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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식을 전파하는 외신 보도
1999년은 국제적으로 어떤 해였는가? 2천년을 맞이하는 전야라고 할 1999년은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저항 또한 매우 격렬하고도 진전된 형태로 전개된 시기였다. 이러한 저항은 정의로운 세계질서를 갈망하는 인류사회의 중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아야 하는 사태였다. 그리고 이는 미국의 패권질서 밑에서 유지되고 있는 식민지 또는 준식민지 체제의 극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차원에서 20세기적 야만과 폭력의 유산을 청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방언론들을 비롯하여, 이를 그대로 받아 적다시피 하는 국내 언론들의 외신(外信)보도는 세계적 전환의 결정적 흐름을 외면하거나 또는 짚어내지 못한 채 미국편향의 보도태도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국제정세 인식이 식민지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주도하는 외신공급은 비서구 지역에 식민지적 인식의 확대재생산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우리는 날카롭게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애틀의 격전', 미국언론 시위 폭력성 부각
지난 11월말과 12월 초,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벌어진 세계무역기구 WTO와 이 기구가 수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시위사태에 대한 보도는 그러한 경우의 하나이다. 미국 언론들을 비롯한 외신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작 중요한 본질보다는 시위의 폭력성과 시위조직 내부에도 이견이 엇갈렸다는 식의 보도가 주를 이루어 나갔다. 이는 초국적 대자본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서방의 유수 언론들의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이 시위를 통해서 제3세계 국가들이 어떤 문제를 제기했는가에 대한 명확한 조명이 결여된 결과였다.
'시애틀의 격전'이라고 불린 전세계 시민단체들의 국제적 연대를 기초로 한 항의시위사태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향후 진로에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와, 전환점적 의의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태변화는 미국에 뿌리를 둔 세계적 규모의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 패권주의적 세계질서를 유지 강화하려는 현실에 대한 세계적 저항의 움직임이 상당한 수준에서 조직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른바 <위에서부터의 세계화>에 대하여 민초들의 삶과 가난한 약소국들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밑에서부터의 세계화>가 중요한 미래적 대안의 형태로 전세계 인류의 눈앞에 제시된 것이라고 하겠다. 강자위주의 세계자본주의 체제 통합과정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저항할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세계의 약소국들과 가난한 민초들의 삶,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환경파괴의 현실이 전반적으로 체험되기 시작하면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체제적 저항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 시위의 본질은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폭력성에 대한 저항
그러나 언론들은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당국의 진압방식이 불가피했다는 식의 논조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가 먼저 폭력사태를 야기했는가 라는 논란이 일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충돌은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고, 언론들이 시애틀 사태의 본질, 즉 시민단체들이 주장과 이에 대한 WTO의 입장을 조명하기보다는 시위사태의 격렬성에만 촛점을 맞추어 보도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토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초국적 금융자본과의 대치전선이 이들 시위대와 시애틀 당국, 그리고 경찰간의 대결로 압축되어 논란이 전개되는 것은 본질을 희석시키려는 주류언론들의 전략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애틀 시위의 격렬성과 시민단체와 정부당국의 충돌에만 촛점을 맞추면서, 정작 문제가 되는 WTO의 행태와 정책은 이러한 보도과정에서 빠져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만 것이었다.


파나마 운하 반환, 파나마의 수난사 조명 없어
미국이 지배해왔던 파나마 운하가 1999년 12월 31일자로 파나마에게 영구히 복귀했다. 이로써 파나마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는 일단 종식되게 되었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로 인해 미국에 종속적인 국가로 지내왔던 나라가 이제 자신의 자산에 대한 권리를 되찾음으로써 중요한 국가적 발전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의회의 보수파들은 파나마 운하의 파나마 복귀와 관련하여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미국의 패권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고 불만을 터뜨렸고, 파나마에게 이 운하를 돌려주기로 20년 전 협정에 조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만이 미국의 중요 인사로 이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미국이 파나마 운하 양도에 대하여 매우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파나마 운하의 반환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적 운명의 변화를 상징하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외신을 비롯, 국내언론들의 파나마 운하사건 보도는 매우 간략했고, 그 보도의 중심도 라틴 아메리카 정책에 있어서 미국의 권리가 약화되었다는 식이었다. 이것은 파나마가 그간 주권국가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미국에 종속되어온 역사의 수난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인식을 보여주는 예였다.
파나마는 본래 콜럼비아에 속한 땅이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발과 이에 대한 권한을 독점하려했던 미국은 당시 씨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의 함포외교정책으로 해서 1903년 해군함대를 파견, 콜럼비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파나마 지역을 따로 독립시켜 미국의 식민지 국가로 만들었다. 함포외교란 당시 미국이 남북전쟁을 끝내고 나서 북부의 자본주의체제가 미국의 주도권을 갖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해외로의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서 택한 식민주의 전술이었다. 즉, 우세한 해군력을 앞세워 대상국가를 미국의 패권 하에 놓아두는 것이었다. 미국은 파나마를 그렇게 자신의 영향권내에 두는 것에 성공한 후 새롭게 세운 식민정부와 협정을 맺어 파나마 운하에 대한 독점권을 장악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나마 운하의 파나마 복귀는 이러한 식민지배의 역사가 끝나는 것을 알리는 파나마 독립선언과도 같은 사건인 것이다. 이는 홍콩반환에 이어 마카오 중국반환과 아울러 지난 세기의 식민주의시대가 종지부를 찍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사건이며, 한반도의 역사적 운명 또한 바로 그러한 물결 속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국내언론들은 미국에 대한 파나마의 주권회복의 역사적 의의를 주목하지 않았고, 파나마의 역사에 미국이 저질렀던 비극의 면모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카리브해안의 작은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의 <비크섬 투쟁>에 대한 국내언론의 철저한 외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미 해군폭격장 비크섬 반환투쟁
지난 1940년대 이래 미해군의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비크섬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미국의 자치령 푸에르토리코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푸에르토리코 독립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미해군의 철수와 비크섬 폭격훈련장 사용 영구 금지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비크섬을 폭격훈련장으로 사용하되 잠정적으로는 실탄사용을 하지 않고 훈련하는 동시에 5년 뒤 이 문제를 재검토한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미국의 그러한 제안이 결국에는 비크섬을 계속해서 미군의 훈련장으로 묶어두려는 계략이라고 보고 이에 대하여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 의회 내에서는 비크섬 만큼 전술적으로 미해군의 훈련을 위해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 없는 상태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너무 양보를 많이 한 것이 아닌가라는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비크섬 폭력훈련과정에서 푸에르토리코 인이 사망하고 이 지역 근방의 생태계와 생존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여명에 이르는 비크섬 주민들의 저항은 푸에르토리코인들 전체의 분노와 결합되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상태이다.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이후 미국이 지배하는 영토가 되었고, 이후 자치령이라는 식민지 상태로 존재해왔다. 그런데, 최근 카리브해안 국가들의 결속을 비롯하여 라틴 아메리카 전반에 걸친 연대의 강화와 이들이 미국에 대하여 보이고 있는 자주적 경향이 푸에르토리코인들에게 자신감을 서서히 불어넣고 있다. 독립운동을 통해 미국의 준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갑자기 살 길이 막막해지는 것을 우려해왔으나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결속구조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고리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다 자주적인 입지를 푸에르토리코에게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들은 미국의 폭격훈련장으로 자신들의 영토 일부가 사용되고 인명피해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으며 미해군 기지철수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가 더 이상 미국의 전략적 가치를 기준으로 대상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생존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미군 폭격장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현실인데도 (내일신문 12월 29일자 313호) 이를 국내언론들은 이러한 상황과 푸에르토리코 비크섬의 상황을 연결하여 조명하고 분석하는 노력을 일체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독도의 문제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주권이 유린되고 있는 지역이 존재하고 있는 것에는 무지하거나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카리브해의 작은 섬 푸에르토리코인들보다 못한 자주의식의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반증하는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멕시코, 외환위기 극복과정의 결과가 모순 심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 거세져

한편, 멕시코에서도 미국에 대한 저항운동이 연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미주 자유무역협정체제인 NAFTA는 북미대륙간의 경제블럭의 중심을 미국이 주도해나가는 체제라고 하겠다. NAFT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나라가 연결되어 있는 자유무역 체제인데 이 NAFTA를 구성하고 있는 한 축인 멕시코에서는 지난 4월부터 미국에 대한 시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북미주에서 미국의 패권적 위상에 도전이 되고 있다. 더우기 이들 시위대들이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 내 미국 대사관을 연일 공격하고 격렬한 폭력시위로 확대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는 중이다. 이들 시위대는 주로 멕시코 대학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애틀의 반 WTO시위 이후에는 시위사태로 구속된 시위자들의 석방과, 현재 사형선고를 받은 미국 내 흑인민권투쟁조직 블랙 팬더의 지도자 멈미아 아부 자발의 석방을 아울러 요구하고 있다. 이들 학생운동 조직은 멕시코의 국립자주대학 투쟁위원회 소속으로 26만8천명의 구성원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멕시코 내에서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멕시코의 학생들과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NAFTA 체제가 멕시코의 노동력을 미국기업에 의해 저렴하게 착취당하게 하는 구조이자 멕시코를 결국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어 가는 장치라고 비판해왔다. 멕시코가 금융위기의 과정에서 IMF의 신자유주의적 관리체제로 편입되고 이러한 조건을 기반으로 NAFTA 체제가 강화되면서 멕시코의 경제는 미국자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로써 멕시코 내에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빈민발생, 그리고 이로 인한 정치/사회적 저항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치아파스지역의 봉기와, 이를 출발점으로 한 자파티스타 농민반란군 조직의 등장도 바로 이러한 구조적 억압의 결과라고 하겠다. 이러면서 멕시코 내에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어가기 시작했으며 멕시코 경제의 종속성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다 조직화되어온 것이다. 시애틀의 반 WTO 시위의 성공은 이러한 멕시코 내 분위기를 보다 강하게 자극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질서 자체에 대한 도전이 보다 격렬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질서가 계속 유지되는 한 멕시코의 정의로운 번영과 자주적인 경제발전의 미래는 없다는 인식이 일게 된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굴러가면서 멕시코 내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이것이 지금 멕시코 시티의 시위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언론들은 이러한 멕시코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없고, 멕시코가 IMF의 정책에 따른 외환위기를 극복한 모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며, 이로써 멕시코가 오늘날 어떤 위기와 곤경에 처하고 있는지 주목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아세안 회의, 필리핀 민중들의 분노
지난 11월, 필리핀의 마닐라에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안보및 경제협력회의체인 ASEAN의 비공식 고위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이 아세안 회의의 기본정책이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깊은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정책의 기본방향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시위사태가 회의장 주변에서 열려 필리핀 정부당국이 진압에 나서, 동남아시아내부의 긴장과 고민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국내언론들은 이러한 시위사태와 필리핀 민중들의 고난에 대하여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조차 김대중 대통령의 아세안 회의 참석에만 관심을 나타냈을 뿐, 이에 대한 보도와 논평이 일체 없었다.
이날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발생한 아세안 회의 반대시위사태는 아세안이 동남아시아 인들의 삶을 팔아 넘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각 나라의 보호장치 없는 세계화가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얼마나 깊은 충격과 고통을 가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세계자본주의체제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에서 각 나라의 보호되어야 할 부분에까지 파고 들어 아직 역량이 부족한 가운데 좀더 성장해야 할 상황에서 경쟁력이 강한 외국자본의 시장장악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각 나라의 가난한 계층들이 일구어놓고 있는 경제분야가 이로써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농업분야의 경우에도, 미국의 거대한 농업생산력이 동남아시아 농업시장을 침식 장악함으로써 농업종사자들의 생활이 극도로 침해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동남아시아 농업 자체의 기본적인 기반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국가발전계획을 가지고 정부당국이 지원하면서 육성해야 할 분야를 방어하지 못한 채 자유무역의 원리에 이끌려 우세한 기술과 자본을 가진 쪽의 일방적인 시장지배가 이루어짐으로써 동남아시아 자체의 고유한 경제력신장의 여지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원리를 내세워 경쟁력이 없으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며 이로써 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나라의 경제적 역량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논리이며 세계경제의 발전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균형한 역사적 발전경로를 보이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는 강자의 논리라는 것이다.

강자의 논리에 대한 대안 제기운동
강자들은 이미 자신들의 발전체제가 경쟁력 강한 위치에 있음을 전제로 하고 이러한 방식의 접근을 약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약자들의 자기보호와 방어를 불공정한 무역거래라고 규정하여 강자들의 일방적인 지배가 가능한 쪽으로 몰아대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아세안 회의가 이러한 논리에 빨려 들어가 자국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외면하고 내부적으로도 가난한 계층들의 삶을 저해하는 정책들에 대한 일정한 방어장치를 만드는 일에 포기할 경우, 그러한 세계화정책이 가져오는 모순과 고통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갈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 하여 이들 시위자들은 아세안 회의 참여국가들이 이러한 세계화 정책의 어두운 이면을 명백히 직시하고 정책적 변화를 결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주장과 움직임들은 우리들의 현실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향후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변화를 국제적인 연대를 기초로 하여 도모하는 일에도 중대한 근거가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태를 보도하지 않고, 분석하지도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 자체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대한 사태라고 하겠다.

차베스의 개혁정치, 라틴 아메리카의 자주성과 민주주의 회복
베네수엘라의 개혁정치 또한 매우 주목되는 국제적 사건이다. 그러나 외신들과 국내언론들은 베네수엘라의 개혁정치 실험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대수술이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는 현실에 대하여 깊이 주목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베네수엘라는 그간 추진해온 개헌과 관련한 국민투표에서 70퍼센트 지지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새로운 헌법과 국가명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국민투표는 차베스 대통령의 주도하에 그의 지지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제헌의회가 내놓은 새로운 헌법에 대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뜻을 묻는 것이었다. 결과가 차베스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면서, 베네수엘라 정치와 경제의 부패, 타락, 그리고 보수세력의 기득권 지키기에 매우 중대한 개혁적 계기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또한 국가명도 베네수엘라에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19세기 스페인과 싸운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투쟁 지도자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것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의 자주성과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통합을 위해 투쟁했던,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영웅인 그의 정신을 이어받는 나라라는 것을 이로써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국가명까지 개명한 것은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대하여 종속적인 입지에 있었던 것을 혁파하고, 베네수엘라 자신의 독자적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혁명을 한 쿠바의 카스트로를 현존 지도자 가운데 가장 존경하고 있다고 공언할 정도로 베네수엘라의 자주노선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이번 국민투표를 통과한 새로운 헌법은 무엇보다도 먼저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거, 대선, 그리고 각지역 선거를 하도록 하는 정치일정을 공식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을 위한 정치혁명
칠레 아엔데의 실패한 실험, 그 좌절을 딛고

베네수엘라 의회는 베네수엘라 정치의 부패와 타락의 온상으로 그 동안 베네수엘라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아왔으며 베네수엘라 기득권 층의 대변자 역할을 해왔었다. 그러나 이번 개헌조처를 통해 해산되는 중대한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총선이 있기까지 이번에 해산되는 의회를 대신해서는 개헌작업을 책임져온 131명으로 구성된 제헌의회가 의회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과 베네수엘라 내부의 기득권 층들은 이번 개헌조처로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권위주의적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베네수엘라 정치와 경제로부터 소외되어온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압도적 다수로 차베스 대통령의 개혁정치를 지지하고 있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차베스 대통령의 개혁정치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번 국민투표 등을 통해 그를 지지한 세력들은 베네수엘라 국민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민중

덧붙이는 글 | 김민웅 기자는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코리아타임즈 기자로 일하다 도미,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목회활동과 언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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