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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몸일으키기 0개, 오래 매달리기 0초. 고등학교 때 나는 오래달리기를 해야 겨우 체력장을 통과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체육과 영영 이별할 줄 알았는데, 대학 필수교양과목에 체육이 있네? 테니스 시간에는 네트 너머로 볼을 넘기지 못하고, 소프트볼 시간에는 삼진아웃을 당하며 받은 체육 점수는 D였다. 그렇게 몸치였던 내가 춤을 춘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 만난 '훌라' 때문에.

춤도 배우고 언어도 배우고
 
 하와이 알라모아나 센터에서 공연 중인 훌라 댄서들. 손을 코밑에 대어 "향기 맡다"를 표현하고 있다.
하와이 알라모아나 센터에서 공연 중인 훌라 댄서들. 손을 코밑에 대어 "향기 맡다"를 표현하고 있다. ⓒ 전윤정
 
하와이 전통 민속무용인 훌라(hula)는 기본 발 스텝이 어렵지 않고, 손동작으로 노래 가사를 손동작으로 표현하는 춤이라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하와이 선주민(원주민)은 고유한 언어를 가졌지만, 문자가 없어 기록할 수 없었다.

선조의 신화와 역사, 전통과 삶,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손동작으로 만들어 훌라를 통해 계승했다. 서양문명이 들어오면서 라틴문자로 하와이어 표기가 가능하지만, 수화(手話) 같은 춤 훌라는 여전히 '심장의 언어 (Hula is the language of heart)'로서 사랑 받는다.

훌라 손동작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면 예쁜 '꽃'이 된다. '약속하다'는 오른손 주먹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왼손 주먹을 두드린다. 마치 망치로 못을 박는듯한 동작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라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양손 검지를 세워 가운에 모았다 양 끝으로 멀어지는 동작은 '헤어진다'를 뜻한다. 손가락 하나만 세워도 사람이 되고, 두 손가락을 떼기만 해도 헤어진다는 뜻이 전해지니 신기하다. 소설가 김훈은 궁극적으로 주어와 동사만으로 된 절제된 문장을 쓰고 싶다고 했다는데, 훌라야말로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언어가 아닌가?

"여러분은 로봇이 아니에요. 부드럽고 우아하게~"
"순서는 잘 외웠는데 미소가 없으니 전교 1등이 추는 춤 같아요."


새로운 곡을 배울 때마다 손과 발이 따로 놀아서 로봇처럼 경직되고 헤맬 때가 많지만, 가장 힘든 것은 춤추는 내내 멈추면 안 되는 '훌라 미소'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웃지 않으면, 이렇게 힘들까. 어두운 지하철 차창이나 스마트폰 카메라를 켰는데 셀피모드 일 때, 무표정하고 심술궂은 내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긴 하지. 하지만 한 시간 넘게 억지로 웃으며 훌라를 추다 보면, 수업 끝날 즈음엔 거울 속에 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내 웃는 얼굴보다 더 좋은 것은 함께 춤추는 사람들의 미소와 마주쳤을 때다. 그이가 보내는 미소에 마음이 확 열린다. 훌라 수업이 끝나면, 무거웠던 마음이 훌라를 함께 추며 마주치는 미소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고백을 자주 듣는다. 가끔 댄스 연습실을 잡아서 혼자 훌라 연습할 때 재미가 없는 이유는 이렇게 함께 미소를 나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낯선 하와이어도 나의 미소를 돕는다. 훌라는 노래 가사를 손동작으로 표현하니, 새로운 곡을 배울 때는 가사를 함께 읽고 뜻을 배운다. 꽃은 '푸아' 조개는 '푸푸' 거북이는 '호누' 새는 '마누'…… 풍선에 바람 빠지듯 발음이 귀엽다. 반복되는 단어도 재밌다. 웃다는 '아카아카('aka'aka) 시원하다는 '후이후이(hu'i hu'i)' 빨리빨리는 '위키위키(wikiwiki)'다.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 문서 편집 권한이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웹사이트 또는 시스템을 뜻하는 '위키'가 바로 이 하와이 단어에서 나왔다.

제일 재밌는 하와이말은 물고기 이름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humuhumunukunukuāpuaʻa)'가 아닐까? 애덤 샌들러, 드류 베리모어 주연 영화 <키스만 50번째> 삽입곡으로 나오는 <My Little Grass Shack>에는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가 헤엄치는 곳"이라는 가사가 있다. '리프 트리거피시(Reef triggerfish)'라는 쥐치복과 바다 어류인데, 세상에서 가장 긴 물고기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하와이 주어(州魚)이기도 한 귀하신 몸이다. 물고기 이름을 처음 발음할 때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몰라 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훌라를 추며 재밌고 귀여운 하와이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도전하기 딱 좋은 때
 
 지난 6월 6일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2024 훌라 댄스 페스티벌> 공연장면
지난 6월 6일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2024 훌라 댄스 페스티벌> 공연장면 ⓒ 전윤정
 
어느 정도 훌라 미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미소' 때문에 애먹는 일이 생겼다. 우리 팀은 지난 6월 6일에 열린 <2024 훌라 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공연 곡은 유난히 박자가 빠르고 동작이 어려워서 연습 때 다들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했다. 공연장 무대가 커서 변화를 주기 위해 대열도 자주 바꾸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습하며 서로 신경이 예민해지기도 했다. 그러니 치아가 보이는 멋진 미소를 지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잡았다. 완벽한 동작보다는 우리가 행복하게 무대를 즐길 때 관객에게 훌라의 진심이 전달되리라 서로를 격려했다. 가짜 미소가 아닌 진짜 미소를 짓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미소를 뿌리고 오자고 약속했다.

"행복한 사람들이 훌라를 추는 거야 아니면 훌라를 춰서 행복한 거야?"
 

공연을 마치고 만난 지인들이 한목소리로 물었다. '틀리지 않고 잘했다', '동작이 멋있다'보다는 '행복해 보인다', '즐거워 보인다'라는 말이 더 듣기 좋았다. 나는 또 한 번 환하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자신이 의식적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로, 삶이란 '여러 시기들'의 연속이다. 규칙적으로 하나의 시기가 끝나면 또 하나의 시기가 시작된다.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다."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170쪽

그렇다면 지금 나는 '훌라의 시기'가 아닐까? 이왕이면 이 한 페이지를 빡빡하게 써 내려가고 싶다. 요즘 유행어를 차용하자면 훌업튀, '훌라 업고 튀어!' 의 시기이다.

운동신경이 없는 내가 인생의 한복판 중년에서 훌라를 배우며 삶은 다르게 바라보고 느낀다. 나의 '훌라'는 누군가에게는 자격증이나 영상 제작 혹은 외국어, 악기, 그림, 사진, 운동일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은 나를 성장시키고, 열정은 나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중년은 하던 대로 살아가는 관성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목적을 성취하는 시간이다. 누구나 각자의 새로운 도전을 업고 멋지게 '튀어' 오를 수 있기를'!

#훌라#중년#도전#열정#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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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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