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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 (주)CPN문화재방송국

가람이 남긴 업적이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고전 수집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에 그는 살기도 빡빡한 실정임에도 월급을 타면 어김없이 고서점으로 달려갔다. 6.25 후 서울과 전주에 살 때도 다르지 않았다.

학술적으로 평가받는 <국문학전사>, <국문학개설> 등 값진 그의 저서들은 이렇게 수집한 고전·고서에서 발원한다. 그의 연구분야는 대단히 폭이 넓었다. 국어·국문학·국사·시조 등에 이르고, 이를 위해 관련 옛 문헌(고서)을 수집하였다.

가람이 수집한 책에는 귀중본이 많았다.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한중록(恨中錄)>,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계축일기(癸丑日記)>, <의유당 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어우야담(於于野談)>·<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가루지기타령>·<근조내간선(近朝內簡選)> 등 이제는 두루 알려진 책들도 가람의 발굴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가람이 발굴·소개한 이러한 고전들은 모두가 '어김없이 놀라운 고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을 정병욱도 지적한 바 있다.

"우리의 고전에 대한 가람의 '정확하고도 착실한 직관'에서 온 것이요, 그 직관은 또한 가람의 '섬세하고도 정확한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평소의 박람강기한 노력의 소산'이다." (주석 1)

서울 진고개나 인사동에 자리잡은 고서점의 주인들은 고서의 가치를 훤히 꿰고 있었다. 해서 가람이 집어든 고서들은 하나같이 고가를 요구하였다. <가람일기>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서울로 와 중학교사가 되어 20여 년을 보내는 동안 나의 뜻하던 바 고서적 몇천 권을 모았다. 내가 처음 18원 월급을 받았으나 그 돈의 반 이상은 책을 샀었다. 나는 이걸 한 오락으로 여기려니와, 보다도 우리 국학에 관한 귀중한 문헌을 수집하자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사고픈 책을 살만한 돈이 없었다.

처자와 함께 호구하기에도 부족한 그 월급을 가지고 하고픈 대로 될 수 있었던가. 중학교 월급은 좀 나으나 씀씀이가 더 많아지니 항상 곤란하긴 전과 같았다.

자식에겐 맛 있는 과일 한 개를 못 사다 주고 아내에겐 반반한 치마 한 벌도 못해 입혔다. 그래도 좀먹고 썩은 책은 나의 방으로 모여든다. (주석 2)

그는 물욕이나 권세욕, 명예욕 따위는 거리가 멀었으나 책에 대한 욕심은 강렬했다.

욕심 말이 났으니 말인데, 재물이나 명예 따위 세속적인 욕심은 손톱만큼도 없었노라. 서책에 대한 욕심은 누구도 따를 자가 없어서 스스로 수천 권을 모았다고 술회하고 있을 정도였다. <금강경삼가해>를 3개월 분의 월급을 빚내어 사기도 했고, 고창에 가서 심오위강의 판소리 여섯 마당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소멸되어가는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려는 일념으로 모은 그 책들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가람문고>로서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다. (주석 3)

그의 <고서(古書)>라는 시조이다.

고서

더져 놓인 대로 고서는 산란(散亂)하다
해마다 피어 오던 매화도 없는 겨울
한 종일 글을 씹어도 배는 아니 부르다

좀먹다 썩어지다 하찮이 남은 그것
푸르고 누르고 천년이 하루 같고
검다가 도로 흰 먹이 이는 향은 새롭다

홀로 밤을 지켜 바라던 꿈도 잊고
그윽한 이 우주(宇宙)를 가만히 엿보고
빛나는 별을 더불어 가슴속을 밝힌다. (주석 4)

주석
1> 최승범, 앞의 책, 49쪽, 재인용.
2> 이병기, <해방 전후기>, <가람문서>, 203~204쪽.
3> 장준하, 앞의 책, 30~31쪽.
4> 이병기, <가람문서>, 7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병기평전#이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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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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