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주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안양에 들렀다 인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안양예술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들뜬 마음으로 '안양에서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한 결과였다.

안양유원지! 한 번쯤 들어봤을, 또는 가봤을 유명한 이름, 때마침 비가 온 후라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관악산(629m)과 삼성산(461m)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삼성천 물을 막아 계곡 풀장을 만들어서 물이 맑기로 소문났던 곳! 70,80년대 국민관광지로 각광을 받던 이곳이 오랜 시간이 흘러 '걷기 좋은 아름다운 경기도 길' 7곳 중의 하나로 거듭났다고 한다.

대홍수, 범람, 산사태 등 각종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그린벨트 정책으로 제한받아 위기에 처했는데, 2000년부터 시작된 안양유원지 정비사업으로 2006년에 공원으로 조성된 이 길을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안양예술공원 맑은 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안양예술공원맑은 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 한현숙
호젓하고 편안한 산책길을 1시간 정도 걷다 되돌아 나오니 주차장 너머에 '안양 박물관'이 보였다. 마침 안양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시(~2024.12.31), '安養各色: 안양에 이르다'가 열리고 있었다.

조선시대 화첩을 처음 공개하는 전시라니 더 흥미로웠는데, 해설사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삼성기유첩(三聖記遊帖)'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또한 화첩의 그림과 시문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영상을 접하니 이 화첩의 가치를 보다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삼성기유첩'은 순조 28년에 어진화사인 박기준(운초-朴基駿)이 문인들과 함께 관악산과 삼성산을 유람하며 시문과 그림을 기록한 것으로, 제작자와 제작연도가 명확하여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현존하는 유물 중 관악산을 담은 첫 서화첩이며, 현재 안양예술공원 일대인 남자하의 모습과 염불암, 삼막사, 망해루, 불성사 등 삼성산을 중심으로 현존하는 안양 사찰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림을 보며 해설사가 짚어주는 대로 시선을 따라가니 가까이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를 찾을 수 있어 신기했다. 안양을 근거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자료인 것이다.

전시품 중 '안양사지 출토 막새기와'를 보았지만 그냥 스쳤다. 이곳이 어떤 역사를 지는 곳인지 아는 것이 없으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안양박물관 건물의 가치와 독특한 외관 모서리의 미(美)도 아직은 모른 채 밖으로 나왔다.

안양일보 일행과 안양일보 속 사진을 꾸며 보았다.
안양일보일행과 안양일보 속 사진을 꾸며 보았다. ⓒ 한현숙
안양박물관 박물관 개관 20주년 기념 전시 '각양각색-안양에 이르다'를 알리고 있다.
안양박물관박물관 개관 20주년 기념 전시 '각양각색-안양에 이르다'를 알리고 있다. ⓒ 한현숙

바로 옆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건축가의 작품이 얼마나 유명한지, 왜 이곳에 김중업의 건축박물관이 있는지, 유유산업이 있었던 이곳과 안양사와 중초사의 연결고리는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그러다 이곳의 조성 과정을 통해 얻은 드라마틱한 유적지 발굴 스토리를 듣고 그 반전에 탄성을 질렀다.

안양시는 2005년부터 시 전역을 생활 속 예술공원으로 만들어 '아트 시티(Art City)'화하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지역이 안양유원지 일대였다.

2007년 안양시는 옛 안양유원지 초입에 있는 유유산업 공장 부지를 매입해 '김중업박물관'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건축가 중 한 명인 '김중업(1922~1988)'과 '건축'이라는 콘텐츠를 APAP로 활용한 것이다.

1957년 유유산업은 당시 포도밭이었던 이곳에 공장을 세웠는데, 이때 설계를 맡은 이가 김중업이었고, 이 프로젝트 시행 중 발견된 것이 '중초사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었다. 당시에는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공장 입구 옆에 세워 두었다고 한다.

2009년 김중업박물관 조성 중 문헌상으로만 전해졌던 안양사(安養寺)의 유구가 유유산업 부지에서 발견된 것이다. 안양사는 중초사보다 후에 건립된 사찰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삼성산에 핀 오색구름을 보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지었다는 전설을 지닌 절이다. 불교에서 '안양'은 아미타불이 사는 '극락'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유구(遺構)의 발견으로 안양시는 박물관 조성 공사를 중단하고 네 차례 발굴조사를 진행한 후, 강당지, 승방지, 동회랑지 등 여덟 개 시설의 터를 찾아냈다. 안양사에서 비중이 큰 금당(金堂) 자리를 찾던 중, 그곳이 바로 유유산업연구소(현 김중업건축박물관)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안양사' 발굴이 먼저일까? 아니면 '김중업'과 '건축'이라는 APAP의 콘텐츠가 우선일까? 당시 안양시의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우연히 발견한 안양사지의 발굴조사를 안내하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안양사지의 발굴조사를 안내하고 있다. ⓒ 한현숙

안양시는 조성 계획을 안양사의 유구를 드러내고 보전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하여 13개 건물 중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과 굴뚝만 남기고 나머지 건물은 철거했다. 그렇게 하여 조성된 박물관과 발굴 중인 안양사 터라니! 이렇게 멋진 시민의 휴식처로 자리 잡기까지 안양시가 기울인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졌다. 선택의 기로에서 멋진 결과를 이끌어낸 안양시의 지혜가 돋보였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제야 보이는 건축가 김중업만의 스타일! 조각상을 배치할 수 있도록 건물 모서리를 'ㄱ' 자 형태로 만든 안양박물관 외벽 모퉁이의 모자상과 파이어니어상, 김중업박물관 입구의 상부를 받치고 있는 'Y' 자 형태의 기둥! 역시 아는 만큼 보이니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김중업의 대단한 건축미, 모서리에 모자상이 독보적이다. 카페의 여유로운 시민의 모습이 보기 좋다.
김중업의 대단한 건축미, 모서리에 모자상이 독보적이다. 카페의 여유로운 시민의 모습이 보기 좋다. ⓒ 한현숙
 유유산업 사무동으로 쓰인 지금의 김중업박물관 입구에서김중업의 건축미가 'Y'로 돋보인다.
유유산업 사무동으로 쓰인 지금의 김중업박물관 입구에서김중업의 건축미가 'Y'로 돋보인다. ⓒ 한현숙

신라시대 중초사가 있던 자리에 세월이 흘러 고려시대 안양사가 터를 잡고, 또 무수한 시간이 흘러 포도밭으로 변한 곳에 유유산업이 들어서고, 다시 또 조성과 발굴로 인해 그 땅의 역사가 드러난 이 오묘한 우연과 시간! 산업의 생산동으로 쓰였던 박물관 카페에서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시민들의 얼굴이 햇살 아래 빛난다.

과거와 과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 풍선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예쁘다.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가 찾아야 할 사실과 진실이 얼마나 깊이 더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공원입구에서 중초사지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을 보았다.
공원입구에서 중초사지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을 보았다. ⓒ 한현숙
 수위실도 예사롭지 않다.
수위실도 예사롭지 않다. ⓒ 한현숙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 제4호)와 중초사지 3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을 보기 위해 공원 입구로 나왔다. 절의 입구를 드러내는 당간지주와 절 마당에 있어야 할 석탑이 나란히 있다니, 먹고살기 바빴던 당시 우리 삶이 느껴져 짠한 마음이 들었다.

수위실 건물도 작품이라 생각하니 남다르게 보였다. 공장을 짓는데 유명 건축가에게 의뢰한 유유산업의 안목, 시공을 초월한 김중업 건축가의 빛나는 예술 감각, 가치를 보전하고 지킨 안양시의 예술에 대한 지지와 탁월한 계획이 만들어낸 이 공간에 내가 서 있다.

천 년 전의 승려들의 모습을, 유유산업에 몸담아 열심히 일했을 노동자들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젊은 김중업의 설계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곳은 예전의 '안양유원지'가 아닌 천년 전 역사의 흔적 위에 과거와 지금이 공존하는 살아 움직이는 곳이 되었다.

다음에는 이곳, '안양예술공원'만을 목적으로 방문하여 더 깊이 느끼고, 더 여유롭게 햇빛을 누려 보아야겠다. 우연한 방문이 나에게 이렇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입장할 때는 보이지 않던 '삶'이라는 글자가 퇴장할 때는 선명하게 보였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루스의 작품
입장할 때는 보이지 않던 '삶'이라는 글자가 퇴장할 때는 선명하게 보였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루스의 작품 ⓒ 한현숙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안양유원지#김중업건축#안양박물관#역사와예술#안양사유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