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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보험 없는 주부들이 쓰는 '점을 찍는 여자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기자말]
무료로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온라인 글방을 열겠다고 하자, 몇 안 되는 나의 팬들과 추종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실력이 너무 아깝다, 그동안도 너무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신의 실력과 경력에 무료라니 그건 안 될 말이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 덕분에 침울해지던 마음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현실은 변함없었다.

글 코치가 된 방송작가

내가 무료로 글방을 열겠다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모객이 잘 안 되어서. '모객'이라니.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과는 너무 먼 단어다. 21년째 방송작가 일을 하고 있다. 1999년 라디오 구성작가를 거쳐 지금의 다양한 TV 다큐를 제작하기까지 글쓰기는 나의 업이었다. 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고, 나만 잘 쓰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작은 바람으로 책 출간에 도전했다. 그동안 먹은 글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남들보다 수월하게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글쓰기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 코치로 활동한 지 이제 2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6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도록 도왔다. 비록 그림자처럼 존재하지만, 그래도 꽤 뿌듯하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세상이 나의 경력과 실력을 나만큼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년 동안이나 글을 썼지만 온라인 세계에서의 나는 그저 무명의 강사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겸허하지 못했다.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 강사를 보면서 질투와 열등감과 분노가 함께 올라왔다. 오랫동안 그를 시샘하는 데 시간을 보내다 깨달았다. 이것도 그의 능력이라고. 그저 우연이 아니고 그가 오랫동안 꾸준히 온라인 세계에서의 명성과 신뢰를 얻은 결과 때문이라는 것을.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카페를 찾는다는 <이지글방> 글방러님
▲ 카페에서 글쓰기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카페를 찾는다는 <이지글방> 글방러님
ⓒ 강철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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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강생들은 글쓰기 실력 자체보다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독려하고, 동기부여를 해줄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글쓰기 능력이 어떻든지 간에 온라인 세계에서 그가 갈고 닦은 자신만의 세계는 겨우 2년 차 글코치가 감히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의 '현재'만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 강사가 '과거'에 했던 노력은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흠만 잡았다.

온라인 글쓰기 세계에서 나의 위치를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낭중지추'라는 말을 믿기로 했다.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실제보다 과대평가된 실력도, 초야에 묻힌 실력자도. 그렇게 믿자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돈을 받고 싶지 않아졌다.

당시 나는 5명의 글동무에게 월 5만 원의 수강료를 받으며 7개월째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던 중이었다. 월 25만 원.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는 돈이지만, 내 가치를 스스로 깎아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 선배에게 들은 말이 있다. 프로는 자신의 몸값을 스스로 깎지 않아야 한다고. 방법은 두 가지랬다. 제값을 받거나 아예 무료로 해주거나. 내가 신출내기 작가였을 때 들은 이 말이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명확하게 이해됐다. 무엇보다 5만 원이라는 돈에 얽매인다는 생각이 컸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

하던 그대로 운영하면서 돈은 받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미안한 마음에 그럴 수는 없다는 글방러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이 글쓰기 모임이 가진 가치는 돈 5만 원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차라리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벗어날 때 오히려 서로가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래. 이왕 하는 거, 5명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인원을 더 모집하자! 그렇게 해서 무료글쓰기 모임인 <이지글방>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모객이 안 되더니 아무래도 무료라는 이점이 컸던 것일까. 15명이 추가 등록해서 총 20명의 글방러들이 모였다.

내가 하는 강의 방식으로 진행하기에 20명은 너무 많은 인원이었다. 10명씩, 반을 두 개로 나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일주일에 수업이 두 번으로 늘었고, 매주 스무 편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준비해야 했다! 들어오는 돈은 0원이고 해야 할 일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이상하다?! 왜 오히려 더 신이 나는 걸까. 기존 멤버인 L은 '어째 돈 받고 할 때보다 더 열심히 하세요?'라며 의아해 할 지경이었다.

신이 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통해 글방러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나는 매일 매일 목격한다. 이번 <이지글방>을 모집할 때 '여자'들로만 멤버를 한정 지어 모집했다. 실은 그중에서도 엄마들이 많이 들어오길 바랐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엄마'들이야말로 글쓰기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고, 글 쓰는 엄마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글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글방러들은 조금은 서툴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오감으로 글쓰기', '왜? 라고 묻기' 이런 주제로 매일 매일 훈련해 가면서 그동안 쓰지 않았던 감각을 일깨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단톡방에 올라오는 짧은 글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신이 나는 것이다. 박완서 작가님이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온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했다는데, 그 말씀이 딱이다. 글은 쓰지 않았지만, 우리가 살아온 삶이 모두 글쓰기였던 것이다. 
 
매일 그날의 일상이나 생각을 주제에 맞는 짧은 글로 쓰고, 일주일에 한 번은 한 편의 수필을 쓰고, 동료들의 합평을 받는다. 글쓰기에 관한 여러 이론이 있지만 반박의 여지가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쓰는 만큼 는다'는 진리일 것이다.

매일매일 신나게 노는 중

라디오 작가를 하던 시절, 매일 A4 19장의 원고를 썼다. 그렇게 3년을 라디오 작가 일을 했다. 매일 잘 쓰진 않았지만, 자주 힘들었지만, 그래도 매일 썼다. 그 세월이 쌓이니 이제는 글쓰기가 편안해졌고, 편하게 써도 평타는 치는 수준이 되었다.

<이지글방>의 글방러들 역시 그 길을 걸으며 성장할 것이다. 누군가가 성장하는 걸 보는 일은 즐겁다. 그러니 나는 무료 글방을 연 덕에 덩달아 성장하고 배우고 있다. 결코 내가 받는 게 없는 것이 아니었다. 

'어째 돈 받고 할 때보다 더 열심히 하세요?'라는 글방러의 질문에 멋지게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정답을 찾았다. '돈 받고 하면 일이지만, 돈을 받지 않으면 놀이다' 이 명쾌한 말씀에 '아! 내 마음이 바로 이거였구나! 나는 좋은 사람들과 글쓰기로 노는 중이었구나!' 이마를 탁! 치게 된다. 

비단 즐거움만 얻은 것도 아니었다. 마침 책 출간 계약을 한 글방러 한 분이 개인 컨설팅을 의뢰하기도 했다. 또 남편이 신문사에 근무하시는 글방러님 덕분에 인턴 기자 글쓰기 강의 제안이 들어와 진행 중이다. 꼭 성사되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료 글방을 운영하는 내 진심이 통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포기한 대신 더 많은 것을 얻었으며 그것이 결국에는 나의 경력이 되고 훗날 돈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조던 피터슨 교수는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이 말을 자주 인용하면서 '가장 좋은 일'을 한다는 뿌듯함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글방을 몇 달 진행하면서 알았다.

나는 감히 글쓰기를 가르칠 깜냥은 못 되지만 대신 글쓰기로 노는 장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글방러들과 함께 매일매일 신나게 노는 중이라는 것을. 이것은 나에게도 또 그녀들에게도 인생의 새로운 점이 될 것이며, 우리가 찍은 이 점은 분명히 다른 선으로 이어질 것임을 믿는다.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4대보험 없는 여성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태그:#글쓰기, #엄마의글쓰기, #이지글방, #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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