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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생가마을 벽화 한승원 생가로 가는 마을 길목에 한승원의 시가 벽화와 함께 조성되어 있다.
한승원 생가마을 벽화한승원 생가로 가는 마을 길목에 한승원의 시가 벽화와 함께 조성되어 있다. ⓒ 정윤섭

우리나라 정남쪽에 있는 장흥군에는 유독 소설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현대소설에 우뚝 선 기라성 같은 거목들인 한승원, 이청준, 송기숙, 이승우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작가들이다.

한승원(85) 소설가는 지난 10일(스웨덴 현지시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아버지다. 한강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어찌 보면 아버지의 고향인 장흥이 고향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혈통의 뿌리가 장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장흥은 남쪽 바다와 접하고 있다. 그런데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 이들 소설가들의 고향 집이 모두 바다와 인접한 곳이다. 바다와 운명 같은 인연을 맺고 있는 듯하다.

장흥군 회진면은 대부분 바다와 인접하고 있다. 회진포 항을 중심으로 주변에 작은 항구들이 흩어져 있다. 한승원 작가는 지난 1997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안양면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을 짓고 작품 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그의 생가는 회진면 신성마을이다. 그의 소설 배경은 이곳 바다인 것이다.

한승원 생가 회진면 신상마을에 있는 한승원 생가다.
한승원 생가회진면 신상마을에 있는 한승원 생가다. ⓒ 정윤섭

지난 12일 한승원 작가의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에 가려면 회진포 항에서 한때 제주도 가는 배가 다녔던 노력도 방향으로 가다 명덕초등학교가 있는 대리마을로 가야 한다. 이곳은 대리마을과 신덕, 신성마을 등 여러 자연마을이 하나를 이루고 있어 시골마을 치고는 꽤 큰 마을이다. 마을을 지나치다 보면 한승원 작가의 시들이 벽화처럼 그려져 있어 작가의 고향임이 실감난다.

한승원 작가의 생가는 신성마을 가장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전통한옥도 아니고 현대적인 건물도 아닌 약간은 부조화 스런 집이 지난 삶의 흔적을 담고 그렇게 생가로 남아 있다. 집안에 약간의 생활가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방안은 왠지 썰렁함이 느껴진다. 집 뒤안에는 옹달샘이 전설 같은 이야기로 남아 있다.

생가는 마을의 가장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마을의 전경과 멀리 포구와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은 마을과 바다다.

한승원 생가 마을앞 바다 한승원 소설의 무대가 된 득량만의 바다다.
한승원 생가 마을앞 바다한승원 소설의 무대가 된 득량만의 바다다. ⓒ 정윤섭

마을 앞 바다는 장흥과 고흥사이의 득량만이다. 결국 득량만의 바다가 한승원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한승원 작가의 작품은 모두 바다와 바닷가 사람들의 이야기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바다를 떠난 적이 없다. 신화와 역사, 여성이 소설의 대상이자 주제로 등장하며, 이 주제들을 깊이 파고 넓게 확대하고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광대한 소설 세계를 구축해온 것이다.

한 평론가는 한승원의 소설에서 바다는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등과 같이 대립적인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끝없이 순환한다고 말한다. 한승원의 작품은 데뷔작 <목선>에서부터 <갈매기>, <폐촌>, <낙지같은 여자>, <해변의 길손> 등 일관되게 바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바다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한승원에게 바다는 유년시절의 삶터이자 낭만과 꿈으로 점철된 희망의 땅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포근하게 맞아주던 어머니가 있고 친구들이 어우러진 공간인 것이다.

한승원 작가의 작품 중에 1977년에 쓴 <낙지 같은 여자>가 있다. 이 소설은 지난 1984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에 방영되어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여느 작품처럼 한승원 소설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설화와 바다, 여성이 대상이 되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송옥숙씨가 순한녜의 역할로 나와 리얼한 에로티시즘 연기로 화재가 되었다.

<낙지같은 여자>는 혼돈의 바다이자 열정과 정욕과 투쟁의 바다이기도 하다. 횃불 아래 굿판의 춤사위처럼 너울대고 일렁이는 바다로 한승원은 고향바다에서 바다와 삶을 한 틀로 이끌어 낸다.

한승원의 작품은 신화적인 설화가 많이 등장하여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1988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해변의 길손>처럼 해방 전후와 6·25전쟁, 그리고 5·18 민주항쟁까지 이어지는 역사적인 비극이 소설의 모티브로 등장한다. 이들은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맞이해야 한다.

장흥 회진포항 한승원 작가의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장흥 회진포항한승원 작가의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 정윤섭

어찌보면 이런 역사적인 주제의식이 또 다른 역사적 서사로서 한강의 소설 5.18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 제주 4.3항쟁을 배경으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승원에게 바다는 영원한 고향이며 어머니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는 한승원 문학의 핵심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바다는 작품의 무대이며 구도의 필수적인 매체였던 것이다.

그의 바다에는 증오,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 좌우의 이념, 일상적 생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끓어 넘치기도 하고 미친 듯 울부짓기도 하고 때론 가을 햇살을 받아 잔잔하게 일렁거리기도 하는 바다는 숙명적인 바다의 삶인 것이다.

한승원의 고향 앞에 바다가 있다면 그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진산 같은 산이 천관산(724m)이다. 천관산은 한승원의 소설에도 먼 신화나 동경의 세계처럼 아득하게 묘사된다.

아육왕 탑의 신비스런 이야기와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찰 탑산사를 품은 천관산 정상에는 요즘 억새꽃이 만발하다. 장흥은 유독 소설가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라 문학특구로 지정 된 고장이다.

대덕읍 천관산 초입에는 장흥의 소설가들을 소개하는 천관문학관이 있다. 대 소설가들을 모두 소개하기에는 역부족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 노벨문학상의 작가 한강이 끼어 있음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한승원#한강#장흥#바다#득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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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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