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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사, 같은 논설이라면 차라리 하루 쉬겠습니다"
동아일보 TV광고 카피다. 이 광고에서 동아일보는 '살아있는 시대정신'을 자처한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75년 3월 17일 동아일보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언론자유를 주장한 기자들에 대한 무더기 해직이었다.

어제 3월 17일 저녁 7시,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동아일보의 '시대정신'을 확인시켜주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25주년 기념식. 25년전 동아일보사로부터 '민족의 적' '소수 과격분자'로 낙인찍힌 사람들과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잇겠다는 언론계 후배 등 100여 명이 자리를 같이 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성유보 現민언련이사장, 이하 동아투위)는 언론운동史와 민주화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20-30대 젊은층은 말할 것도 없고 장년층 이상에서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정도로 희미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일장기 말소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태'를 자신들의 '시대정신'인 양 호도하기도 한다.

그 사태의 진짜 역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74년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해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하는 등 폭압의 강도를 높였다. 언론들은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물론 시위소식 조차 싣지 못했다.
일선 기자들의 자괴감은 말할 수 없이 컸고, 마침내 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 PD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게 된다.

이들은 선언을 통해 '부당한 외부압력 배제' '각계의 정당한 의사표시 반드시 게재' 등을 결의했다.
(그리고 보도 내용을 놓고 사측과 마찰을 빚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하루 쉬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동아일보가 '비판적인' 기사를 싣게 되자 박정권은 기업들에게 압력을 넣었고, 기업들은 동아일보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됐다. 국민들이 폭발적인 '격려광고'를 통해 동아일보를 지지했으나 동아일보사는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자유언론운동에 앞장선 기자들을 징계하고, 다시 이를 항의하는 기자 133명 모두를 해고했다.

75년 3월 17일은 바로 동아일보사가 농성 중인 기자들을 각목과 쇠파이프로 쫓아낸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부터 '해직기자'가 된 사람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동아투위'며 이들 중 상당수가 재야 언론계에서 우리의 언론사를 다시 쓰게 된다.

17일 동아투위는 성명을 통해 "동아일보사에 대한 '사죄와 원상회복, 그리고 배상'이라는 요구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대신 동아투위는 "동아일보사가 반성과 사죄를 통해 스스로 거듭 태어날 의지가 없다면 동아일보사는 마침내 언론개혁의 주요한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면서 언론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언론개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75년 자유언론을 외쳤던 동아투위의 기자들은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고 이미 타계한 사람도 있다. 기자들의 해직에 항의에 스스로 사직한 당시 편집국장 송건호 선생은 독재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수년째 투병중이다. 동아일보가 광화문 한복판에 빛나는 '미디어센터'를 짓고 '살아있는 시대정신'을 외치는 동안 이들을 위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25년 전 이들이 외쳤던 '자유언론'의 정신은 시민언론운동과 언론노동운동으로 계승됐지만 동아일보는 이를 '이윤추구의 자유'로만 계승하고 있다. 더 불행한 사실은 진정한 '언론의 시대정신'을 상실한 것이 비단 동아일보만이 아니라는 현실이다.

행사에 함께한 최문순 언론노련 위원장은 "선배님들을 '영원한 해직기자'로 남게 한 후배들의 잘못에 대해 자책감을 느낀다"며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해 언론민주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치열한 '언론고시'를 뚫고 '언론인'이 된 후배들이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75년 당시 조선일보도 자유언론운동에 나선 기자 33명을 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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