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대의 변곡점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찾아 그들의 삶과 사상을 살펴봅니다.[기자말]

그녀는 사람들이 아플 때 간호했고, 우울의 나락에 빠진 이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파리 코뮌에 대한 사면으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루이즈는 자신이 대중의 환호를 받는 영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하는 어머니, 루이즈'라고 불렀다(<레드 엠마> 1권 280~281쪽).

루이즈 미셸(Louise Michel, 1830-1905)은 19세기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아나키스트로, '몽마르트르의 붉은 처녀'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는 1871년 파리 코뮌에서 혁명적 활동을 주도하며,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전투에 직접 참여하고 군사 지도자로 활동했다. 미셸은 코뮌이 파리의 자치 정부로 성립하는 데 깊이 관여했고, 특히 몽마르트르 지역에서 시민들이 무장하여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촉구했다.

그녀는 자신이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들어 전선에 나선 장면으로 유명하며, 이는 코뮌 저항 정신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미셸은 군사 지도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 코뮌 기간에 부상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도 활동했으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데 앞장섰다. 코뮌이 패배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미셸은 마지막까지 시민들과 함께 싸움을 이어갔다. 이때의 헌신은 그녀를 단순한 혁명가가 아닌 저항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초상화 루이즈 미셸(Louise Michel, 1830-1905)
초상화루이즈 미셸(Louise Michel, 1830-1905) ⓒ https://commons.wikimedia

코뮌이 붕괴한 후 체포된 루이즈 미셸은 재판에서 자신이 한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코뮌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당당하게 선언했다. 법정에서 그녀의 태도는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이 일로 '붉은 처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녀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혁명에 대한 그녀의 굴하지 않는 의지는 당시 권력자들에게 강력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체포 후 미셸은 20개월 동안 수용된 뒤,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되었다. 오히려 이 시기는 그녀의 삶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뉴칼레도니아에서 미셸은 현지 원주민인 카낙족과 교류하며 그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여기에서의 경험은 아나키즘 사상을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0년 사면된 후 프랑스로 돌아온 미셸은 유럽 각국에서 아나키즘에 대해 강연을 이어갔다. 특히 노동자들과 빈곤층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루이즈 미셸은 경제적 불평등, 범죄, 빈곤을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회적 억압이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라고 판단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나키즘 자치와 연대를 강조했다. 미셸은 단순히 권위와 억압에 저항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정의를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열망했다. 그녀의 사상은 당시 사회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비전까지 제시하며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

Louise Michel 루이즈 미셸의 장례식(Funerailles de Louise Michel) 1905.
Louise Michel루이즈 미셸의 장례식(Funerailles de Louise Michel) 1905. ⓒ https://commons.wikimedia

그녀는 파리 코뮌에서 아나키즘의 핵심 원칙인 자치와 연합을 실천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코뮌 당시 그녀는 무장 저항뿐만 아니라, 작업장을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실천을 통해 경제적 평등과 자치를 이룩하려 했다. 그녀의 혁명적 이상은 자치적인 사회 건설과 협력하는 공동체를 지향했으나, 코뮌의 실패로 모든 목표를 실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미셸의 아나키즘 이상과 실천은 이후의 아나키즘 운동과 사회적 변화를 위한 노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자서전 <루이즈 미셸의 회고록(회상기)>에서 혁명적 경험과 사상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전투, 투옥, 추방 생활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고 싸웠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셸의 회고록은 그녀의 급진적 사상과 헌신적인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오늘날 미셸의 아나키즘 사상은 정치·경제적 권력에 맞서 싸우는 다양한 저항 운동에 영감을 주고 있다. 그녀가 강조한 경제적 평등과 자치의 개념은 현대의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기후 위기 대응, 여성 권리 운동 등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셸은 과거의 혁명가로만 기억되지 않으며, 오늘날에도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전 세계 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타깝게도 루이즈 미셸 관련한 국내 도서는 찾을 수 없었다.

* 이 글은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는 걸 밝힙니다.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271
https://en.wikipedia.org/wiki/Louise_Michel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어.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파리코뮌#루이즈미셸#아나키스트#붉은처녀#구조적문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