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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각 지역 복지관에서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과 자서전 글쓰기 수업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 연락온 복지관은 자서전이 아니라 체험활동 홍보글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작년까지 체험활동을 가신 어르신들은 가서 사진만 찍었고 추후 보고서나 활동집은 복지관 간사님들 일이었다. 이번에는 어르신이 직접 홍보 자료를 만들기 위해 내게 문의가 들어온 거다. 어르신들도 흔쾌히 승낙하셨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복지관은 한글 읽고 쓰기가 어려운 분이 안 계신가요? 제 경험으로는 꼭 한두 분은 계시거든요."

예상이 맞았다. 여덟 분 모두 글을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그 중 한 분은 한글 읽기가 거의 안 되는 분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보 자료 제작에 어르신이 참여하면 수정 과정을 많이 거쳐야 한다. 나는 다시 물어봤다.

"저… 이렇게 하면 간사님들 품이 더 들어갈 텐데, 왜 굳이 어려운 길로 가세요? 안 그래도 간사님들 업무량이 적지 않잖아요."

휴대폰 너머로 간사님의 작은 웃음이 들렸다. 간사님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씀하셨다. 

"선생님 별 걸 다 아시네요. 맞아요. 그렇긴 한데 언제까지 간사들이 다 해줄 수 없잖아요. 어르신들의 자립을 돕는 게 진짜 복지관 역할인 거 같아서요. 올해부터 역량 교육에 공을 좀 들이는 중입니다."

첫 수업 일이 됐다. 큰 나무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드는, 오래된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같이 있는 복지관이었다. 강의실에는 어르신 여덟 명 모두 앉아계셨다. 

수강생끼리도 잘 모르는 다른 복지관에 비해 이곳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이러면 자칫 강사는 소외될 수 있다. 수업과 관련 없는 다른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우리는 같은 편, 여기는 멋진 곳'이라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어르신이 쓴 글.
어르신이 쓴 글. ⓒ 최은영
 
어르신들 글쓰기 수업을 많이 했지만 다들 본인 이야기 쓰는 것만 집중했다고, 이렇게 체험활동 홍보글을 직접 쓰시겠다고 자원하신 분들은 처음 봤다고, 어떻게 보면 내 이야기 쓰는 것보다 홍보 글이 훨씬 어려운데 글쓰기 안 해 보신 분들이 어쩜 이리 용기 있으시냐며 수업을 시작했다.

아부가 아니라 진짜였다. 재밌게 체험하고 사진 찍고 오면 끝날 일을 스스로 복잡하게 만드신 분들이 아닌가. 어르신들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우아한 분들'이라는 방점을 찍었다.

"명품 휘감아서 나오는 건 우아함이 아니라 돈자랑이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어르신들의 우아함은 안 해 본 일을 기꺼이 도전하는 태도거든요. 여기 간사님 연락 받고 그 우아하신 분들이 궁금했어요. 저도 오늘 수업하면서 어르신들 태도 많이 배우고 갈게요."

그렇게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한글이 어려우신 한 분께는 나랑 간사님이 번갈아가며 자료를 읽어드렸다. 어르신이 생각났던 말들을 옮겨 적어드리기도 했다. 같이 웃다가, 머리 아프게 고민했다가, 한 줄 쓰고 두 줄 지웠다가 하면서 90분이 훌쩍 흘렀다. 

"아이고, 머리에서 불이 나는 거 같고만요. 대학은 가본 적도 없는데 대학생 된 거 같아요."

수업 끝나고 나가는데 한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들 맞장구 치시며 웃으셨다. 혹시 너무 어렵게 한 건 아닐까 걱정하던 내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렇게 받아주셔서 고맙다고, 진짜 우아하신 분들이라고 나도 한 번 더 박수를 드렸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모습, 이렇게 써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 써놓은 거 보고 혼자 뿌듯해 하는 모습 등이 스쳐 지나갔다. 우아함의 사전적 의미는 '고상하며 기품이 있고 아름답다'이고 '고상하다'는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인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처음 배우느라 어려운 것에 짜증 한 번 없이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하는 그 노력이 높은 품위 아닐까? 악필이라고 부끄러워 하면서도 끝까지 채워보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분들께 '우아함'을 강조하고 수업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간사님의 일거리 만들기를 응원한다. 일거리를 만든 간사님을 위해 다음 수업에는 아이템을 더 구상해 가야겠다. 결과물이 나왔을 때 어르신들이 더 뿌듯해 할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 각 기관의 팸플릿을 한참 검색했다. 그 일거리가 어르신들의 우아함을 더 빛나게 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내인생풀면책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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