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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오연호 이병한 공희정 박수원 김미선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화제의 인기코너 '오마이뉴스 열린 인터뷰'는 3월 16일 밤 10시부터 11시 45분까지 민주당 386정치신인 김윤태 후보(마포갑)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영국 런던대 박사(정치사회학)로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연구자이기도 한 김윤태 후보는 제3의 길의 한국적 적용 가능성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 요즘 많이 바쁠텐데 오늘은 몇 명이나 만났나.

"오늘은 마포 갑 지구당 개편대회가 있었다. 약 1500명 가량을 만난 것 같다. 새벽에 민방위 교육장에서 500명, 전철역에 서서 인사한 사람들 약 300명. 저녁에 여러 모임에 가서 100여 명 가량 만났다. 지금 손이 아프다(웃음)"

- 잠은 몇시간이나 자나.

"4, 5시간 가량 잔다. 민방위 소집기간이라 그들 만나려면 5시쯤 일어나야 돼서..."

- 유권자들 만나보면 어떤가. 사람 만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솔직히 정치인이 체질에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의를 하면 머리가 아픈 반면, 시장에서 사람들 만나면 기운이 난다. 사람들이 정치신인에 대한 기대를 얘기해 줄 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럴때면 체질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 86년 총학생회장이었고 92년도에 영국으로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왜 교수의 길을 가지 않고 골치아픈 정치인이 되고자 했는지. 언제 처음 정치인이 되고자 결심했는지 말해달라.

"국회의원이 되고자 목표를 정한 적은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치가 중요하다고 학창시절부터 생각했었다. 그러다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학을 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2년간 강의를 했다. 21세기에 다양한 문화가 생기는데 정치권은 사회변화를 가로막는 것을 보았다. 그 때부터 젊은 시절에 가졌던 열정과 문제의식이 되살아났다."

- 그 사이에 모교인 고대에서 교수가 되었다면 2년만에 정치인으로 나오기 힘들지 않았을까? 교수가 안되었기 때문에...

"돌아오자마자 대학 교수가 되었다면 대학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사회학은 박사학위를 마쳐도 한동안 연구원 등을 해야 한다. 꼭 교수를 목표로 공부한 것은 아니다. 기회가 주어졌으면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치에 뛰어든 것은 교수에 대한 대안이라기 보다는 정치에 대한 관심, 즉, 사회변화에 대한 염원에 있다."

- 이번에 민주당에 입당해서 공천받는 과정에 주로 어떤 의원이 주도적으로 같이 하자고 했나.

"공천시 강동 갑이라는 내용이 신문에 보도가 됐는데, 그 때는 아무런 제안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공천심사위 정균환 특보단장이 그런 제안을 공식적으로 했다. 그 양반의 책임이 그거다. 김민석 의원도 청년세대의 영입을 맡았었으니 그 두 사람이 제안했다고 볼 수 있다."

- 고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이번에 정치권에 입문한 사람이 이인영, 허인회 김윤태 세사람이나 되는데, 민주당 내의 일부인사들이 고대인맥들을 팍팍 밀어준 결과가 아닌가.

"연대도 있고 서울대도 있고, 한양대도 있고 골고루다. 숫자는 고대가 제일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당 내에는 서울대가 제일 많다. 그 다음에 고대지만 고대출신 선배들이 입당을 권유한 적은 없다. 학연이 꼭 좌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얼마전 고대 총학생회장 출신 언론인은 "나만 남고 다 들어갔다"는 표현을 썼는데, 총학생회장들이 이렇게 줄줄이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보고 어떤 이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다같이 한 것인데 그들만이 열매를 따먹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말이 맞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10년 전에 총학생회장을 지낸 것이 정계입문의 주요 경력으로 인정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이후에 전문성이든, 사회운동이든 자기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느냐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학생회장 출신들도 실력을 갖추어 이념과 정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95년 서른 둘에 결혼을 했는데 사실 좀 늦은 것 아닌가. 80년대에는 무엇을 했고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나.

"95년에 만난 사람이다. 80년대는 감옥에 있었고, 90년대는 유학을 갔기 때문에 만날 사람이 없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

- 어느 순간 무엇때문에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처음 봤을 때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는데 굉장히 밝고 쾌활한 타입이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해심도 많은 것 같아 마음에 끌렸다. 나중에 듣고보니 내 처도 그랬다고 하더라."

- 사회학 박사로서 영국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을 연구했는데, 연애에도 그런 길이 있는지?

"있을수 있겠죠.(웃음) 80년대의 연애는 사회라든지, 소외된 사람에 대한 애정 등 동지애를 강조했는데, 90년대는 개성, 감각, 이미지 등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연애도 사회에 대한 관심과 개성에 대한 관심이 잘 조화가 되고 감각적인 사람과 동지같은 사람이 잘 조화가 되는 것이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성과 감성의 조화, 그것이 연애의 제3의 길이다. 그걸로 책을 하나 쓸까?"

- 부인과도 그렇게 하고 있나?

"이제는 그렇게 감각적이지 않아서(웃음)..그러나 그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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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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