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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스톤버리 음악축제 현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TV화면을 재촬영한 것.
▲ 글라스톤버리 음악축제 현장 방송 사진 글라스톤버리 음악축제 현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TV화면을 재촬영한 것.
ⓒ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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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되는 6월 말부터 영국에는 다양한 야외 행사가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최대 규모의 행사가 바로 글라스톤 버리(Glastonebury) 음악 축제(이하 글라스톤 버리)다. 

영국에선 많은 팝스타들이 이 축제를 보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내가 처음 이 발음하기 낯선 음악축제의 이름을 접하게 된 계기도 한 팝 가수의 성장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5일간 계속되는 이 행사에는 락, 팝, 엘렉트릭, 힙합 등 다양한 음악 장르들이 소개된다. 음악뿐만 아니라 춤, 코미디 등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 문제, 관용을 우선적 가치로 삼는 행사 취지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이슈를 나눌 수 있는 자유로운 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20만 명 모이는 영국 축제서 나부낀 한글 '퇴사' 깃발 

나는 직접 가진 못하고 TV실황중계를 시청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공연 관람을 위해 텐트나 캠핑카를 몰고 온 사람들로 가득해보였다. 이런 야외 생활이 글라스톤 버리 하면 떠오르는 낭만이기도 하다. 

티켓 구매자를 포함해서 음악인, 스텝 등 약 20만 명이 참여하고, 900 에이커(약 1100평)에 이르는 넓은 들판에 세워진 각종 음악 공연장 및 캠핑사이트, 부대시설로 운영된다. 대규모 행사 기간 동안 100여 개가 넘는 공연이 펼쳐지며, 피라미드형 주 공연장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소공연장이 함께 운영된다. 

올해는 초대 팝스타로 콜드플레이(Cold Play)가 밴드 공연을 하고, 두아 리파(Dua Lipa)가 여러 무용수들과 함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행사 셋째 날이던 지난 금요일(6월 28일) 낮에는 K팝 그룹 세븐틴(Seventeen)이 공연을 했다. 한국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참여한 것이라고 하는데, 특유의 잘 짜인 군무와 생동감 있는 퍼포먼스는 평소 악기 연주와 보컬 위주 공연과는 사뭇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퇴사'라는 글씨가 보인다.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뭐니뭐니해도 마음껏 즐기시기를
▲ 영국음악축제에서 나부끼는 반가운 한글 깃발 '퇴사'라는 글씨가 보인다.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뭐니뭐니해도 마음껏 즐기시기를
ⓒ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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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공연장 앞에는 각양각색의 깃발이 나부낀다. 지역이나 단체를 대표하는 깃발도 있고, 정치나 사회 이슈를 상징하는 깃발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콜드플레이' 공연을 시청하는데, 그 앞으로 선명하게 '퇴사'라고 적힌 한글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처음에는 어느 누군가 퇴사 후 자유를 만끽하고자 공연장을 찾았나 보다 싶어 '즐기시라'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웃으면서 봤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스라엘 국기, 무지갯빛 동성애 옹호 깃발들 사이에서 '퇴사'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주제다 싶다. 양질의 일자리 감소, 직업에 대한 의식 변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곧 사회적 이슈다. 이렇듯 글라스톤 버리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다양하고 그 표현 방법에 재치가 넘친다. 

실제 방문해 보니 아담한 시골 마을
 
글라스톤버리 축제가 개최되는 서머싯주는 원래 조용한 잉글랜드 농촌이다.
▲ 평화로운 서머싯주 전경 글라스톤버리 축제가 개최되는 서머싯주는 원래 조용한 잉글랜드 농촌이다.
ⓒ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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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글라스톤 버리 음악축제 현장이라는 서머싯주 필스톤(Piltron Sumerset) 지역에 잠시 들렀다. 내 첫인상은 '에게~ 이렇게 작은 시골마을이었다고' 였다. 자동차가 동네 진입하는 길목도 좁고 집들은 작고 예스러웠기 때문이다.

글라스톤 버리 공연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피라미드(Pyramid) 공연장 주변의 언덕은 구릉지와 같은 모습으로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언덕의 이름은 글래스턴버리 토르(the Thor). 종종 아서 왕 전설과 연관되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곳이 아서 왕이 카멜롯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회복하기 위해 이송된 아발론 섬이라고 믿는다. 아서 왕 전설과의 연관성은 이 장소에 신비로운 매력을 더한다. 

그 밖에도 글래스턴버리 토르는 기독교와 연관되기 전, 고대 켈트족에게는 영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 여겨졌으며, 그들은 이곳을 다른 세계로 가는 관문이라 믿었다. 오늘날에는 뉴에이지 영성과 이교도 신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 깨달음, 평화, 또는 신비로운 과거와의 연결을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콘월주 틴타이저(Tintagel)에 서 있는 아서왕 상
▲ 킹 아서 상 콘월주 틴타이저(Tintagel)에 서 있는 아서왕 상
ⓒ MonikaP,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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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르 언덕을 올라 정상에 서면 서머싯 시골의 멋진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
이런 지역적 역사와 특별한 영적(?) 에너지 덕분이었을까. 1970년 지역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에서 여름날 사람들을 모아 음악을 즐기면서부터 시작된 음악 축제는 세계적인 음악 행사로 성장했다고. 

90년대 청춘이 기억하는 '라테는 말이지~' 

내 옆에서 공연 실황을 함께 시청하던 오십 줄의 짝꿍이 "나 때는 말이지~" 하며 추억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본토인인 그는, 딸들에게 자신이 갓 스무 살 남짓하던 1990년대 초반, 글라스톤 버리 음악 축제에 참여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티켓 가격이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단다. 아르바이트 한 두 번 정도면 충분한 티켓 가격에 친구들과 텐트 하나 둘러메고 4박 5일, 여러 가지 음악 공연도 보고 만나는 사람들과 비슷한 공감대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공용화장실이 있었지만 더러워서 아무도 그곳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짝궁의 이야기 속에서 젊은이들의 해방구, 히피적인 자유로움이 물씬 느껴진다. 올망졸망한 무대에서부터 대형 무대까지 여러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공연이 처음인 아마추어 가수부터 수준급 가수까지 음악의 장르만큼이나 다양한 공연이 축제기간 내내 이어져 티켓 구매비용 버느라 레코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고. 

1990년대 당시에는 대형 팝스타들은 행사에 초대되지 않았고, 좀 더 마이너리그, 신인 아마추어 가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기회의 장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짝궁은 조금 전 티켓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올해 1인 티켓 가격이 360 파운드(한화 60여 만 원)라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덧붙인다. 

1960년대엔 비틀스, 롤링스톤 등의 영국 팝 특유의 자유로움과 스타일로 세계화 시기를 거쳤다. 영국 음반 시장은 미국 시장과 함께 세계 음반계를 이끄는 양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글라스톤 버리 뿐 아니라, 북서쪽 레딩-리즈(Readind-Leeds) 페스티벌, 와이트 섬(Isle of Wight) 페스티벌 등 굵직한 음악 축제들도 있고, 지방 소규모 공연 행사까지 합하면 영국 내에선 1년에 천 여개의 음악 축제가 벌어진단다. 늦은 5월부터 9월 초, 날씨가 따뜻한 무렵이면 가는 지역마다 음악 공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 축구도, 영국 팝도 성공의 비결은 이것

요즘은 한창 독일 유로(Euro) 컵 중이다. 주중 주말을 막론하고 이곳 사람들은 축구 경기 시청하느라 바쁘다. 시댁의 축구 사랑을 보면 월드컵 때만 붉은 티셔츠를 입던 내 축구 팬심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긴 아기 때부터 거의 매주 지역 축구팀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거기서 개인의 주말 여가 생활, 사회관계가 이뤄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일 년에 천 여개의 음악 축제가 벌어지는 이곳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거나 다른 사람의 공연을 즐길 기회가 많다. 꼭 대형 스타의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요즘처럼 개인SNS가 흥하는 시대는 개인 홍보 장벽이 많이 낮춰진 셈이지만, 아티스트와 관객이 나누는 현장의 호흡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이런 마이너리그 음악 시장이 활성화되어있는 것이 영국 음악 문화의 뿌리이자, 에너지의 원천 아닌가 싶다. 

화면에 보이는 음악팬들의 즐거운 모습이 다채로웠다. 목청껏 따라 부르는 사람, 눈 감고 자신의 감정에 푹 빠져 있는 사람. 앳된 젊은이들과 흰머리 성성한 중년, 해외에서 공연을 즐기러 온 다양한 사람들. 음악은 마술과도 같아서 함께 하는 이들을 그 순간, 하나로 모여 즐기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이든 대형화,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대형 스타들 마케팅으로 모객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신인이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설 수 있는 다양한 무대를 만드는, 음악 축제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글라스톤버리음악축제, #영국팝시장, #K팝그룹공연, #문화토양, #풀뿌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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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반하별 입니다. 영국 거주중으로 현지 생생한 소식을 통해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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