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계 설계일을 하는 회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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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는 새로운 음통령이 될 것이다. 난는 방금 재방송인줄도 모르고 보던 중 그가 노래를 하기 시작하기 전에 이승기랑 하는 말과 노래 제목을 듣고 아 이건 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야겠다고 직감했다. 이유 없이 그냥 직감했다. 동영상을 찍은 후 우리 딸에게 보내고 한번 들어보라했더니 이미 난리나있고 내가 본 건 재방송이란다! 헐! 나는 그의 다른 노래를 들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음통령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본다. 그는 음악으로 철학을 설파하는자다. 말이 아니라 노래로 철학을 설파하는자! 그게 딱 내 느낌이다!
  2. ​제 6단계(내가 정말 짓고싶은 건물 구상하기) 첫째, 세상의 빈틈을 발견하도록 노력한다. 생각 외로 세상엔 허술한 것, 잘못된 것, 미개척된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의 빈틈을 찾는데엔 인류학에 대한 지속적 관심만큼 좋은 것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숨에 찾아지는 것은 아니므로 농사짓듯이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둘째, 끌림이 생기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뭐지? 혹은 왜그렇지?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찾아보고 답하다보면 현재의 세상엔 비워져 있지만 내가 그 이름을 불러줘서 꽃이될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거니와 생각 외로 세상엔 허술한 것, 잘못된 것, 미개척된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의 빈틈을 찾아내고 그 빈틈을 내가 채워보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빈틈에 대하여 강한 끌림이 일어난다. 아니다. 원래 끌림이 있었기때문에 빈틈이 보인것이고 그 빈틈을 내가 채울수도 있을 것 같으니 끌림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다. 내면의 끌림에 대한 집중은 결국 내가 쓸 글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 내면의 끌림이 없는 주제는 글의 깊이와 넓이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내 내면의 끌림이 강렬한 주제일수록 최종적으로 누구보다도 깊고 개성적이며 폭넓은 글이 나올 수 있다. 양자역학과 인류학은 이 끌림이 글로서 드러날 때 사람들을 이롭게하는 시공간적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하는 등의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 셋째, 앞에서 찾아지는 세상의 빈틈과 끌림들에 대하여 하나씩 하나씩 글쓰기를 해나간다. 이 과정에서도 간간이 특정 단어로 구축되있는 데이터 시스템을 검색 하고 읽어보기를 통해 '기존 글 수정 보완'이나 '새로운 글 쓰기'로 성장시켜 나간다. ​넷째, 글쓰기를 위한 공부는 '뭐지?' 혹은 '왜그렇지?'라는 질문의 끝이 현재의 인류가 알고있는 지식의 끝까지도 갈 수 있어야 하고 사색은 거기서 한발짝만 더가서 멈춘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내가 쓴 글들에서 상호 연결성을 찾는 사색을 습관화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모든 글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새상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 혹은 유기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때엔 저수지의 뚝이 터지듯이 지식의 불꽃놀이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시각의 창의적인 글들이 몸 밖으로 막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양자역학​ 양자역학은 과학자들이 원자 이하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발견한 물리이론으로서, 미시적인 아원자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이다. 그러나 복잡 미묘한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양자도약, 관찰자 효과, 불확정성 원리, 상보성 원리, 비국소성원리를 개념정도만 충분히 이해하자. 단, 이해의 시간을 몇년 정도로 길게 잡고 또한 너무 깊게 들어가지도 말길... 현대과학에서 모든 주장들의 근거와 그 근거의 근거를 찾아가다보면 마지막에 당도하는 곳이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모든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설정해주고, 특히 복잡 미묘한 문제들까지도 해석할 수 있는 템플릿이 되어줄 수 있다. 어떤 영역에서 국가적 혹은 서계적 전문가가 되려한다면 필수템! 인류학​ 인류학은 삶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지도와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인류학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의 의미, 가치 및 영향을 매우 넓은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준다. 지도와 나침반이 있을 때 헤맴이 줄어들고 각자의 목적지에 잘 도착하게 도와준다. 목적지는 서로 다르더라도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가는 것과 가지고 가지 않는 것 간에 그 결과가 많이 다를 수 있다. 인류학은 평면적 지도가 아니고 시공간적 지도이므로 방향성 있는 창의력이 쉽게 발휘될 수 있다. 누구든 인류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지도 삼아 각자 관심이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있는 지식을 쌓는다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인류학은 사람들이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 밖에서 자그마한 지구를 바라본 우주인들의 삶에대한 태도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는 원리와 비슷하다. 제 7단계(내가 정말 짓고싶은 건물 짓기)​ 위의 제 6단계가 제대로 이뤄지면 이젠 내가 정말 짓고싶은 건물을 지으면 된다. 양자역학과 인류학의 가이드 아래 내면의 끌림에 집중을 통해 건물의 용도, 크기 및 기본 골격이 구성되고 여기에 빅데이터에서 축적된 데이터들로 건물 구조에 벽, 출입문, 창문, 바닥 및 실내장식물들을 안착시키면 나만의 개성적인 건물이 완성된다. 기타 생각해봐야할 것들​ 글쓰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는 가능한 생존유지형 직업을 초기부터 고려해야한다. 어쩌면 이게 앞에서 얘기한 다른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직업이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이게 결국은 나를 단련시키는 훌륭한 선생 역할을 했던거라는 것을 알게된다.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인생처럼 마라톤을 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나는 방랑하는 자이자 산에 오르는 자다”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All truly great thought are conceived by walking) “겨우 몇 줄만 빼놓고 전부가 길을 걷는 도중에 생겨났으며 여섯 권의 공책에 연필로 휘갈겨 썼다네” 모두 니체가 한 말들이다. 걷기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원리는 구석기시대 수렵채집기에 사냥터로 걸어가면서 어제를 반성하고 오늘의 사냥전략을 수립하던 습성이 몸에 유전적으로 내려 앉아 있기때문이다! 괴테와 칸트도 걷기를 매우 좋아했었다! 단순하지만 글이 중간에 막히는 고통을 뚫어주는 아주 중요한 도구(습관)가 될 수 있다. 막힌다 싶으면 '깊은호흡자세'로 약 2시간마다 10분 이상 걸어보자! 당신의 창의성은 당신 걷기의 품질에 좌우된다!
  3. 위 기사를 읽고 추후 책을 출판할 수도 있을 시민기자나 작가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해서 기존에 제가 써놨던 글을 소개드려 봅니다. 저는 건강쪽 글을 오마이뉴스에 꾀 많이 올렸었으나 번번히 퇴짜맞고 지금은 여기에 글 올리기는 하지 않고 그냥 제 블로그에만 글을 올리고 있어요! 저는 시민기자 낙오자겠군요! ㅎ 이 글은 글을 쓰는 세부 디테일보다는 창의적고 깊이있어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는 좋은 책 출판을 목표로 글을 쓰고있는 이들이 장단기적 글쓰기 전략을 수립하는데에 촛점을 맞춘 것이다. 먼저 정희진,한윤형님의 글 읽고 쓰기 방법론을 간단히 소개하고나서 필자의 것을 소개하겠다. '정희진'식 읽고 쓰기​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책이 있다. 이것이 자극적인 책이다. 그런 책은 여러 번 읽고 필사한다. 번역서인 경우에는 원서를 구해서 역시 필사한다. 필사를 하면 최소한 네 번 정도 읽게 된다. 당연히 읽을 때마다 다른 주제가 나타난다.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내 몸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서다. 고통스럽게 쓰되, 쉽게 읽혀야 한다. 머릿속에 누군가 한 명을 앉혀놓고 말을 건네듯 쓴다."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의 글쓰기는 ‘주류적 시각으로부터의 탈피’로 요약된다. 그는 “이미 아는 걸 쓰면 글이 진부해지기 때문에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 쓴다”고 말한다. 쓰면서 배워야 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에게 새롭고 생소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믿는다. ​'한윤형'식 읽기와 쓰기​ 그는 논쟁적 글쓰기를 지향한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 기사든 칼럼이든 샅샅이 훑어 자신을 이해시키는 글이 있으면 그 주제의 글은 쓰지 않고, 자신을 설득시키는 글이 없으면 같은 주제의 글을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쓰는 스타일이다. 필자의 읽고 쓰기 방법론​ 제 1단계(벽돌 만드는 방법 습득하기) 우선 글쓰기의 기초는 언어와 수학이라는 섬을 연결시키는 다리를 놓는 기본 훈련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AND, OR, NOT 및 괄호 등의 논리 연산자에 해당하는 조사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자신의 주장, 느낌 등을 하나의 문장화하는 활동이다. 둘 사이에 다리가 완공되면 수학이 언어를, 언어가 수학을 끌어 올린다. 이 기본기를 제대로 익히면 어떤 규모의 건물에나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단단한 벽돌을 만들 는 방법을 습득하게되는 것과 같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A=B, B=C 이므로 A=C이다.'와 같이 되도록이면 추론의 연결성이 수학적이어야한다. 이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글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제 2단계(전문가 따라 작은 집 지어보기)​ 나를 자극하는 책을 찾아서 위의 '정희진식 읽고 쓰기' 방식을 적용한다. 참고로 나는 특정 책을 읽었을 때 인상 깊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면 책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 및 정확히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밑줄 귿기 한 다음, 컴퓨터 워드작업을 하여 나만의 요약본을 만든다. 그 요약본을 몇 차례 읽으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음미하고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본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중복되는 부분들은 제거해 나간다. 몇 차례 혹은 몇 십 차례 읽기를 반복하다 보면 작가의 의도가 내 몸에 온전히 흡수된 느낌이 들 때가 온다. 이젠 작가의 생각에 대해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찾아보고 내 생각을 요약본에 추가해 본다. 읽기와 내 생각 추가하기를 반복하다가 내 몸에서 더 이상 읽고 싶어하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온다. 이 때가 그 책과 일단 이별해야 할 때다. ​제 3단계(나만의 스타일로 집 짓기)​ 위의 '한윤형식 읽기와 쓰기'가 제 3단계에 해당된다. 제 4단계(다양한 용도의 작은 집들을 내 스타일로 많이 지어보고 관련 자료를 작은 빅데이터화 하기) 필자의 경우 내가 잘 모르지만 끌림이 있는 다양한 기초 주제들(예, 사랑, 정의, 부끄러움, 결혼, 거짓말, 용기, 자존심 등)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뚜벅 뚜벅 '한윤형식 읽기와 쓰기'를 하였다. 약 15년 동안 꾸준히 했더니 얼추 A4 한 두장(?) 정도 분량의 글이 약 1000편 이상 모인것 같다. ​제 2, 3, 4단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상기 과정의 최종 결과물이 적당한 저장수단에 저장되어 언제든 상황에 따라 다시 쉽게 꺼내 볼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자극하는 책 요약하기' 및 '기초 주제들로 글쓰기'한 것을 쉽게 꺼내볼 수 있게 특정 저장수단에 저장하는 것은 한 사람의 개인이 자신만의 작은 빅데이터 시스템에 빅데이터를 구성하는 단위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개인 블로그에 저장하는 것이 가장 좋아보인다. 공개가 곤란한 글은 비공개 글로 저장하면되고,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검색해서 찾아보면 되므로 시공간적인 제약이 사라져서 더 이상 바랄게 없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는 것이다. 제 5단계(다양한 집 짓기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 특수성 발견 및 영감 얻기)​ 필자의 경우 블로그에 저장한 다수의 글들을 특정 단어로 검색 해서 읽어보기를 통해 쉽게 각기 다른 내 글들 간의 모순점, 공통점 등을 찾아내고, 새롭거나 진보된 영감을 얻는 경우가 상당했다. ​또한 찾아진 모순점, 공통점, 오류 및 영감 등을 '기존 글 수정 보완'이나 '새로운 글 쓰기'로 성장시켜 나간다. ​때론 기존에 쓰여진 글들이 하나로 묶이기도하고, 인용되기도하며, 나눠질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