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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결국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닌가 싶다. 돌아보면 내 20대는 나 자신과 시간을 잘 보내는 법을 배우는 시절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거의 나 홀로였던 구간, 당시 내 내면 세계에서는 매일 싸움이 일어났다. 다행히 나 자신과 간신히 화해하는 법을 깨달았을 무렵 20대는 나를 떠났다.

30대는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시절이었다. 다만 아내와 보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 고작 6개월의 연애, 1년 3개월의 신혼생활이었으니 말이다.

너무나 미숙한 채로 매 순간을 더듬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서 아내와 같이 살았을 때의 첫 느낌은 행복은 물론이지만, 살짝 어색함과 당황스러움도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와 가까이에서 지내본 것이 그야말로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삶은 결국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결혼 삶은 결국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픽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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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뭔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까지 뚜벅뚜벅 찾아와버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제야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내면의 나와의 다툼이 또 생겼다. 결혼하고 나니 나도 알지 못하던 내가 또 있었고, 아이가 생기니 거기서 또 알지 못하는 내가 또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삶은 시간과 손을 잡으면 기다려주는 법이 없었다. 30대는 매 순간이 실패와 다시 일어섬 그리고 배움이었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모르게 되며 나자빠졌다. '도무지 모르겠다'를 외치니 누가 등이라도 떠미는 듯 벌떡 일어섰다. 그 두 구간을 왔다 갔다 하며 정말 많이 배웠다. 20대와 달리 30대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보내줬다.

내가 지금 서 있는 나이 40대에는 무엇을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까. 뭘 배워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단서는 30대 때 미처 다 배우지 못한 아내와 보내는 시간을 다시 배워야 하는 데 있지 않나 싶었다.

아이들이 다 커서 품을 떠나면, 그때 둘만 남은 부부가 같이 있으면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함께 하는 게 어색하다는데. 실제로 우리만 봐도 요 몇 년을 아이들을 위해서만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보냈지, 단 둘이서 보낸 시간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도 안 됐으니 말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다시금 배우고 싶었다. 배워야만 했다. 이번주 금요일 손을 잡고 오랜만에 버스와 지하철을 함께 탔다. 함께 손 잡고 성수거리를 걸었다.

오랜만에 데이트 같이 '방탈출 게임'을 했다. 서로 마주보고 차를 마셨다. 벤치에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 오마카세라는 것도 먹어봤다. 그리고 다시 손을 꼭 잡고 돌아왔다. 밤에는 우리 부부와 가장 친한 친구 부부 둘을 만나서 아무 말이나 참 많이 했다.

노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디 그곳에 도착했을 때, 잘 살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잘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 노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디 그곳에 도착했을 때, 잘 살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잘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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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잘 보냈는지, 아내는 그날 밤 꿈나라 급행을 탔다. 나도 꿈나라행 막차에 오르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 40대는 그동안 내가 다져온 모든 것을 불태우는 법을 배우는 구간이 될 것이고, 50대는 이제 슬슬 저무는 법을 배우는 구간이 되겠구나, 라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디 그곳에 도착했을 때, 잘 살았다고 나 자신에게 꼭 말해고 싶다.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잘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결혼#일상#삶#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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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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