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경원 지사, 그와 함께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석용 지사의 대구 신암선열공원 묘소 표지석
전경원 지사, 그와 함께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석용 지사의 대구 신암선열공원 묘소 표지석 ⓒ 국가보훈부, 정만진

전경원(全京元) 지사는 1998년 10월 6일 타계했다. 향년 75세였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243번지를 본적으로 둔 지사는 1923년 3월 4일 출생했는데,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21세 때 일제에 피체되어 고문과 옥고를 겪었다.

그는 일본 교토(京都) 미야즈(宮津)중학 졸업 후 시마무라(島村)토공회사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칠곡군 약목면 출신으로 고향이 같은 이상문, 그리고 인근 고장인 달성군 출신 김말도, 윤성택, 김석용 등을 동지로 만났다.

18세부터 동지들과 독립운동 방안 숙의

18세이던 1941년 9월부터 이들과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 방안에 관해 논의했다. 민족차별 철폐, 징병제도 반대, 항공병이 되어 일본기지 폭격, 일본경찰이 되어 정보 입수 등이 주된 토의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1944년 6월 일본 경찰의 회사 숙소 수색 때 일기장이 증거물로 압수되어 피체되었다.

그날 이래 일본 경찰은 무려 1년 3개월 동안 미결수 상태에서 악랄한 고문을 실시했다. 김석용, 이상문, 김말도 등 함께 구속된 동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1945년 9월 20일 교토지방재판소는 전 지사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15개월 동안 미결수로 가둬 놓고 고문

1945년 9월 20일이면 8월 15일보다도 한 달 이상 뒤이다. 일본이 백기를 들고 우리나라가 국권을 회복한 날로부터 36일이나 지났다. 미결수로 옥에 가두어 둔 채 1년 3개월에 걸쳐 악랄한 고문을 자행했으면서 독립 이후에도 석방하지 않고, 게다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전경원 지사의 사례는 두 가지 일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는 '안네의 일기'이고, 둘째는 대구 미문화원 폭탄 테러 사건이다. 전 지사의 일기가 압수되고 두 달쯤 뒤인 1944년 8월 4일 게슈타포들이 안네의 일기를 찾아내었다. 결국 안네는 물론 언니와 어머니까지 비참하게 학살되었다(관련 기사: '안네의 일기가 발견되었다' 이 문장이 불완전한 이유).

1983년 9월 22일 대구 시내 중심가 미국문화원 앞에서 시한폭탄이 터졌다. 일대 건물 유리창이 500여 장 깨졌을 만큼 큰 폭발이 일어났고, 그 자리에 있던 고등학생 1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아무 관련 없는 학생들을 고문해 범인으로 조작

안기부와 경찰 등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는 사건과 아무 관련도 없는 경북대학교 학생 박종덕, 안상학, 우성수, 손호만, 함종호 5명을 한 달에 걸쳐 고문해 범인으로 자백을 받았다. 고문은 독립운동가들을 죽이고 괴롭힌 전력으로 유명한 '친일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맡았다.

"해방된 뒤 경찰서에 가보니 우리를 취조하던 형사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고 (중략) 전부 친일파가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라는 장병하 독립지사의 증언은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에서도 고스란히 사실로 재확인되었다(관련 기사: 경찰서 습격 등 거사 도모한 안동농림 학생들).

북한 소행 밝혀진 뒤에도 학생들 옥살이 시켜

그해 12월 3일 부산 다대포 해안에서 무장간첩 2명이 생포되었다. 이들의 입을 통해 대구 미문화원 폭파 진범이 북한 노동당 연락부 소속 공작원 이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도 정부는 학생들을 풀어주지 않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 각종 죄목을 씌워 3년(박종덕)에서 1년 6개월(4명) 옥살이를 시켰다.

사건 발생 30년 만인 2013년 다섯 명이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은 그로부터 다시 5년이나 지난 2018년에 열렸다. 2019년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1년6개월 감옥살이를 한 4명에게는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박종덕만 단 6300만 원). 게다가 피해자 중 우성수씨는 2005년에 이미 사망한 뒤였다.

전경원 지사의 사례를 보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살해, 고문, 투옥을 자행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비인간적 면모는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글이 전 지사와 안네, 그리고 우성수씨의 명복을 비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국가 인정 독립유공자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하려면 1500년 이상 걸립니다. 한 달에 세 분씩 소개해도 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


#전경원#함종호#안네의일기#손호만#박종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