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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에서.

퇴근후 직장 동료와 가볍게 소주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K. 담배가 다 떨어져 집근처 자주가는 담배가게에 들렀다. 그런데 평소 간단한 인사 정도는 나누고 지내던 담배가게 아저씨의 얼굴이 영 생기가 없어 보였다.

"아저씨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요?"
K가 먼저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담배 가게 아저씨는 멍하니 K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힘없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연은 이랬다. 어젯밤 늦게 머리를 노랗게 염색을 한 키 큰 청년 하나가 담배를 사러 왔고 아저씨는 아무 의심없이 담배를 팔았다. 그런데 서너 시간쯤 지난 후 경찰차가 가게 앞에 서더니 아까 그 청년과 경찰이 내리더라는 것이다. 경찰은 담배 가게 아저씨에게 이 사람한테 담배를 팔았느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바로 경찰서에 밤새 잡혀 있어야 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이제 겨우 16살이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동이 터오는 시간이 되어서야 보증인의 도장으로 겨우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경찰의 말로는 벌금이 꽤 될거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부터 담배가게 아저씨는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갚아야 할 빚과 시원찮은 벌이때문에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처지인데 수백만 원이나 벌금이 나오면 당장 빌려서 내야 할 판이니 아저씨의 어깨가 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기가 찰 일은 그 노랑머리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아저씨의 담배가게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 다닌다는 것이다. 학교도 자퇴하고 집에서 포기했다는 그 아이는 담배가게 아저씨에게 아무런 미안한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애들한테 담배 판 것이 내 잘못인 건 아는데, 그래도 왜 이렇게 살기 힘든지 모르겠어요. 돈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은 법이라는거 잘도 어기면서도 금방 풀려나서 또 국민들앞에서 나라 살림 맡겠다고 저러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법은 정말이지 살 맛 안 나게 만들더라구요."

집으로 향하던 K는 못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애꿎은 담배만 길게 빨아들였다. 없는 사람들에겐 법의 그물은 왜 그렇게도 촘촘하고 튼튼한지, 또 권력과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겐 법의 그물이 왜 그렇게 약한지...

올해는 바뀔 수 있을까, 담배가게 아저씨 같은 소시민들이 자신의 잘못을 돈과 권력있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지 않도록 깨끗한 사람들이 뽑힐 수 있을까. 담배를 산 그 아인 또 어디선가 미성년자에게는 절대 팔지 말라고 하는 법조항을 피해 담배를 구하고 있을지...

담배 가게 아저씨의 살맛 안나는 긴 한숨소리가 K의 귀에 찡하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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