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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지역 출신 서양화가와 사진가를 광주에서 만났다. 신지도 출신 박유자와 청산도 출신 김성민씨가 그들이다. 

두 작가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학창시절을 보낸 후 광주에서 예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중견작가다. 동향이라는 연계로 그들은 친분을 쌓았고, 향토색이 강한 그들의 작품세계는 추구하는 방향이 같아서인지 보는 내내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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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자 서양화가는 조선대 미대 서양화과를 나왔다. 그는 고향인 완도 명사십리의 달빛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밤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달빛에 비치는 모습을 온통 그의 가슴에 담았다. 소나무와 달빛어린 바다, 그의 작품 속의 소나무는 신비감을 품고 있다.

김성민은 기록사진의 진수자다. 그는 일찍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살면서 늘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산다. 그래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고향에 내려와 잊혀져간 것들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다. 청산도의 돌담과 여서리의 자연, 고향을 지켜온 사람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한 세월이 십수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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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자는 졸업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섰다. 그는 명사십리 소나무를 그리다가 요즘은 주구장창 해바라기를 그린다. '천개의 씨앗을 품은 해바라기'가 작품의 주제다. 힘겹고 어려운 시기 그는 길을 걷다가 시들어 가는 해바라기를 보았다. 무심코 그것을 주워 와서 작업실에서 해부했는데 책상 가득히 씨앗이 쌓였다. 그것을 하나하나 세어보니 천개에 가까웠다. 그는 힘든 상황에서도 쉼 없이 생명을 싹틔우고 있는 자연현상에 감사했다. 그가 시들은 해바라기에서 생명의 탄생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다시 힘을 내 작품에 매진한 세월이 14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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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자가 그려낸 해바라기 작업은 어느덧 그의 일상이고 일기가 됐다. 그의 해바라기 14개의 버전을 보면 시대별 특색이 묻어난다. 2018년은 심각한 가뭄이었다. 아스팔트가 녹을 만큼 무더위에 핀 그의 해바라기는 애잔함이 느껴진다. 또 코로나 시기 갇혀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작품에 드러난다.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희망의 빛 노랑을 닮은 태양을 그려 넣었다.

2024년은 갈구하는 작가의 소망을 담아 해바라기에 달을 넣었다. "나의 간절함이 움직여서 저 달에 도달한다면..." 그는 해바라기를 통해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김성민은 담양군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광주대 사진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사진 전문가의 길로 섰다. 많은 작품을 구상하면서 고향 청산도에서도 전시회를 열었고, 세상과의 소통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김성민의 작품에는 무너져 가는 돌담 속에 고향의 쓸쓸함과 무심한 세월이 짙게 배어 있다. 

오는 28일까지 광주의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어무니의 시간' 전시회는 소박하면서도 따스한 기억을 소환한다. 청산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작가에게 청산도의 자연과 고향에서의 추억은 한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소재들은 결국 '슬로시티 청산도 돌담과 어무니'라는 본질적이면서도 근원적인 대상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시에서도 김 씨의 작품에는 모두 '어무니의 세월'이 드리워져 있다. 

섬집 마당에 널린 붉은 고추는 뙤약볕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었을 어머니의 정성을 불러낸다. 고적한 시골집 마당에 자식들을 생각하며 널어놓은 작물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을 배경으로 빨래를 너는 어머니 모습은 한없이 평화롭다. 남루한 듯 보이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삶과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를 키워낸 근원을 본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달려 나와서 반갑게 맞이할 것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또 해질녘 툇마루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 가슴 뭉클하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삶의 황혼에 다다른 어머니의 모습은 모든 어머니의 모습으로 다가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씨의 작품에는 기억의 무게와 기억의 언어가 드리워져 있다. 고향을 떠나와 힘들고 지친 타지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 평화로웠던 토담집이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작가는 요즘 추억의 장소가 사라져 버리고 흔적이 지워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다.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없으니 마음이 착잡하다. 마을의 돌담이 허물어지고 사라진 것에 가슴이 아프다. 

김 씨는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청량한 바람에서 '공기 읽기'는 나의 시각적 표현의 연습 시간이며, 2020년과 지난해 출간한 작품집은 시간적 요소를 매개로 인간의 경험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담양군 고서면 명지미술관은 박유자와 김성민이 작품 활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면 언제든 그들의 작품 전시와 작가를 만날 수 있다.

근래 우리 지역에도 군립미술관 추진을 염원하는 이가 많아졌다. 문화예술의 범위가 확장하는 현 시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갈망에서다. 신안군이 예술의 섬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1섬 1뮤지엄' 상품을 관광산업으로 내 건 것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곳은 현대미술의 거장 수화 김환기 화백의 오마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지면 해양치유센터 마당에 원교 이광사 서맥깃발전을 한 것도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무언가 옹색하기만 한 전시회를 보면서 좋은 작품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신안군의 관광정책에 비춰보면 문화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난 우리 지역의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역 사회가 예술가의 혼을 담을 수 있는 큰 울타리가 되어준다면 이 지역 관광산업에도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해양문화의 융성시대를 여는 완도군의 큰 포부를 문화예술의 확장에서 찾길 바란다.  

사진= 박유자의 해바라기와 명사십리 소나무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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