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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폭염, 폭우등의 이상 기후를 잘 이겨내야 사과를 수확할 수 있지만 
앞으로 이 어린 사과들의 운명이 밝지는 않다.
▲ 충남 부여군 내산면 월명산 자락의 사과 농가  장마, 폭염, 폭우등의 이상 기후를 잘 이겨내야 사과를 수확할 수 있지만 앞으로 이 어린 사과들의 운명이 밝지는 않다.
ⓒ 이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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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코 앞인 최근, 아까시 꽃이 핀 것을 보았다. 작년에도 충남 부여군 서동요 둘길 주변에서 때를 착각한 아까시 꽃 몇 송이가 피더니 올해도 핀 것이다. 이미 아까시 꽃이 피는 시기가 지났지만 꽃이 피는 기후 조건과 비슷해서 다시 개화한 것 같다. 어쩌다 한 번은 식물들도 날씨를 착각할 수가 있다지만, 요즘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기후를 우리도 몸으로 느낀다.

그런 현상을 '기후 위기'라는 용어로 정의해 부를 정도로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한 지 오래다. 기후 위기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갈팡질팡하게 하고 있다.

모든 생물에는 때에 알맞은 생장 조건(온도, 습도, 햇빛 등)이 있다. 그 조건이 맞아야 꽃들이 피어나고 열매도 맺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조건이 무너졌을 때 질병이 오거나 뒤늦게 꽃이 피고 기형과가 생기는 등의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최근 몇 년 사이 농촌 마을에 나타난 기후 위기의 징후가 심각하다. 올해 사과와 배 가격의 폭등은 기후 위기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이 개입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농촌의 농가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서 대응책도 대안도 없이 직면만 하고 있다.

과수들의 성장을 방해한 이상 기후
 
충남 부여군 내산면 월명산 자락의 사과 농장
▲ 사과 꽃 충남 부여군 내산면 월명산 자락의 사과 농장
ⓒ 이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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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고 들판이 적은 충남 부여 내산면에는 과수 재배 농가가 몰려 있다. 주로 사과와 배, 복숭아, 자두 등을 재배하고 있다. 작년에도 폭염과 폭우로 내산면 과수 농가들이 피해가 컸다. 부여 사과 역시 작황이 좋지 않아 사과 가격 폭등에 일조했다.

추석 선물로 사과를 거의 다 팔았던 농가들은 단골 소비자들에게 사과는 보내지 못하고 일일이 '사과 문자'만 보내야 했다. 해가 바뀌면 나아지려니 기대했지만, 올봄 날씨는 작년과는 또 다른 양상의 피해를 주었다. 

작년에 기껏 농사지은 자두를 팔아보지도 못하고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퇴비로 버렸던 농가에 연락을 해보았다.

"올해 자두 농사는 좀 어떠세요? 작년에 열 화상병으로 자두를 못 파셨잖아요?"

"봄에 벌들이 베랑(별로) 없대유. 비가 자주 왔잖어유. 모든 과수에 꽃이 피었을 때 습기가 많으면 좋들 않쥬.(좋지 않아). 벌들이 일을 못 하니께 수정이 안 되잖어유. 그래도 자두꽃은 사과꽃보다 늦게 펴서 피해가 덜해유."


한낮의 폭염과 평균 기온보다 낮은 이상한 밤 기온은 봄에 수정이 잘되고 열매를 잘 맺은 과수들의 성장을 방해했다. 착과가 된 열매들이 6월 즈음 나무에 계속 매달려 있지 못하고 떨어지는 현상을 전문 용어로 쥰 드랍(June drop)이라고 한다. 과수가 몸집을 부풀리고 맛이 들어가는 6월에 성장을 멈추고 땅에 떨어지는 현상이다.

몇 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로 과수를 비롯한 야생화들의 개화가 10~15일 정도 빨라졌고 이상 기후까지 덮치면서, 최근 주로 노지에서 재배하는 과수에서 조기 낙과 현상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자두에 비가림 시설을 했슈. 작년에 자두 농사 베리고(버리고) 비가림 시설이 없이는 매년 자두를 못 딸 것 같아서 서둘렀슈. 근디 사과 농가들은 올해도 재미 없다는디... 앞으로 사과를 보기도 더 힘들어질 것 같어유."

자두 농가는 비가림 시설을 하는 것으로 조기 낙과 현상과 기후 위기의 대안을 찾았다. 

보도에 의하면 밀양 얼음골 사과는 꽃이 피는 시기에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라서 벌들의 활동력이 떨어졌고, 꽃에 수정이 잘되지 않아 착과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부여 내산면 월명산 자락에서 재배하는 사과는 사과꽃이 수정될 때 비가 자주 내려서 냉해와 안개 분무 현상으로 착과율이 낮았다고 한다. 어떤 농가는 밀양처럼 꽃만 무성하고 수정이 되지 않기도 했다. 또 다른 농가는 작년의 폭염과 폭우로 인한 피해의 연장선에서 사과나무 자체 회복이 늦어서 착과율이 낮아지기도 했다고 한다. 

"부여의 경우 작년 대비 착과율이 20% 정도 떨어지기 했슈. 나라 전체로 보면 심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수확하는 날까지 날씨를 장담할 수가 없잖어유. 작년만큼 비싸기야 하겠슈."

결론적으로 현재의 이상 기후는 앞으로 우리가 사과를 전처럼 흔한 과일로 여기지 못하게 될 것이고 사과 농가들의 시름도 깊어지게 할 것이란 사실을 뜻한다. 

사과 농사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
 
올봄 사과 꽃이 핀 풍경. 꽃은 풍성하지만 수정이 잘 되지 않았다.
▲ 충남 부여군 내산면의 사과 농가 올봄 사과 꽃이 핀 풍경. 꽃은 풍성하지만 수정이 잘 되지 않았다.
ⓒ 이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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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추석 무렵에 수확하는 홍로 품종의 사과는 이상 기후 속에서도 사과꽃의 낙화가 심하지 않아서 착과율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늦사과 품종인 부사 사과가 이상 기온의 직격탄을 정통으로 맞아서 수확량이 좋지 않을 것 같고 올해처럼 보관할 사과가 부족할 전망이라고 한다. 사과 농사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동안 구하기 쉽고 흔하게 먹을 수 있어서 과일의 대명사라 불렸던 사과는 차츰 그 자리를 아열대 과일에게 내줘야 할 것 같다.

"20년 후에는 부여에서 사과 보기는 힘들규. 사과는 생육 기간이 다른 과일에 비해 길어서 날씨가 안 맞으면 병충해에 남어나들 않어유. 사과 농사를 잘 지어 보려구 선진 농가들도 견학하고 작목반도 만들어 토론도 하고 있는데유.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렵잖어유."

과수들의 비정상적인 생장 원인이 기후 위기 때문인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기상청의 지역별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의하면 서울의 여름일수는 66.6일에서 2100년에는 194.3일이 될 것이라고 한다. 기후 위기는 가장 먼저 농작물의 수확량 감소와 재배지 이동 등으로 농가 살림과 농촌 생태계부터 위협한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농산물에 피해가 되지 않는 '착한 비'로 내리다가 조용히 물러나 주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태그:#사과, #충남부여, #사과재배, #기후위기, #사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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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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