전부는 아니거든. 앞으로 더 큰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게 뭔데요?"
"이거 공개해도 될려나..태평양을 뗏목타고 건너는거.."

우리국토 곳곳을 22일동안 자전거로, 99일동안 발로 돌아보며 체험하셨던 대장님은 장철수씨와의 약속을 지킨 후에는 꼭 태평양을 건너보겠단다.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고 싶어..탐험정신..그 탐험을 통해 잃어버린 우리의 희망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거든.
그리고.꼭 다른사람들에게 바라고 싶은것은 우리국토를 밟아보고 밖으로 나가라는 거지. 자기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외국것만 좋아하는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뿌리가 없는데 ..."

그러면서 대장님은 태평양건너기전에 꼭 바라는것이 하나 있다고 하신다.
"지금은 분단때문에 비록 러시아에서 출발하지만, 북한에서 꼭 출발하고 싶어. 발해가 36차에 걸쳐 일본과 교역을 하면서, 19차부터는 북한지역인 토호포(지금의 원산-청진사이로 추정됨)에서 출발하거든. 두만강 근처의 동경용원부 항이 겨울철이니까 얼지 않는 부동항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거든. 그래서 꼭 발해시대처럼 북한에서 부산으로 오고싶어."

대장님은 그 말씀을 하시며 소주잔을 기울이신다. 분단이라는 단어에 또 한번 역사의 아픔을 생각하시는가 보다.

이제 방대장님은 올 12월 31일 출발을 위해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메신다.
하지만 이전처럼 또 연기될지 모른다. 탐사경비 3억 6천이 없어서이다.
대장님은 몇번을 우셨다고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좌절했을거여. 허허. 그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수십권을 쓸꺼야. 오죽했으면 이민갈 생각까지 했겠어. 프랑스 외인부대에 한 몇년복무해서 탐험경비까지 마련할 생각까지 했다니까. 방송사에서나 기업체에서 몇차례 교섭은 들어왔지만, 방송촬영권에만 관심을 두고 스폰서 문제는...기업체에서도 나중에 어렵다하고..기대를 한껏하다가 그런 소리들을때마다 참 수없이 울었지..."

"외국에서 탐험가는 우리에 비교하면 왕이지. 정부나 기업체에서 탐험가가 탐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건을 조성하는데..거참.."

기자가 이글을 쓰는 이유도 방대장님을 뗏목을 태우기 위해서 라는게 솔직한 이유일것이다. 누구 방대장님 뗏목 태워주실분 안계세요?

기자가 독도사랑동호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덕에 대장님께 한번 물어봤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망언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간단해.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대야타고 가면 돼. 계속 망언하면 내가 대야타고 갈꺼야. 일본에서 대야타고 독도와보라고 해. 못와.."

역시 발해2000뗏목탐사대 대장님 다운 말씀이다.
대장님의 탐험성공을 진심으로 빌어본다.
아니 그전에. "우리 대장님, 누구 뗏목 태워주실 분 안계세요?"

덧붙이는 글 | 발해2000뗏목탐사대 임시사무실 02 - 588 - 8150
  방의천 대장님 연락처 019 - 377 - 1915
  
  참고로. 핸드폰번호의 마지막 번호 '1915'는 지리산 천왕봉산높이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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