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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판타지나 타임슬립처럼 비현실적인 드라마가 인기다. '도깨비', '아는 와이프', '환혼' 등 오래된 드라마부터 최근 인기몰이를 한 '선재업고튀어'까지.

어쩌면 작가의 상상력이 날로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CG의 놀라운 발전으로 어떤 장면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력이 한몫한 것이리라. 그리고 시청자들도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에서 벗어나 마치 꿈같은 이야기 속에 빠져 들어 자신들도 지금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꾸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겠다.

요즘 시청률이 높다는 드라마를 보면 대게 웹툰이나 웹소설이 원작이다. '사내맞선', '강남미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 남자 주인공도 하나같이 모두 잘생겼다. 키는 훤칠하고 근육질에 어깨는 떡 벌어지고 얼굴은 주먹 만하고 코는 성형한 것처럼 오뚝하고 도톰한 입술에 보조개까지, 고등학교 때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얼굴과 몸매다.

반면에 드라마 내용에는 깊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남녀 사이의 설정이 유치하기도 하고, 억지스럽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환한 조명을 자주 사용하는 연출도 거슬린다. 주인공이 멋지고 예쁘니 눈은 호강하지만 말이다.

내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기준은 재미와 감동이다. 거기에다 현실성까지 있으면 좋겠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이다. 시대적 배경이 1998년도여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고, 성장소설을 읽듯이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의 방황과 사랑 이야기가 감동이었다. 게다가 남녀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다.

여자 주인공이 쓴 일기장을 그녀의 딸이 읽으면서 내용이 전개되는데, 그 시절에는 일기장에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적는 친구들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썼던 내 일기장을 보면 친구 이야기,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 화나고 짜증 나는 일 등 온갖 푸념과 하소연이 적혀있다. 그리고 일기 끝의 대부분은 상대방을 향한 욕이거나 자기반성이었다. 나만 볼 수 있는 글이니 어떤 내용을 적어도 괜찮았다.

일기장은 나의 가장 믿을만한 친구였다. 무슨 욕을 해도 상관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쓰더라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가끔씩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주로 일기장에 나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날 것 그대로. 

컴퓨터가 나오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웹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SNS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에 글을 올린다.
 
사람들은 웹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웹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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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생활을 공유하는 것이다. 음식 사진을 올리고 여행 간 사진을 올리고 기념일 사진을 올린다. 행복했던 시간을 글과 함께 영상이나 이미지로 기록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한다. 

온라인상에 올리는 글의 대부분은 나를 위한 글이기보다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좀 더 정제되고 좀 더 미화된 글을 올리고, 필터링된 좀 더 예쁘고 좀 더 멋진 사진을 올린다. 나란 사람을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나의 행복한 순간을 알리고 싶고 공감받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들 하트 버튼 숫자에 민감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올린 글과 사진에 달린 환호와 조금은 질투 섞인 댓글들을 보면 괜스레 우쭐한 기분마저 들 것 같다. 이런 마음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물론 과거에도 공감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다만 대화와 소통의 도구가 달랐을 뿐. 이제는 기술이 너무 많이 발전했고 눈뜨면 하루가 다른 세상이니 변해가는 사회적 현상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옛날이 그립다. 나만의 비밀을 적을 수 있는 일기장이 그립다. 우편으로 보내는 편지가 그립다. 누군가를 그리며 편지를 쓰고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내내 설레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내 이야기는 언제 나올지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편하고 빠르다.

그래서 그런지 1990년대 감성이 좋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공중전화, 삐삐, 만화방, 신문 배달 같은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고, 시청자들을 과거로 순간 이동시켜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은 음악을 듣고 싶으면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 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그때는 테이프를 앞뒤로 돌려가며 원하는 곡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가사가 자동으로 뜨지만, 그때는 카세트의 재생 버튼과 멈춤 버튼을 교대로 눌러가며 가사를 받아 적어야 했다. 

지금보다 훨씬 불편했지만, 기다림의 여유와 원하는 것을 힘들게 갖게 될 때의 기쁨은 지금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공중전화에서 친구에게 전화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것, 동전이 남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올려놓는 배려, 비디오 대여점에서 최신작이 언제 나올지 기다리는 설렘, 만화책 다음 화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지루함, 주말에만 볼 수 있는 토요 명화와 주말의 명화 등.

나이가 먹어서인지 밤이 깊어서인지 오늘따라 옛 생각이 많이 난다. 라테(라떼)는 말이야, 그땐... 그랬지.

태그:#드라마, #레트로, #라데는, #스물다섯스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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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상담교사로 일하며 세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강물처럼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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