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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인가, 독선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호남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이 곳곳에 있으니 대구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필요하다며 사업을 추진하였고, 관련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했다. 동대구역 광장에 높이 3m 상당의 'A동상', 내년 준공 예정인 대구대표도서관 앞에 높이 6m, 기단 2m의 'B동상'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논란이 일자 홍 시장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공과를 논해야 하고 과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역사적 인물의 공과를 같이 논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옳지만, 공과와 동상 건립의 타당성을 누가 판단하느냐의 문제는 남아 있다.

홍 시장은 지난 5월 29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내가 어떻게 세상을 사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공직 입문 후 40여 년 동안 내 방식대로 살아왔기에 아직도 건재한 거다. 잘못된 여론에 아부하는 것보다 여론을 바로 잡고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한다. 그게 홍준표답게 사는 거다." 즉, 박정희의 공과 및 동상 건립의 타당성 판단은 시장인 자신이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의회를 통과하여 법적인 절차는 거쳤다고 해도, 가치판단의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뚝심인가, 독선인가?

홍 시장의 '엘리트 민주주의'

홍 시장의 태도는 이승만 기념관에 관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대비된다. 오 시장은 6월 11일 서울시의회에서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 충분히 국민적 논의가 이뤄질 시간적 여유를 갖고, 논의가 이뤄진 결과 여론이 형성되는 데에 따라 이곳(서울 송현광장)이 가장 적지냐 하는 논의가 시 차원에서 있어야겠고 의회 차원에서도 의견을 모아야 일이 진척될 것이다."

반면, 홍 시장은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공직자가 재량으로 정책을 결정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좋게 표현해서 홍 시장의 정치관은 '엘리트 민주주의' 쪽이다. 한 예로 작년 3월 김진표 국회의장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혁 자문위원회'가 국회의원 비례대표 의석수의 대폭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하자 홍 시장은 "참 어처구니없는 제안"이라며 "국회의원 수는 지금의 절반인 150인으로 줄이고 전원 소선거구제 지역구 의원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시장은 다른 상황에서도 여러 차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해왔다.

그런데 지금처럼 1등만 당선되는 단순다수대표제인 소선거구 방식으로는 정치권이 양대 정당의 독무대가 되며 국회의원 자리는 국민 중 엘리트 계층이 주로 차지하게 되어, 의회가 시민의 의사와 괴리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구처럼 하나의 정당이 정치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시의회의 동의는 형식에 불과하다. 홍 시장은 오랜 정치 경험을 통해 이런 문제점을 잘 알 텐데도, 현행 선거 방식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대체로 사람은 익숙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당연한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홍 시장도 이런 경향에 젖어 있는 듯하다.

공론화위원회의 숙의를 거쳐 결정하자
 
홍 시장도 민주주의는 국민의 소리를 국정에 반영하는 정치체제라는 원론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동상 건립처럼 논란이 많은 정책은 독단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여 결정해야 한다. 단순한 여론 조사로는 기존의 선입견 분포를 알 수 있을 뿐, 진정한 여론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필자는 시민 중 100명을 무작위 추첨하여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일명 '시민의회')에서, 전국의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의견을 듣고 숙의를 거쳐 결정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공론화위원회는 특정한 정책을 위해 일회용으로 구성할 수도 있지만, 상설화하여 최근 대구시가 군위 첨단산업단지에 건설하려는 소형모듈원전(SMR)과 같은 쟁점이 생길 때에도 활용하면 더 좋을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에서는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동상을 세워 기릴 만한 인물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긍정적인 결론이 나온다면 추가로 다음과 같은 논의도 해야 한다. 구미와 경주에도 있는데 대구에 또 세워야 할까? 재원 조달은 시 예산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시민의 성금으로 할 것인가?

계획처럼 3m, 6m의 대형 동상을 세워야 할까? 우리 지역 바깥에서는 대구를 '고담도시'라고 평가하는데,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에 세우면 우리가 더 고립되지 않을까? 대구대표도서관에 세우면 도서관을 많이 이용할 학생들에게 박정희에 대한 편향된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을까? 대구의 인물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두류공원과 달성공원 등에 있으니 이런 곳에 건립하는 게 좋지 않을까?

또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홍 시장에게는 박정희 동상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손해가 된다는 점도 고려하기 바란다. 대권을 위해서는 집토끼와 노년층의 표만으로는 안 된다. 중도적인 산토끼와 청년층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이들이 박정희 동상 건립을 정치인 홍준표의 업적으로 여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공론화위원회 방식을 채택하여 합리적으로 여론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홍불통'이라는 이미지가 개선되어 정치인 홍준표 지지층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걱정이다. 세상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충고를 하는 사람과 충고를 듣지 않는 사람.

덧붙이는 글 | 대구 지역 인터넷 매체 <평화뉴스>에도 기고하였습니다.


태그:#박정희동상, #홍준표, #공론화위원회, #동대구역, #대구대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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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사회정의/토지정책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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