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봉화 승부와 양원 사이의 협곡. 열차는 이런 협곡을 지나간다.
봉화 승부와 양원 사이의 협곡. 열차는 이런 협곡을 지나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봉화 승부리와 양원리 사이의 협곡. 열차는 이런 협곡을 지닌다.
봉화 승부리와 양원리 사이의 협곡. 열차는 이런 협곡을 지닌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기사 수정 : 4일 오후 6시 30분]

경북 봉화의 석포, 승부, 분천은 낙동강 최상류 협곡 속 마을들이다. 낙동강 최상류답게 험준한 산과 산 사이를 급류가 흘러가고 그 안쪽에 마을들이 생겨났기에 그런 오지의 특성상 도로 건설이 늦었고 그래서 80년대 말까지 기차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 시절 낙동강 협곡 오지 마을을 배경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2021년 9월 개봉한 영화 <기적>을 최근에서야 봤다. 영화는 이곳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때론 안타깝게 펼쳐놓는다. 기차와 기차역을 소재로 한 영화로 한 가정의 비극과 이를 극복하고 피어나는 진한 가족애와 로맨스가 버무려져 있다.
  
마을 앞에 간이역이 없어 역이 있는 승부리까지 거의 4㎞나 되는 거리를 위험천만하게도 철길로 통근과 통학을 해야 하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숙원인 간이역 '양원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그 속에 한 가정의 아픔이 진하게 서려 있다.

융통성이라곤 없는 원칙주의자인 아버지 정태윤(이성민 분)이 운행하는 기차를 피하려다 딸 보경(이수경 분)이 철길에서 떨어져 낙동강에 빠져 죽는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죽자 누나를 어머니처럼 여기며 살던 동생 준경(박정민 분)은 어머니와 누나가 죽은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자학한다. 역시 두 사람의 죽음을 자신 탓으로 여기며 자학하는 아버지.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과정을 감동스럽게 담고 있다.

그 과정에 극중에 수재로 나오는 아들 준경과 그를 좋아하는 같은 반 송라희(윤아 분)의 좌충우돌 코믹 로맨스도 펼쳐져 영화적 재미를 더해준다.
 
 낙동강 협곡 사이를 스치듯 빠져나가는 열차.
낙동강 협곡 사이를 스치듯 빠져나가는 열차.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영화는 낙동강 최상류 협곡과 열차길 그리고 협곡 속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학창 시절이라는 고등학교의 배경과 80년대 시대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사회상도 펼쳐놓는다.

연기 잘하는 배우 이성민과 윤아가 나오고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이 덤으로 펼쳐져 영화 완성도도 아주 높고 재밌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도대체 사랑과 꿈, 희망이란 게 정말 뭘까 하는 것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주 보석 같은 영화다.

영화 이면의 아픔, 영풍석포제련소

그런데 이 영화의 이면에는 영화에서 소개되지 않은 아픔이 서려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승부리와 분천리 바로 위 석포리에는 영풍석포제련소라는 악명 높은 공해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1970년에 들어섰으니 그 20년 후가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다.
 
 영화 <기적> 포스터
영화 <기적> 포스터 ⓒ 블러썸픽쳐스
 
당시는 산업화가 시대적 과제였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 협곡 속 작은 마을에 마치 거대한 중화학공업단지와 같은 제련소가 들어서 있다니 지금 돌이켜보면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들어서선 안되는 낙동강 최상류 협곡 마을에 카드뮴과 같은 무서운 중금속을 내보내는 공해 공장이 들어서 당시부터 현재까지 반세기가 넘게 낙동강과 그 주변 마을을 오염시켰다. 당시는 전혀 몰랐겠지만 그 어두운 진실이 지금에 와서야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봉화 낙동강 협곡에 들어선 공단 규모의 단일 공장 영풍석포제련소
봉화 낙동강 협곡에 들어선 공단 규모의 단일 공장 영풍석포제련소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2014년경 봉화 지역 주민들이 이 공장의 오염 문제를 제기했고, 이어 안동과 대구와 경남, 부산의 환경단체들이 연합해 2018년 결성한 '영풍제련소 주변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 공동대책위원회'가 공장의 오염 실태를 고발했다. 

제련소에서 나오는 위험한 폐슬러지를 협곡이나 공장 바닥에 묻어 그 침출수가 낙동강은 물론 지하수까지 흘러들어갔다. 100개 넘는 공장 굴뚝에서 매일같이 뿜어내는 아황산가스로 주변 산의 금강소나무가 말라죽었다. 그렇게 쌓인 아황산가스 낙진은 비가 오면 빗물에 씻겨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다. 
 
 영풍석포제련소가 뿜어내는 아황산가스
영풍석포제련소가 뿜어내는 아황산가스 ⓒ 장영식
 
 영풍석포제련소 뒷산의 금강소나무가 대부분 고사했다.
영풍석포제련소 뒷산의 금강소나무가 대부분 고사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영풍석포제련소 바로 상류까지 바글바글하는 다슬기와 저서생물들이 제련소를 지나는 순간 낙동강 바닥에서 사라지고 그 영향은 90㎞ 하류 안동댐까지 미처 그 사이 구간에선 다슬기가 없다. 안동댐 바닥은 카드뮴, 비소, 납, 아연과 같은 중금속이  쌓여 있다.

그로 인해 안동댐에서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그 물고기를 먹은 백로와 왜가리마저 떼로 죽어나가고 있다.
 
 안동댐의 물고기가 떼죽음했다.
안동댐의 물고기가 떼죽음했다. ⓒ 이태규
   
 죽은 물고기를 먹고 새들도 죽어나간다.
죽은 물고기를 먹고 새들도 죽어나간다. ⓒ 이태규
   
이런 사실은 환경부와 주민들과 ㈜영풍이 공동으로 구성한 안동댐 상류 협의체인 '낙동강 상류(석포~안동댐) 환경관리 협의회'가 지난 5년에 걸쳐 조사해 밝혀냈다.

영화 <기적>의 아름다운 마을 양원리의 바로 상류엔 이런 공해공장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로 인해 이 아름다운 마을 앞 낙동강과 산하가 오염돼 왔던 것이다. 영화는 이런 역사적 사실은 완전히 비켜가고 있다.

제목처럼 기적처럼 해결되길

환경오염 문제가 거론되지 않던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지만 아쉽다. 이 문제까지 담을 수 있었다면 이 지역의 현실적 아픔까지 담은 수작이 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이면에 낙동강과 주변 산하의 환경 오염이라는 아픔도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들이 '영풍제련소 폐쇄하라!' '낙동강을 살려내라!' '영풍은 낙동강을 떠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들이 '영풍제련소 폐쇄하라!' '낙동강을 살려내라!' '영풍은 낙동강을 떠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 영풍석포제련소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89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장흥제련소처럼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낙동강 최상류를 떠나야 할 때가 됐다.

영화 <기적>의 제목처럼 영풍석포제련소가 낙동강을 하루빨리 떠나는 그날을 정말 기적처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영화기적#영풍석포제련소#낙동강#안동댐#봉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